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에 젖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타성에 젖었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타성에 젖는다는 것은 곧 경쟁력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여행을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그가 보일러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캐리어에게 말했다.
“그래, 다시 좋은 시절이 온 거야?”
“아니. 아무래도 타성에 젖은 것 같아서 연차를 좀 썼어.”
“그래. 그게 매뉴얼이지."
‘매뉴얼이라.’ 캐리어의 아가리에 짐을 쑤셔 넣는 동안 그는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싸는 행위조차 타성에 젖은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관절 타성이 뭐란 말인가. 그는 타성에 젖어서는 안된다고만 배웠지 정작 타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타성에 젖지 않을 수 있는지는 배워본 적이 없었다.
‘다들 여행을 하면 뭔가를 배운다고들 하잖아.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내가 배워야 하는 건 타성인지도 모르지.’ 모든 순간을 배움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그의 부지런한 정신은 이번 여행의 테마를 정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다.
1. 비행기에서
비행기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만 한다. 수동적인 태도를 미덕으로 삼는 시공간은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비행기 표값이 그렇게 비싼 이유는 아마도 그 희소성 때문일 것이다. 승무원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니, 생존본능과 목적에 대한 갈망이 모두 살균된, 타성에 젖기 위해 세팅된 실험실이라고 불러도 좋은 곳. 실험실의 고요가 잠시 흐트러지는 유일한 순간은 누군가 배설을 해야 할 때뿐이다.
‘웃기는 일이지. 비행기에선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면 정말로 실례를 하러 가잖아.’ 그는 비행기의 좁은 화장실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내가 바랐던 삶을 향해 달려왔어. 회사에선 인정받고 있고, 벌이도 그럭저럭 괜찮아. 전세 기간도 아직 남아있지. 그런데 이 삶을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실례를 범해 왔을까. 지금까지 회의에서 몇 번의 거짓말을 했지? 명함 뒤에 숨어서 몇 명에게 허풍을 떨었나? 면접에선 뭐라도 잘 아는 양 사람들을 평가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배설하는 것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막 내뱉은 말들. 그 말들 때문에 사이가 틀어진 사람들. 왜 이런 생각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비행기에서만 드는 걸까.’
다시 승객들이 얌전히 잠들어 있는 이코노미석. 그는 승무원에게 세 번째로 맥주를 주문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마치 간을 빼둔 토끼처럼 욕망을 고이 접어 캐리어에 담아둔 사람들, 실례하기 전에 정말로 실례한다고 말하는 잠시 정직해진 사람들은 어느새 다들 잠들어 있었다. 그는 이 평화로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펜을 꺼냈다.
'나는 타성이 나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 기계로 만들어진 자궁 같은 비행기 안에서, 자리에 안전벨트로 묶여 타성을 공급받는 지금 나는 평온함을 느낀다. 고해성사 부스처럼 생긴 화장실에선 깍지를 끼고 회개도 했다. 여기 공중에서 잠든 이들의 얼굴은 얼마나 천사 같은지. 아무래도 주체성이라는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게 우리의 문제 같다.'
2. 해변에서
그 해변은 서울에선 일 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헐벗은 연인들이 비치타월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지고 소년들은 모래사장 위에서 맨발로 축구를 하는 곳. 모래가 너무 고와서 소년들은 발을 다칠 염려 따윈 하지 않고 있는 힘껏 공을 찬다. 바다 멀리로 공이 날아가면 빛나는 발바닥을 보이며 헤엄을 친다. 주민들은 주말이면 주중에 뜨거워진 머리를 담그러 해변을 찾아오는데, 부지런한 주민들이 파라솔과 비치타월로 백사장을 알록달록 수놓을 때쯤이면 관광객들을 가득 채운 버스가 해안 도로를 지나간다. 옆 동네의 유명한 성을 보러 가는 관광객들은 버스 안에서 해변의 풍경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다.
"저 버스를 타고 성을 보러 가려던 게 내 원래 계획이었지" 그가 캐리어에게 말했다.
