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관하여
1.
여자는 오늘도 밥그릇 하나와 반찬그릇 여섯, 뚝배기 하나를 깨끗하게 비웠다. 이 테이블에서 정리할 쓰레기는 순두부찌개를 담았던 검은 뚝배기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하얀 바지락 껍질뿐이다. 반찬그릇을 차례로 쌓은 뒤 밥그릇 뚜껑을 뒤집어 올리고 그 위에 밥그릇을 얹는다. 이후 그것들을 한 번에 들어 올려 뚝배기 위에 둔다. 남은 반찬이나 양념, 국물이 없어 깔끔하게 착착 소리를 내며 쌓이는 그릇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행주로 테이블을 슥슥 닦은 다음 그릇들을 퇴식구로 가져간다.
여자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식사 피크타임이 지나면 양손에 커다란 리사이클 가방 두세 개를 메고 들어온다. 항상 가장 구석진 곳에 앉아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순두부찌개를 주문한다. 실장님과 나는 여자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딱 봐도 스몰토크를 할 만한 성격이나 상태가 아닌 듯해 그저 추측밖에 할 수 없다. 이 또한 무의미한 일이라 곧 그만두고 말았지만. 한 가지 확신했던 것은 여자가 대문자 I 중에서도 손꼽히는 I일 것이라는 점이었다.
여자는 식당에서 딱 한 마디만 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 마디도 안 된다. “ㅅㅜㄴㄷㅜㅂㅜㅉ…”와 같은 뉘앙스만 캐치하고 “순두부찌개 드릴까요?”라고 되물으면 보일 듯 말 듯 고개만 끄덕인다. 늘 깨끗이 비우는 그릇을 보면서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밥과 밑반찬을 추가(*무료)하고 싶은데 말을 하지 않은 것 아니었을까? 다음에는 2인 테이블에 나가는 양으로 반찬을 담았다. 밥도 조금 더 펐고. 여자는 오늘도 밥그릇 하나와 반찬그릇 여섯, 뚝배기 하나를 깨끗하게 비웠다.
2.
남자는 동태탕과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앉아있다. 이른 아침 문을 열고 빼꼼 얼굴을 들이밀며 “식사되나요?”라고 묻는 그에게 “물론이지요”라고 답했다. 재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공식오픈시간은 10시로 설정해 뒀지만 이렇게 묻는 손님은 소수이므로 충분히 응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다. 어느 틈엔가 주방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바꿔 앉더니 마치 소개팅 상대방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사람인양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이 남자처럼.
남자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건설 현장으로 일하러 데리고 다니는 ‘동생들’이 있으니 같이 한번 오겠다며. 응당 대꾸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재료 준비가 늦어지면 점심 장사에 큰 차질이 생긴다. 차라리 쉬는 시간이었다면 속으로 한숨 푹푹 내쉴지언정 겉으론 빵긋 웃으며 ‘서비스’를 제공할 텐데. 말꼬리를 흐리며 바쁜 티를 낼 수밖에 없다. 남자도 대화가 턱턱 막히는 것을 몇 번 겪더니 이내 이어가기를 그만둔다. 애써 모른 척하며 도마 위로 시선을 돌린다.
남자는 다시 말을 건다. 이번엔 나를 향한 것이 아니다. 남자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형님! 일 나가셨어요? 섭섭하네! 동생은 노는데!” 누군가에겐 형님이지만 누군가에겐 동생인 남자는 대화-나에게는 독백으로 들리는-를 이어간다. 전화를 끊은 뒤 잠깐의 침묵. 금세 새로운 대화가 이어진다. 또 다른 형님, 어떤 동생, 무슨 친구. 다음 상대는 누굴까 궁금해지던 차에 더 이상 대화가 들려오지 않는다. 슬쩍 홀을 내다본다. 남자는 동태탕과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앉아있다.
3.
외로움은 일인분의 식사가 아니다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
-조온윤, 「사인용 식탁」 중에서
우리 식당엔 혼밥 손님이 많다. 환대받지 못한 오랜 경험으로 인한 습관인지 주로 피크타임을 피해서 방문한다. 문제(?)는 구비된 테이블이 사인용뿐이라는 점. 그러다 보니 혼밥 손님들이 몰릴 때면 줄줄이 늘어선 사인용 식탁을 한 명씩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은 평일 오후 3시 40분. 세 분이 각각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시의 한 구절이 포착한 장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이다. 매일 저마다의 외로움이 전시된다.
