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사진을 비워두는 이유에 관하여
프로필 사진에 자기 얼굴을 더 이상 걸어둘 수 없게 된 이들이 있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가 사무치게 싫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세계에 대한 힌트를 누구에게도 제공하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애초에 자기 삶에 밖에 내비쳐도 좋은 것이 존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로 ‘나’를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걸 수도 있다. 셀피 속에서 웃고 있는 사람과 머릿속을 떠다니는 못된 생각들이 모두 ‘나’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새삼스러워진 나머지 프로필 사진을 차마 걸어 둘 수가 없는 거다.
그냥 나이를 좀 먹은 걸 수도 있다. 셀카를 찍기엔 좀 겸연쩍어졌고, 사진을 건지도록 도와주던 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질 때가 되면 프로필 사진 한 장 건지기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친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옛 친구의 프로필 사진이 몇 달째 비어있는 걸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걱정하는 마음이 인다.
천사 같던 옛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나. 혹시 운이 없어서 지옥의 한가운데에 불시착해 버린 건 아닐까. 살기 위해 부대껴야 하는 악마들에게서 소중한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친구의 내면에선 무언가 심각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서점의 매대에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어떤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되고, 그 속에 비수처럼 놓인 문장을 들어 스스로의 심장에 박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 균열 때문에 더 이상 자아를 하나로 유지할 수가 없게 됐고, 대표된 자아와 대표되지 않은 자아 사이의 권력 투쟁에 고통받고 있는 거다. 텅 빈 프로필 사진은 정체성의 영토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일까?
프로필 사진을 비워두고 있다면 그 이유를 알려달라. 아니, 사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난 그저 잘 지내고 있는지가 아주 잠깐 궁금했을 뿐이다. 옛 친구의 디지털 그림자를 확대해 본다.
사실의 재현 대신 은유를 프로필 사진으로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의 프로필 사진은 바다다. 짙푸른 수평선 위로 조금 덜 푸른빛의 하늘이 펼쳐져 있는 육지의 어느 자락에서 찍은 사진인지 쉬이 가늠할 수 없는 두 덩이의 파란색. 프로필 사진은 ‘나’라는 국가의 국경선일 수밖에 없으므로, 프로필 사진이 바다인 사람은 섬이다.
섬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한다. 아침엔 2020년대였다가, 점심즈음엔 2030년 40년 50년까지 갔다가, 새벽엔 1990년대가 펼쳐진다.
그는 섬으로 꽤 오랜 시간을 지내왔고 그 결과 이제는 누구도 그의 프로필 사진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 타인의 핸드폰 스크롤 구석진 곳 어디쯤에 아주 눌러앉기를 택한 것이다. 거기 외딴곳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함께 섬에서 머물렀던 때도 있었다. 2010년대였다. 그때 섬엔 모든 것이 딱 필요한 만큼만 있었다. 외벽은 하늘색, 내벽은 흰색으로 칠해진 콘도에는 하늘색 울타리가 쳐진 프라이빗 비치가 있었고 우린 거기에서 말리부 오렌지를 시켜 먹곤 했다.
-앞으론 어떻게 할 거야?
-떠날 거야. 곧.
-하고 싶은 게 없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요즘 나는 2020년대를 열심히 살고 있다. 나의 프로필 사진은 2010년대 어느 섬의 해변가에서 찍은 야자수 나무 세 그루.
야자수 나무 세 그루를 앞세워 거래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친한 동료와 회사 욕도 하며 생일인 친구에게 기프티콘도 보낸다.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주소도 모르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부대낀다.
간혹 가다 나처럼 푸른 하늘 배경에 나무 몇 그루를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둔 사람들을 만난다. 떠나온 추억을 자기의 경계로 삼는 사람들. 그들의 프로필 사진 너머로 어떤 해변에서 보낸 시간들이 어른거린다.
이런 사람들과 얘기를 좀 나누고 돌아오는 날이면 오래된 친구들이 떠오른다. 유리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는 심정으로 안부 메시지를 써볼까. 운이 좋다면 언젠가는 가닿을 것이다.
잠들기 전엔 나의 섬 해변가로 가 순찰을 돈다. 메신저 앱 친구들의 리스트들을 스크롤하며, 누군가 붉은 점을 새로 띄우진 않았는지를 살펴본다. 신호를 기다린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대부분이 프로필 사진을 비워놓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봤더니 다들 ‘그냥’이랍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그냥’을 곱씹으며 썼습니다.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source : https://fullchill.stibee.com/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