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비추는 태양
2020년 1월 통영 가족여행, 늦도록 동서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새벽을 맞이했다. 먼바다 동쪽에서 빛이 돌더니 어스름한 섬 그림자가 드러났다. 다도해의 많은 섬들은 더이상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그림자로 존재를 알린다. 해가 수면 위로 솟구치자 바다는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새벽일을 마친 고깃배와 일을 나가는 고깃배가 실루엣을 그리며 엇갈린다. 배 지나자 금빛 바다는 두 갈래로 갈라지고, 물결은 먼바다로 출렁이다 사라진다.
고요한 새벽의 맑은 하늘로 솟구치는 태양은 어둠의 세계를 소멸하고 만물을 비춘다. 천화(天火) 동인(同人)상이다.
䷌
천화 동인
태양이 떠오르자 어둠에 가려진 것들이 드러난다.천화(天火) 동인(同人)
동인(䷌)괘는 <서괘전>에 “괘가 건(☰, 乾)이 위에 있고 리(☲, 離)가 아래에 있으니, 두 상(象)을 가지고 말하면 하늘은 위에 있는 것인데 불의 성질이 타올라 가서 하늘과 함께 하기 때문에 동인이라 하였다."
하늘(☰)은 크고(大) 강(剛)하나 형체가 있지 않으니, '도심(道心)', '호연지기(浩然之氣)', '순수한 학문적 열정' 등과 같은 크고 강직한 마음과 통한다. 큰 정신은 시공을 떠나 생명력이 변치 않으므로 위대한 정신이야말로 '하늘(☰)'의 상이다.
불(☲)은 빛을 의미하므로 정신을 밝혀 공부하는 것이 리(☲)이고, 학자가 학문을 닦는 것이 리(☲)이다. 빛은 어두워 불안한 것을 해소시키는 긍정의 힘을 갖고 있으며, 갈 길을 찾지 못한 이들을 이끌어주는 이정표도 리(☲)라 할 수 있다. 바다에서 솟구쳐 하늘(☰)로 향하는 태양(☲)도 천화 동인의 상이다.
세상(☰)을 비추는 빛(☲), 지도(䷌)
이 세상(☰)에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 다른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가는데, 사는 동안 명쾌(☲)하게 공간적 결정을 내린다. 화장실이 어디인가, 식당이 어디인가, 장애물을 어떻게 피해 갈까, 어디에서 일할까, 어디에서 만날까 등 인간의 삶이란 스스로 명쾌하다고 여긴 공간 결정의 연속이며, 공간적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이 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황에 필요한 적절한 공간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한 공간 정보를 제공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지도이다.
지도(map)는 앞 선 사람들이 세상(☰)에 축적해놓은 지리정보를 한 눈(☲, 리는 눈을 가리킴)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문명의 산물(䷌)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 만든 지도를 통해 손쉽게 공간을 이해할 수 있다. 고전이 정신적 이정표라면, 지도는 몸의 이정표이다. 그 이정표를 따라 가면 내가 원하는 지리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원하는 지리정보를 얻은 후에는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15세기 후반 콜럼버스라는 탐험가는 로마 시기의 지도 한 장을 얻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했고, 마젤란은 콜럼버스와 같은 탐험가들이 쌓아놓은 지리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일주에 도전했다.
톨레미의 지도를 재현한 지도. 콜럼버스는 이 지도를 믿고 서쪽으로 항해하여 신대륙을 발견했다.지도는 과학기술과 함께 발달하였고, 사회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주제의 지도가 개발되었다. 최근에는 구글이나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 위성 사진을 기반으로 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누구라도 쉽게 공간적 의사결정을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부 기관들은 지리정보시스템(GIS,Geography Information System)을 이용해 시민들에게 양질의 지리 정보를 제공하여 시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의해 노력하고 있다. 차량마다 장착된 네비게이션 시스템은 이미 인공지능과 결합되어 인간에게 공간적 무지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함께 무언가를 본다는 것
동지(同志)란 '함께 같은 뜻을 품고 바라보는 보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천화 동인과 뜻을 함께한다. 콜럼버스가 이사벨라 여왕과 뜻을 함께 했기에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고, 전봉준이 집강소의 동지들이 있었기에 동학 농민 운동을 추진할 수 있었다. 누군가와 큰 뜻을 함께 품고 바라봄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확장된 세력을 통해 동조 세력을 얻을 수 있는 면에서 매력적이다. 그러나 뜻이 한정되어 확장을 멈추는 순간 동지는 타자들에게 카르텔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익을 위해 공익을 훼손할 수 있는 괴물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다. 따라서 동지, 천화 동인은 개방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항상 생각을 열고 다른 사람과 다른 사회를 향해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