"호텔에서 쉬는 게 내 계획이었고. 여긴 너무 뜨거워. 결국엔 내 안에 모래가 들어갈 수밖에 없을걸. 그럼 기껏 골라서 챙겨온 옷들을 전부 다시 빨아야 할 거라고." 캐리어가 툴툴댔다.
"나는 계획을 지키는 걸 잘 못하나 봐. 분명히 계획을 세울 당시엔 내가 원했던 걸 텐데도 어느 순간이 되면 그걸 망가뜨리고 싶어져.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획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야말로 인생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그 얘기를 듣고 근처 바위에서 쉬고 있던 갈매기가 푸드덕대며 다가온다.
"자유는 영어로 프리덤. 스페인어로는 리베르따르. 중국어로는 쯔요우. 나는 자유롭고 싶어서 세계를 여행했지. 몸이 움직이는 거리만큼 내 안의 세계도 넓히고 싶어서 외국어를 공부했고. 네 근처에서 어슬렁거려도 될까?"
"물론이지. 넌 정말 열심히 살았겠구나"
"맞아. 그런데 다른 갈매기들이랑 날 비교할 때면 나 스스로가 언제나 아주 게으른 갈매기처럼 느껴져."
"그야 넌 가진 게 없으니까. 자유는 재산이 아니야. 삶을 어느 정도 살고 나면 가방 안에 넣을 수 있는 걸 남겨야지. 그게 없으면 게으른 거야." 캐리어가 끼어들었다. 가방들은 원래 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 너는 가방이니까. 가방으로 태어나서 가방이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울 뿐이지. 우리는 달라. 우리는 움직이는 존재라고. 세상을 둘러보면서 마음속에 무언가 원하는 것을 품지. 이 소망을 며칠을 품고 있으면 계획이 생겨. 계획에 의지가 더해지면 습관이 되고, 한번 습관이 생기면 시간은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 그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완전히 다른 갈매기가 되어 과거의 소망을 바라봐. 그리곤 깨닫지. 시간이 덧칠된 소망은 더는 소망이 아니라 타성일 뿐이란걸. 그러면 우리는 이 낡고 빛바랜 구조물을 허물어뜨리고 다시 한번 새로운 소망을 품을 준비를 하는 거지. 이 순환을 살아내는 게 자유라고. 가방인 너는 절대로 알 수 없겠지" 게으르다는 말에 기분이 상한 갈매기가 캐리어에게 쏘아붙인다.
"하지만 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야. 난 방수도 되고 도난 방지용 자물쇠도 달려있지. 내가 움직임을 모른다고? 내겐 360도로 돌아가는 바퀴가 있어. 뒤로도 옆으로도 끌 수 있지. 난 쓸모가 있어. 하지만 너, 자유로운 갈매기는 누구에게 쓸모 있지?"
캐리어가 응수했다. 갈매기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속눈썹 뒤로 후퇴했다. 갈매기는 깃털 속으로 목을 파묻고 동그래졌다. 그는 어색한 분위기 풀고 싶어 갈매기에게 물었다.
"이것 봐 갈매기야. 너는 타성에 대해서 말했지. 내게 타성에 대해서 설명해 줘. 나는 타성에 젖었다는 생각 때문에 여행을 왔어. 타성이 대체 뭐야?"
이미 풀이 죽어버린 갈매기는 한참 생각하다 답한다.
"사실 가방이 맞을지도 몰라. 나는 그냥 나에 대해서 생각하길 멈추지 않는 늙은 갈매기인지도 모르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안정감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요즘식으로 루틴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일상에 깃털을 하나 돋아나는데 이 깃털의 이름이 바로 타성이야. 이 깃털이 자라 날개가 되면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날개를 펼쳐 가는 곳엔 불행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런데 타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시하는 게 불가능하단 거야. 변해야 할까? 아니면 현실을 계속해서 사랑해야 할까? 타성의 ‘타’에 쓰이는 한자어는 ‘게으를 타’란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남들이 보기엔 아주 게으른 놈이 되어버린다는 뜻이지."
"하지만 네가 아까 말한 자유에 대한 얘기는 꽤 멋졌는데."
