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년 전, 스페인으로 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당시엔 그게 유행이었다. 거기엔 내 또래의 한국인이 많았는데, 우리는 굳이 이 먼 데까지 와서 걷는 이유를 물으며 친해졌다. 다들 크고 작은 실패를 이유 삼아 여행을 하고 있었고, 그 실패들 중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실패는 없었다. 아무래도 실패가 흥행하는 때였으니까.
거기서 내 나이 또래의 남녀와 친해졌다. 그들은 부부였다. 아주 지랄 맞은 상사를 만나서 더 견디고 싶지가 않았다고, 그러던 찰나에 TV에서 여행하는 예능을 보고 그냥 떠나와버렸다고. 걸음은 느리고, 말은 많은 둘과 함께 몇 주를 같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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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더라. 여행은 끝이 났고, 우리가 현실로 돌아 간 건지 현실이 우리를 찾아온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각자 살던 도시로 흩어졌다. 어찌어찌 일을 다시 시작했고, 계속 일에 붙어있으려고 애썼고, 야근을 거의 매일 했고,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그래도 그 둘과는 종종 연락을 했다. 둘의 프로필 사진은 언젠가부터 갓난아이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는데, 그걸로 미루어보아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통과해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지하철 지연이 유난히 심하던 어느 날, 나는 둘의 ‘한번 놀러 오라’는 말에 좋다고 답장을 보내 버린다. 매일 타는 열차, 한 번쯤은 다른 방향으로 건너가 지나간 시절의 인연을 만나러 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3
부모가 된 둘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능숙하게 우는 아이를 달래고 분유를 타 먹이고 기저귀를 갈면서 출근 준비도 한다. 새벽에도 자지 않고 낮에도 졸지 않는 젊은 부모는 아이가 잠드는 그 짧은 평화의 순간마다 내게 스페인 이야기를 하러 온다. “우리 그때 진짜 젊었다 아이가” “그때 진짜 좋았다” “니는 힘들다고 신발도 집어던져놓고 뭘 좋았다 하는데.” 아이가 깨기 전까지 우리는 목소리를 낮추고 시간 여행을 한다. 그때도 지금도 말이 별로 없는 나는 투닥대는 둘에게 우물쭈물 대다가 그래도 지금 참 좋아 보인다는 인사를 겨우 건넨다. “아, 맞나”
무사히 밥도 먹고 트림도 한 아이는 잠들었다. 아이가 내는 숨소리는 사람이 내는 소리라기보단 생명 그 자체가 내는 소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옆방에서 소곤소곤 옛날 생각을 하던 젊은 부부의 말소리도 이내 졸아든다. 소독된 주방의 식기들이 정오의 햇볕을 받아 빛나고 있고 도시의 소리는 아주아주 멀게 들린다. 저 밖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중요한 일로 시끄럽게 굴며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만, 여기의 시간은 바깥의 바쁨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우리는 한낮 내내 잤다.
4
그날 저녁엔 침대 머리맡에 달린 카메라를 믿고 대담한 모험을 떠났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고깃집에 가서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한 것. 둘은 사장님을 포함한 가게의 모든 사람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장님은 밑반찬이며 고기며 볶음밥이며 내올 때마다 애는 잘 있나 하며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젊은 부부는 그럴 때마다 나를 귀한 손님이라고 소개하며 동문서답을 한다. 핸드폰 화면 속 아이가 뒤척일 때마다 둘 중 하나는 고기를 먹다 말고 뛰쳐나간다. 고깃집의 모든 사람들이 참 좋은 세상이다 하며 웃는다.
고깃집 수저통에 기대 둔 핸드폰 화면 속에 젊은 아빠가 등장한다. 아이를 안는다. 둘의 눈동자가 검게 반짝, 빛난다. 핸드폰 화면을 보고 웃는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술잔을 채운다. 화면 속의 그이가 다시 테이블 앞에 앉길 기다려야 하므로 ‘짠’은 잠시 미뤄둔다. 고깃집의 사람들이 젊은 아빠가 아이를 어떻게 다시 재우나 보려고 화면 앞으로 모여든다. 모두의 불콰한 얼굴에, 세월마저 씻어내리는 미소가 번진다.
변화, 그것도 아주 빠른 변화가 일상이 된 요즘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변화를 잠시 등지고 머무를 수 있는 시공간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지었습니다.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