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풀칠

곱창맨 이야기

짐승 같은 몰골로 곱창을 먹으며 제 인간성을 증명하는 것이죠

by strangecowcow

이건 매주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새벽마다 곱창을 시켜 먹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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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편의상 곱창맨이라고 하자. 곱창맨은 매일 점심 회사 사람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샐러드와 야채 주스를 배달시켜 먹는다. 스터디의 종류는 다양하다. 영어, 마케팅, 스프레드시트, 두꺼운 책같이 읽기 등등. 저녁에도 보통 회사 사람들과 샐러드를 시켜 먹는다.


곱창맨은 일이 아주 많다.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엔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일이 많으므로, 곱창맨은 자정을 훨씬 넘겨서 퇴근을 한다. 집에 도착하면 곱창볶음과 치즈 볶음밥을 배달시킨다. 침대에 누운 채로 그것들을 먹는다.


곱창맨의 식사를 늘어놓고 보면 현대인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회사 동료와 함께 밝은 사무실에서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샐러드를 두 끼 연속으로 먹어놓고선, 하루가 끝나기 직전에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니까. 야심한 새벽, 깻잎 위에 볶음밥과 곱창과 마요네즈를 얹은 다음-그 죄악의 덩어리를 맥주와 함께 삼키는-침대에 붉은 소스가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는-흉포한 야생의 곱창맨의 마음엔 무엇이 있나. 곱창이라는 ‘루틴화된 일탈’의 정체는 무엇인가. 곱창맨에게 물어보자.


“제가 곱창을 먹는 이유는 유혹에 굴복했다던가 뭐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제 의지로 모든 것을 망쳐버려도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겁니다. 낮 동안 샐러드를 먹으며 쌓은 ‘건강 포인트’를 매몰비용 처리할 위험을 감수하고요. 유혹에 넘어가는 것과 결정을 내리는 것엔 상당한 차이가 있죠. 전자는 곱창의 노예임을 수줍게 고백하는 것이고, 후자는 고개를 쳐들고 ‘내겐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수요일 새벽에 곱창을 시키는 이유는, 여전히 내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인간인지를 증명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짐승 같은 몰골로 곱창을 먹는 순간을 통해 인간성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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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요일에도 곱창맨은 새벽에 퇴근을 한다. 오늘의 곱창맨은 유난히 더 지쳐 보인다. 그의 부하직원 중 누군가 어떤 일로 눈물을 보인 것일까. 아니면 그의 상사가 그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던진 것일까? 아니면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기엔 부족한 능력을 실감하고 심란해진 것일까? 곱창맨은 피로하다. 그러나 이 피로는 밤거리를 걷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피로다. 오늘 곱창맨은 배달을 시키는 대신 방문포장을 하기로 한다.


늦은 시간이지만 곱창가게엔 불이 켜져 있다. 기름이 잔뜩 낀 유리창 너머로 두건을 뒤집어쓴 건장한 곱창가게 주인이 철판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다. 곱창맨은 곱창가게 주인을 바라본다. 곱창맨과 곱창가게 주인은 동년배처럼 보인다.매주 수요일마다 나의 인간성을 증명해 주는 사람. 새벽까지 불판 앞에서 곱창과 야채를 볶는 사람. 곱창맨은 그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싶어진다.


“사장님 곱창이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매일 늦게까지 영업하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밤에도 손님이 많나요?”


곱창맨이 듣고 싶은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힘들다는 말을 듣고 싶었나? 곱창가게 주인이 힘들면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싸구려 위로를 얻을 수 있으니까? 밤에도 손님이 많으면 뭐? 그처럼 새벽에 잠을 자는 대신 인간성의 위기를 곱창으로 막아내는 이들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나?


“아유 장사가 안돼요. 그래도 여는 거죠. 이제 들어가시나 봐요. 저도 곧 마감입니다.”


저도 곧 마감입니다. 곱창맨은 비문인 듯 말이 되는 듯하는 곱창가게 주인의 말을 곱씹는다. 곱창가게 주인은 가게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곧 가게이고 가게가 곧 나인 물아일체의 경지인 것일까. 가게를 열면 저는 오픈입니다, 가게를 닫으면 ‘저는 마감입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아니면 곱창가게 주인도 어떤 존재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곧 마감이다. 곧 끝을 보게 된다. 곧···.


