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사물의 윤곽선을 황금빛으로 칠하고, 사물은 긴장을 풀고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는 오후의 시간. 원래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었다. 하지만 친구는 아이가 집에 혼자 있게 되어서 집에 가봐야겠다고 했고, 덕분에 이 멋진 시간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봄이고, 토요일이다. 손님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디저트를 버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얼굴을 모르는 조카들-친구의 아이들-에게 약간 감사한 마음까지 드는 걸 느끼며 거리를 걷는다. 금빛으로 일렁이는 나뭇잎들, 빛을 머금은 은실 같은 사람들의 머리카락, 하얀 벽에 너무나 아름다운 기술로 인쇄된 나무 그림자들-.
친구의 아이들은 열 살이라고 했다. 걔들은 집에서 어른 없이 머무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내가 오후의 아름다움을 처음 배웠던 것도 10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은 실내화 가방을 발로 차면서 혼자서 등하교를 했었다. 아스팔트 산동네를 넘고, 오락실을 지나고, 시장이 서는 다리 위를 건너서 학교에 가면 아이들로 가득 찬 정글. 거기서 어찌어찌 생존기술을 익히고, 수업이 끝나면 마음 맞는 친구랑 모래 장난을 좀 치다가, 더 놀 사람이 없어지면 슬슬 집에 가는 게 당시의 나날이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선 초록대문집이라고 불렸다.
초록대문집. 초록대문집은 할아버지가 지은 집이다. 수도를 펌프로 길어 올려서 쓰고, 푸세식 화장실이 마당 구석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3대가 모여사는 옛날 주택. 그래도 초록대문집은 그 동네에선 나름 잘 사는 집이었다. 다락방이랑 창고까지 합치면 방이 한 10개는 넘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이 좀 살았냐 하면 그런 것까진 아니고, 아빠가 매일 출근하는 집이 별로 없는 그런 동네여서 살짝 좀 튀는 정도였달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길러온 초능력 하나. 초록대문집 문 앞에 서서 숨을 죽이면 소리가 아니라 진동으로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고막보다 조금 깊은 곳에 있는 어떤 부분이 웅웅 거리면서 뇌에 신호를 보낸다고 해야 하나. 아, 이건 누나가 소리를 지르는 거다. 아, 이건 엄마가 우는소리다. 아, 이건 정신을 놓은 할머니가 내는 괴성. 흠, 이건 아빠가 지르는 고함이군. 4 중창이 느껴지는 날은 재수가 없는 날이다. 하지만 다른 집에서도 이 정도 비명은 곧잘 울려 퍼졌기에 특별히 불행하다고는 못 느꼈던 것 같다. 동네의 아줌마, 누나들은 다들 비명의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그래도 인심은 좋은 동네라 다들 문은 열어두고 다니는데, 어쩐 일인지 그날은 문이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귀를 기울여 본다.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집은 비어있다.
내가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다들 어딜 간 걸까. 뭐, 종종 있는 일이다. 아마도 아빠는 할머니랑 병원에 갔고, 엄마는 누나랑 병원에 갔겠지. 두 팀 모두 싸우고 치료하느라 너무 바빠서, 어떨 때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아니, 지금은 어른들 걱정할 때가 아니지. 일단은 집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초록대문집을 바라본다. 대문 옆엔 아빠 차가 주차되어 있다. 그 시절에 이미 고물인 93년형 콩코드. 콩코드 뒤 외벽엔 창살이 달린 창문이 크게 있다. 창문에 있는 창살이 내 몸무게를 견뎌 줄까? 그 창살 위로는 보일러 연통이 나와 있다. 저걸 밟으면 장미 덩굴이 보초를 서고 있는 대문 위 공간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초봄이고, 장미 덩굴 보초병은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전이다. 일단 저기까지만 가면 옥상까지 가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옥상 난간에 팔을 걸고, 정글짐에서 하듯 몸을 훅 당겨주기만 하면 된다. 어린 시절의 몸, 반은 공상으로 반은 깃털로 만들어진 그 가벼운 몸 덕분에 나는 금세 초록대문집에 침입했고, 곧 그 집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다.
델몬트 병에 들어있는 보리차를 실컷 마셔주고, 손 씻는 건 귀찮으니 패스해 주고, 마루에 배를 내놓고 누워서 뒹굴며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를 바라본다. 감나무의 그림자가 마룻바닥에 들어온 걸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그림자, 너무 예쁜데. 그대로 크레파스로 바닥에 그려두면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 엄마-누나 연합군, 아빠-할머니 제국군. 둘 다 그 그림 앞에선 즐거워하지 않을까? 그런데 크레파스는 어디 있더라. 누나 방
에 가보자. 누나 방에 가는 복도엔 책이 가득하다. 크레파스도 좋지만, 엄마가 평소에 못 보게 하는 만화책. 지금 봐야 하지 않을까? 나무 그림자는 고민하는 사이에 조금 더 집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해가 지려면 아직 좀 남았고, 그림자는 점점 진해질 것이니 급할 것 없다. 보고 싶은 만화책을 잔뜩 꺼내서 주황빛으로 빛나는 마룻바닥 위에 던져둔다. 나무 그림자 위에 책으로 둥지를 틀어두고 중간중간 야한 장면이 나오는 60권짜리 삼국지 만화책도 보고, 누나가 보는 어려운 책도 한번 꺼내 보고, 엄마가 봐도 된다고 허락한 먼 나라 이웃 나라 만화책도 본다. 책을 파먹으며 가족들이 돌아오면 해줄 얘기를 잔뜩 수집한다.
-있잖아요. 나는 스위스야. 스위스는 중립국이거든.
스위스 사람들은 중립국이 되기로 결정했을 때 어땠을까. 기뻤을까. 혹시 조금 외롭진 않았을까. 언젠가 스위스에 한번 가보자고 해볼까. 감나무 그림자가 점점 더 길어지고 주황색이 방 안에 넘실대고 책들은 서늘해지는 공기를 타고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던, 초콜릿이 맛있고 시계가 고급이라는 스위스에서 보냈던 오후의 시간…….
부드러운 바람이 등을 밀어주는 대로 서울의 골목 여기저기를 쏘다닌다. 야외 테이블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친구는 집에 무사히 도착했을까. 친구의 아이들에게 오늘의 오후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내가 결코 답을 얻지 못할, 내 몫이 아닌 경이를 상상하며 걷는다. 컨디션이 너무 좋다. 이대로 영원히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대로 초록대문 집까지 걸어갈 수도 있을까?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손이 미끄러져서 실수로 자동응답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지금은 통화할 수 없습니다.
답장이 온다. 엄마는 띄어쓰기 대신 마침표를 사용한다.
아들. 넷플릭스 결제정보. 업데이트하라고 해서. 시간 날 때 해 줘.
초록대문집은 재개발로 사라졌다. 우리는 스위스에 간 적 없다. 나 대신 미소를 건네는 것은 넷플릭스 프로필 선택 화면이다. 해 떨어지기 전에 이제 그만 슬슬 집에 돌아갈까. 엄마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하늘 저 먼 곳이 보랏빛으로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