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03 수뢰 준(屯) 괘 : 설렘 반, 걱정 반, 시작이 반

by 땅 작가

3월은 학생과 교사들에게 설레는 달이다. 학교, 친구, 선생님, 교과서 등 새롭게 관계맺어야 할 것들이 많다. 3월은 학교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한다. 지난해에 잘못도 이듬해 3월이면 대체로 괜찮아진다. 긴 겨울방학을 지내서인지 많은 것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3월에는 새로운 생명을 얻기라도 한 듯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올 날들을 준비한다.

하지만 설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슴 한 편에서는 걱정이 함께 나타난다. 앞으로‘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등 많은 걱정으로 밤을 뒤척인다. 그 걱정은 바뀐 환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에 기인한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에 둘러싸여 한 발짝 떼도 되는지 확신이 안서는 것과 같다. 자욱한 안개 속을 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안개 자체가 아니라 어렴풋함 속에 숨어있는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3월의 아침엔 안개가 많이 발생한다. 출근길이나 등굣길에 짙은 안개를 만나면 자동차들은 거북이걸음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느린 걸음이라도 출근이나 등교를 포기하는 이는 많지 않다. 안개가 두려워도, 새 학기가 두려워도 우리는 반드시 시작해야 한다. 앞날이 두렵다고 도전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문명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봄날 안개(水)는 물이고, 이를 뚫고 용기를 내어 전진함은 우레(雷)이다. 우리는 안개 낀 3월의 등굣길에서 수뢰 준(屯) 괘를 발견할 수 있다.

수뢰(水雷) 준(屯) 괘는 ‘험난함 속의 시작’을 의미한다. 수뢰(水雷) 준(屯)의 상괘(上卦)는 물(水)이고, 하괘(下卦)는 우레(雷)이다. 물(水)은 ‘험난함’을 의미하고, 우레(雷)는 ‘시작’과 ‘움직임’을 의미하니, 이 괘의 상(象)은 ‘험난함 속에서의 움직임’, ‘험난함 속에서의 시작’이라는 뜻을 가진다. 갑골문에 나온 준(屯)자를 보면 초목이 올라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새싹이 어렵게 땅을 뚫고 간신히 돋아난 모양을 나타냈다.

벽 틈에서 어렵게 피어난 새싹(@ 정상회)

씨앗은 포근한 땅속에서 조용히 숨죽이며 씨앗으로 존재할 수도 있지만, 두꺼운 흙 껍질을 뚫고 비바람을 맞아가며 나무가 된다. 인간 또한 어렵고 고단한 길이지만 묵묵히 실천하여 문명을 꽃피우는 데 동참하니, 준(屯) 괘야말로 위대한 문명을 원하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을 시작할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주역』「대상전(大象傳)」의 준(屯) 괘의 사(辭)는 다음과 같다.

“군자는 이 괘(屯)를 관찰함으로써 경륜(經綸)을 펼친다.”

위의 괘사(卦辭)는 일을 시작할 때 어려움을 만나면 ‘경륜’을 펼칠 것을 조언한다. ‘경(經)’ 자(字)는 직물을 짤 때 세로로 들어가는 실을 말하고, ‘륜(綸)’ 자(字)는 실에 질서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경륜이란 엄정한 원칙과 질서에 근거해 일을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만사가 어지럽게 보여도 그것의 결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큰 어려움이 아니다. 문제 상황에서 규칙성을 발견하고 원칙을 세워 시행한다면 무난히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새롭지만 두려운 상황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다고 멈춰서는 안 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 발자국 나아갈 때 상황을 분간하는 지혜가 생긴다. 고난이 내 인생을 가로막는다 해도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결국 우리는 문제 해결에 다다르게 된다. 일의 시작 지점에서 경륜을 중시하여 신중하게 처신 한다면 아무리 두려운 미래라도 슬기롭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경륜하는 지혜

지리학은 무질서하게 보이는 공간적 현상들로부터 질서를 찾아내어 어떤 일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학문이다. 지표 공간에는 수많은 현상이 무질서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공간적 질서가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 다양한 문화를 가진 그룹들이 어지럽게 분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위도(緯度)에 따라 엄정하게 달라지는 기후의 질서가 깔려있다. 동네 편의점이 겉으로는 아무렇게나 운영되는 것 같지만, 그 과정 안에서는 수요자의 특성, 상점의 최소요구치, 재화의 도달거리, 경쟁 업체와의 관계 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운영된다. 모든 인간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며, 그 공간 속에서 의사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지리적 인간(Homo geographicus)’이라는 말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공간적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학문이 지리학이니, 지리학은 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을 경륜한다.


이전 02화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