물론 원문에서 화자가 일인분의 식사와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을 통해 발견하는 외로움은 자신의 것이다. 그는 “여느 날처럼 침묵을 두르고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고 말한다. 원래 외로움은 본질적으로 자신만 알아챌 수 있는 감정이다. 누군가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공표할 수 있는 권한이란 게 있다면 오직 그에게 귀속돼야 한다. 최소한 타인이 함부로 예단해도 되는 감정은 아닐 것. 그렇기에 그들에게서 외로움을 읽어냈다며 맘대로 재전시하는 이 글은 크게 선을 넘는 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내가 발견한 외로움(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그들이 아닌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일은 결국 손님을 기다리는 일.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손님들은 잠깐 자리를 채우고 떠날 뿐 결국 내가 마주하는 것은 늘 빈자리들이다. 매일 문을 열고 닫으면서 저 빈자리들을 채워줄 누군가를 고대했던 마음을 그저 묵묵히 밥을 먹었을 그들에게 투영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 원래 외로움은 자신만 알아챌 수 있는 감정이다.
파주 : ‘카페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라는 제목에 혹해 재생한 영상이 있었습니다. 유명 카페의 바리스타이자 공동 대표인 그분이 말하길, 카페 창업을 위해 필요한 재능은 커피의 맛을 낼 줄 아는 예민함이나 공간을 꾸미는 감도가 아니라 지겨움을 버티는 힘이라고 하더군요. ‘카운터에서 매일 보던 풍경을 바라보아도 괜찮아야 한다,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지겹거나 외로워지는 순간 끝이다’라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래전 본 영상이라 제 나름의 편집이 들어간 걸 수도 있습니다.)
그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미처 인지하지도 못했던 시선이었어요. 카페는 ‘내 공간’ 일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한 공간일 텐데 말이죠. 누가 올 지 모르는 저 문을 바라보며 하루 8시간, 혹은 그 이상을 버텨야 하는 일이라는 걸요. 저의 경우 ‘카페 사장’이라는 꿈에 낭만을 입혀서 그런 상상을 하지도 못했거든요. 잠깐 상상을 해보았는데 저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단 확신이 들었고, 이제는 ‘옛날에 품었던 꿈’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아매오님의 말에서 당시에 받았던 충격을 새삼 떠올리게 됐네요. 저의 상상과 아매오님의 현실이 다른 게 있다면, 빈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매일 같이 찾아올 거란 거겠죠.
야백 : 스프레드시트에, 보고서에, 대시보드에 숫자로 찍혀있는 것도 분명 누군가의 삶일 테지만, 직관적으로 그걸 알아차리긴 좀 어렵죠. 이 어려움 때문에 저는 종종 삶이 붕 떠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하고요. 디지털 세상의 안개 낀 허공을 오래 들여다본 탓인지, 혈당 때문인지, 현기증이 일 때쯤이면 점심시간이 찾아옵니다.
점심밥은 보통 혼자 먹는데요, 매번 다른 식당을 찾아가요. 식당을 고르는 기준은 ‘사장님이 혼자 앉아 있는 가게를 우선시한다’. 새로운 곳을 찾는 재미도 있고, 편한 분위기에서 원하는 만큼 오래 밥을 씹을 수 있고, 의외로 맛집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건 장점이고, 이 기준을 세우게 된 이유는 아매오님의 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혼자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제 눈엔 약간 외로워 보였나 봐요. 하지만 ‘외롭다는 느낌은 타인에게 투영된 본인의 감정’이라는 아매오님의 결론에 따르면, 결국엔 제가 외로웠던 거겠죠.
오늘도 혼자 밥을 먹으러 갑니다. ‘제일 잘 나가는 걸로 주세요’로 대강 주문을 하고 밥을 기다립니다. 물질세계에서 좌표를 잃은 데서 온 제 외로움과, 물질세계에서 홀로 타인을 기다리다 생긴 사장님의 외로움은 꽤 잘 맞아떨어질 수 있겠단 생각을 하면서요. 타인을 기다리던 사람이 헤매던 사람에게 음식을 내어주고, 그렇게 서로가 생활을 계속하도록 돕는 것. 내수경제는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아무쪼록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밥 많이 파시고 부자 되십시오.
아매오 : 어느새 밥집 개업 4개월 차를 맞았습니다. 저희 식당엔 혼밥 손님이 꽤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가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로움이 흘러 들어온다고 할까요. 단지 혼자 밥 먹는다고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저 자신이 혼밥을 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 없는 사람인데요.
그러다 어떤 시의 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지인이 운영했던 메일링 프로젝트 ‘맛있는 말’에서 ‘올해의 문장’으로 꼽은 것이었죠. (그 가려운 느낌의 정체를 단번에 밝혀주더군요. 두 다리를 건너온 문장이 매일 보는 풍경을 설명해 내다니. 글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고 새삼 느꼈습니다)
외로움은 일인 분의 식사가 아니다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
-조온윤, 「사인용 식탁」 중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써 봤습니다.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source : https://fullchill.stibee.com/p/232)
credit
에세이 | 아매오
코멘트 | 야백, 파주
편집 | 야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