"그래? 사전 저 아래 어딘가엔 ‘타'라는 글자에 또 다른 뜻도 있다고 적혀있단다. ‘아름다울 타’야. 나는 이걸 믿기로 했어. 우린 이미 날개를 갖고 태어나 버린걸. 이러니저러니 해도 날개는 아름답거든."
그는 충실한 캐리어와 아름다운 갈매기 사이에 드러누워 타성에 대한 두 번째 메모를 썼다.
'우리는 쓸모 있고 싶어 하는 동시에 자유롭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일상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또 허물어트린다. <이대로는 안돼!> 시간을 모두 점유하겠다는 기세로 몰려오는 계획이라는 밀물과 그 모든 노력을 비웃듯 모래성을 휩쓸어 버리는 썰물 같은 타성. 이것들은 전혀 다른 마음 같지만 실은 같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조금 전과 지금의 바람이 다르게 느껴지지만 바람의 고향이 결국엔 바다이듯이.'
3. 바다에서
그때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푸른 하늘에 검은 연기가 섞여들기 시작한다. 물감을 풀듯이 하늘은 어두워졌고 바람은 더러워졌다. 바람은 이제 재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 도착했을 때부터 받았던 재난문자가 말한 바로 그 산불, 며칠 동안이나 꺼지지 않고 타올랐다는 산불이 해변 근처까지 온 것이다.
매캐한 냄새를 맡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과 갈매기랑 노닥거릴 수 있는 평화로운 한때는 끝났다. 끊임없이 나아가고 싶은 불같은 정신은 실제로 지구를 태우고 있다. 산불을 내고 전쟁을 일으키고 모두의 마음에서 희망을 징병해가는 행진.... 짧은 휴가가 끝나면 그 역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그 행진에 복무해야 한다. 지성을 희생시켜야 할 것이다. 관계를 재개발해야 할 것이다. 외면하기를 훈련해야 할 것이다. 삶을 파괴하는 데 삶을 쓰지 않는 건 가능할까?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지?
그는 휴가지의 하늘에 섞여드는 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좋은 시절은 오지 않는다. 가끔 연차를 쓸 뿐. 탈출구도 없다. 소비가 있을 뿐. 여행지에서 느끼는 해방감은 비행기에서 과다 공급된 타성 덕분에 생긴 선명한 대비 효과에 불과하다. 여행에 힘입어 짧은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생각의 사치를 누리며 자기의 마음을 갖고 노는 순간에도 마지막에 남은 것은 삶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자각뿐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그는 옷을 벗고 바다를 향해 비틀대며 걸어간다. 물에 들어가자 바다가 천둥 같은 목소리로 묻는다. 너는 무엇을 원하나! 그가 팔을 휘저으며 답한다. 그런 질문은 저기 애들한테나 해라! 너무 멀리 차버린 공을 향해 달리는, 무엇이든 원할 권리가 있는 아이들! 자맥질을 겨우 한번 했을 뿐인데 물은 놀라우리만치 차가워진다. 파도가 그의 얼굴을 때린다. 바다가 다시 묻는다. 너는 무엇을 믿는가! 그가 다시 한번 허파에 숨을 채우며 답한다. 그런 질문은 저기 새들에게나, 아니면 해변에 놓인 짐들에게나 해라! 날개든 역할이든 물려받은 유산이 있는 상속자들에게! 발등으로 수면을 쳐 물보라를 만드는 그에게 바다가 다시 묻는다. 너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런 건 저기 살찐 노인들에게나, 사랑이 유용함으로 쪼그라들지 않았던 호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나 해라!
그는 계속 나아갔다. 정신이라는 기계장치가 소금물에 푹 잠기도록. 짐을 도둑맞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나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머지않아 소실될 것이다. 여기 여행의 최종장에서 해야 할 일은 바닷물을 들이키며 헤엄치는 것, 공포와 기쁨을 번갈아 호흡하며 바람이든 물살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뿐. '바닷속에서는 젖는다는 말이 통하지 않아.' 그가 바다에서 수영을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2024.10)
-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
풀칠 매거진 | https://slashpage.com/fullch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