곱창가게 주인은 금방 곱창을 내놓는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곱창맨의 인간성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다. 플라스틱 통을 감싼 비닐랩에 금방 습기가 찬다. 이날 곱창맨은 평소보다 곱창을 많이 남겼다.



3

수요일 새벽의 루틴화된 일탈 때문에, 곱창맨은 목요일마다 컨디션이 영 별로다. 곱창가게 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눈 다음 날도 평소처럼 컨디션이 나쁘다. 부은 얼굴로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오전엔 자리보다 변기 위에 앉아있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화장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회사 안의 다양한 소식들을 듣게 될 확률이 올라간다. 오전 동안 곱창맨이 수집한 사내 소식은 두 개다. 하나는 옆 팀 직원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의 입사 동기가 건강검진 결과 수상한 혹이 발견되어서 정밀검사를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결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던데, 돈이 많이 든다고 하던데, 주변에 결혼을 하는 사람은 많다. 100세 시대라던데, 인간의 수명이 어느 때보다 길어진 시기라던데, 병으로 회사를 관두는 사람들도 많다. 곱창맨과 옆 팀 직원과 그의 입사 동기는 모두 비슷한 또래다.


변기 위에서 곱창맨은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가 다 같이 어떤 갈림길에 다 같이 서있는 것 같다고. 동시에 어떤 내리막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어제 곱창가게 주인은 저도 곧 마감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곧 마감인 것일 수도 있다. 청춘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진 인생의 첫 번째 계절이 곧 마감인 걸 수도 있고, 좋든 싫든 지긋지긋하든 예뻐죽겠든 나만 관심사에 두고 살아도 별문제가 안되는 싱글 라이프스타일의 첫 번째 구독 기간이 곧 마감일 수도 있고, 건강한 몸과 소진되지 않는 마음으로 늙어갈 수 있는 시대가 곧 마감일 수도 있다.


선택을 유예할 수 없는 갈림길 앞에 서있는데, 모든 길이 왠지 내리막인 것 같아 발을 떼고 싶지 않은 산꼭대기. 지금 곱창맨은 그 산꼭대기에 위치한 화장실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변기 위에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한 자세로 앉은 곱창맨은 생각한다.


‘이것 참 피곤한데. 배도 아프고. 이제 수요일 새벽마다 곱창을 먹는 것도 그만해야 할 것 같아. 어쩌면 나도 어떤 혹을 몸속에 기르고 있는지도 모르지. 올해 건강검진을 받았던가? 그나저나 그 녀석도 결혼을 하는군. 어떻게 결혼을 하지. 결혼이라. 하기 싫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해야겠다 싶은 것도 아니고. 굳이 표현하자면 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나 할까. 여튼 결혼을 하는구나. 결혼하면 먹다 남은 곱창을 침대 옆에 그대로 두고 출근하는 짓은 더 이상 할 수 없겠지.’


그리고 물을 내리며 다시 생각한다.


‘세상이 언제까지 버텨줄지도 모르는데 이런 생각이 다 뭔 소용이냐.’


그날도 곱창맨은 야근을 했다. 점심은 걸렀고, 저녁은 샐러드로 때웠다. 새벽에 되어서야 겨우 퇴근에 성공한 곱창맨. 어제보다도 더 늦은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곱창맨은 강렬한 허기를 느낀다. 오늘도 곱창이나 먹을까. 지금쯤이면 이미 마감을 했으려나. 전화를 해서 물어나 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곱창집이 이 세상에서 지금 전화를 걸 명분이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곱창맨이 퇴근길의 허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은 지구상에 딱 하나, 오직 곱창집 뿐이다.


곱창이 아니면 너무나 고독한 곱창맨은 골목길을 서성댄다. 먹어? 아니지. 건강을 생각해야지. 아니지. 미래를 생각해야지. 곱창맨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쌩하고 지나가며 바람을 일으킨다.


오토바이 소리가 새벽의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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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건강한 음식으로 규칙적으로 챙겨 먹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더라고요. 낮엔 대충 때우고, 저녁엔 ‘오늘까지만…’을 되뇌며 배달을 시켜 먹죠. 이번 이야기는 이 괴팍한 식습관을 생각하며 지었습니다. 고맙습니다.


source : https://fullchill.stibee.com/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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