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인간에 관한 단상들
1. 요즘 많이 들리는 소리는 '사람이 병목'이다. 맞는 말이다. 사람끼리 모여서 감정노동하면서, 소통 비용을 지불하는 동안 잘 구축된 에이전트는 그날의 일을 끝내버린다. 비용도 충분히 싸졌다.
모든 것이 가능해진 시대에 남는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다. 원래는 '누가 할지'가 중요한 질문이었는데 이제는 '누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졌다. AI보다 뛰어난 점이 있는 사람만 '누가'에 포함될 수 있다. 실행력으로서의 인간은 큰 의미가 없다. 이 때문에 일이 편해지기도 했지만, 다 같이 힘들어지는 쪽에 더 가깝다. 회사 입장에선 점점 직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2. 결과를 내는 게 너무 쉬워지니, 과정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하게 된다. 협업에 필요한 노드의 수가 줄어들고, 각 노드마다 정보가 머무는 시간 역시 극단적으로 단축된 세상에서, '프로'로 일한다는 것의 의미는 점차 '과정에서의 뛰어남'이란 뜻과는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 프로에겐 이제 결과만 있으면 된다. 메디치는 조각도 할 줄 몰랐고 그림도 그릴 줄 몰랐다.
그렇다면 과정은 이제 누가 취하는가? 아마추어이지 않을까. 아마추어는 미숙함이란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원래 어원은 '기쁨'이다.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목적인 이들. 과정을 누리는 것은 이제 아마추어가 아닌 이상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
3. 그런데 현실에서 아마추어란 과연 지속가능한 상태값인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모두 아마추어였지만(여기서 또 한 번, 철학의 '철'은 기쁨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노예 덕분에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아마추어가 아마추어로 계속 살기 위해선 누군가를-최소한 그 자신의 일부라도-노예로 삼아야만 한다.
4. 우리는 AI라는 노예를 갖게 된 주인에 가까운가, 아니면 AI 덕분에 쓸모 없어진, 갑작스레 해방을 맞게 된 노예에 가까운가? 역사 속에서 해방된 노예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에서, 러시아에서, 브라질에서, 인도에서 해방된 노예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극심한 빈곤이었다.
자유가 허가되었을 때, 실제로 누리게 될 자유가 '굶어 죽을 자유'가 되지 않으려면, 노예에겐 협상을 위한 '안전보장 카드'가 필요하다. '천부인권' 같은 그럴듯한 이야기 말고,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인간의 존재가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 노동 외에 뭐가 있을까. 있긴 있을까?
공리주의 실존주의 잠재력 소비자 등등 다 좋지만-이것들은 어쨌든 이야기일 뿐이다. 필요 없어진 존재의 인정 요구는 도덕적 호소에 머물고, 도덕적 호소는 협상력이 아니다.
인간에게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도피처는 있지만, '쓸만한 카드'는 있는가? 무력한 상황이 영 찝찝하다.
5.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들과, 동료의 'WHY' 설명 요구가 갈수록 시시하게 느껴지는 것 사이에는 분명 공통의 메커니즘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AI는 힘이다. 힘이 생기면, 상대와 대화하는 것보다 힘을 사용하는 게 더 간편한 선택지가 된다.
6.
-상대가 필요 없다면, 그의 고통은 집계하지 않는다
-왜냐고?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조건문을 극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이 조건문은 스스로가 그 이유이기도 한, 신과 같은 완결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7. 역사가 코드 두 줄로 렌더링 되는 시대. 나는 여전히 몸의 시간에 갇혀있다. 피로가 찾아오면 짐을 싸들고 강을 건너 퇴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