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풀칠

김장 비법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우선순위, 우리는 무엇을 기꺼이 잃기로 했는가

by strangecowcow


우선순위란 말에 익숙해진 건 회사를 다니고 나서지만 그 개념을 회사보다 먼저 내게 알려준 건 엄마다. 엄마는 늘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단칼에 잘라 결정하곤 했다.


엄마의 기준에서 내가 밖에서 하는 일은 대체로 중요하고 집안일은 대체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학원에 가는 건 외할머니를 보러 가는 일보다 중요하다. 심지어 내가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는 일도 제사나 친척 어른 방문 같은 집안일보다 더 우선순위를 높게 쳐줬다. 가족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다른 가족이라면 외식 따위로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내려고 벼르는 그런 날들조차 나의 바깥 용무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은 없었다. 괜히 눈치가 보여서 그래도 올해는 챙겨야 하지 않을까 하고 물어보면 엄마는 늘 세상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니 일에나 신경 써라.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엄마의 이 건조한 음성 이면엔 아마 그렇게 말하게 된 여러 가지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의 '바깥일'에 대한 지나치다 싶은 존중 뒤엔 어쩌면 그 옛날에 시집에 와서 희생된 그녀의 바깥일이 있을 것이고,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무신경함 뒤엔 역시 그 옛날에 종갓집의 대소사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은 탓이 얼마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시절의 디테일을 겪지 않은 나는 엄마의 우선순위 알고리즘을 굳이 파헤치려 드는 대신 그냥 순응하는 쪽을 택했다.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 것도 가풍이라면 가풍이다 하고 생각하며,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실제론 대단찮은 ‘바깥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았다.


그러다 취업을 해서 아주 서울에서 지내게 됐다. 엄마도 내 취업과 비슷한 시기에 30년 경력의 주부에서 요양보호사로 ‘커리어 전환’을 했다. 가족 간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살던 가족이,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해 버렸을 때 만날 명분이 뭐가 있을까. 있긴 있을까. 뭐 하러 오냐. 너나 나나 밖에서 일하는 게 중요하지. 우리는 굳이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만나는 대신에 종종 전화나 하는 것으로 ‘퉁’ 치는 사이가 됐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는 말을 들으며 자란 건 꽤 도움이 됐다. 내가 몸담은 업계-스타트업-에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한 능력으로 대접받는다. 적은 ‘리소스’로 ‘린’하게 ‘실험’ 하기 위해선 ‘액션 아이템’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고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나는 엄마의 그 건조한 음성을 가슴에 부적처럼 품고 쌓여있는 일에 돌격한다. 논의한다. 설득한다. 공격한다. 묵살한다. 갈아 넣는다. 덕분에 나는 우선순위를 잘 정리하는 사람이란 평판을 얻게 되었다.


우선순위를 쫓으며 사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우선순위는 요양원의 부흥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단지를 만들어서 아파트에 돌리기까지 했다. 주간이든 야간이든 그녀의 근무는 빈틈이 없다. 챙겨야 할 일들에 순서를 매겨서 인쇄한 다음 후배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단다. 그녀 덕분에 ‘데일리’로 챙겨야 하는 일들은 ‘시스템화’ 될 수 있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요양원에서 제법 중요한 인물로 대접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살림살이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월세 내고 밥 사 먹는데 벌이를 다 쓰고 있다. 이미 늙은 엄마는 아직도 노후를 구매하지 못했다. 아마 그녀의 통장 잔고는 구매는 고사하고 노후에 대한 욕구를 싹 틔우기에도 역부족일 것이다. 그래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게 무슨 부조리한 일은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자명한 결과에 가깝다. 바깥일을 집안일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살았는데, 콩 심은 데 콩이 나지 팥이 나겠는가. 직장에서의 인정과 개인적인 삶의 안정,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양에서 음으로 돌아선 지는 하도 오래되어서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퇴근과 출근 사이의 거리가 좀 넉넉한 주말엔 우선순위에 밀려서 사라진 것들의 목록을 살펴볼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랍쇼. 내 배에 분명 왕자까진 아니어도 십일 자 정도는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뱃살이. 어랍쇼. 나 그래도 꾸준히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집중력 어디 갔지? 흠. 친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었던가. 아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라면에다가 김치를 샥 올려먹어야 하는데. 엄마 김치 먹고 싶다. 엄마는 시집와서 제일 통쾌했던 순간이 김치로 이 집안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줬을 때라고 했다. 야야. 너네 아빠 집안사람들은 싱거워서 김치 담글 줄도 모른다고 했었지. 어렸을 때 들은 그 말이 어찌나 생기 넘치게 들렸는지 나는 엄마의 김치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로 이해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비법,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사라질 가능성이 꽤 큰 그 비법을 전수받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선순위를 올려서 진행해 볼 만한 일이다. 엄마에게 전활 걸자!


어 엄마. 언제 내려가서 김치나 좀 담글까. 겉절이도 좋고. 나 좀 알려줘요. 연차 쓰고 갈게. 전화기 너머의 엄마는 뭔가 분주한 것 같다. 쓸데없이 뭐 하러 그래? 할 일이 태산인데. 요즘엔 우리도 김치 잘 먹지도 않는다 야. 그나저나 들어봐라. 요양원에 옴이 퍼져서 2층 쌤들이 죄다 걸렸거든. 응응 나는 괜찮아. 근데 원장이 산재를 안 해준다고 이게 말이 되니. 그래서 쌤들이랑 뒤집어엎으려고…야야 끊어봐라. 전화 온다.


김장 비법을 전수받는 일은 분명 꽤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이번에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렸구나. 역시나 세상엔 중요한 일이 참 많기도 허다. 싱거운 라면을 하나 끓여두고 엄마의 우선순위를 궁금해해 본다.


요양원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번 일은 좀 쉽지 않아 보이던데. 괜찮을까. 그래도 목소리를 쨍쨍했으니 괜찮겠지. 다음 주 주말엔 꼭 집에 가는 것으로 해둬야겠다고, 김장 비법은 전수받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한번 가봐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가만히 누워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밤.


우선순위 조정이란 이렇게나 중요한 일이다.(2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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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퇴근길에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우선순위’란 말을 정말 많이 내뱉었더라고요. 최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고를 때, 누군가의 의견에 반대할 때, 내 의견을 설득시키려고 무진장 애쓸 때.


오늘 이야기는 하루 종일 달고 사는 우선순위란 말에 대한 장면 몇 개를 엮어 만들어봤습니다. 숱한 우선순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source : https://fullchill.stibee.com/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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