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풀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우 Jul 03. 2022

조각배

그래도 일 좋아하시죠?

아침에 핸드폰을 보다 이제는 잘 연락하지 않는, 사귄 지 오래된 친구의 생일이란 걸 알게 됐다. 케이크 모양 그래픽이 눈에 밟힌다. 하지만 출근이 급하므로 무시한다.

에디터라는 직무가 풍기는 뉘앙스 덕분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일종의 '글 프로'로 대우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회사에서 쓰는 글들이 좀 부끄럽다. 애를 많이 쓰긴 했지만, 완성까지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을 저울질할 시간도 퇴고를 위해 초고를 잠시 묵혀둘 시간도 없다. ‘내 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에디터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글을 잘 내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수행하는 기능은 글이라기보단 마감이다.

같이 점심을 먹은 동료는 내게 잘 읽었다는 말을 건넨다. 나는 그 잘 읽었다는 말 때문에 그가 정말로 읽은 것인지, 조금은 의심스럽다. "원래 글을 좋아하세요?" 그가 물어왔다. 그는 디자이너다. 나는 대답하기가 애매해서 그냥 질문을 돌려준다. "디자인... 좋아하세요?" 그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그의 일을 좋아하냐고 물어볼 때는 앞에 '그래도..'라는 쿠션어를 쓰는 게 좋겠다. 어느 유명한 영화의 명대사처럼. 그래도 디자인 좋아하시죠?

회사의 개발자들과 얘기할 때마다 나는 글쓰기가 코딩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글쓰기도 모르고 개발도 잘 모르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개발자들이란 대게 눈이 퀭하고, 커피를 많이 마시며, 오랜 시간 자판을 타닥거리는 이들이라는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그런 모습으로 자주 마주친다. 늦은 시간에. 화장실에서. 공통점은 또 있다. 우리가 하는 일 뒤엔 '짠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코드를 짠다. 논리를 짠다. 눈물을 짠다. 그래도 개발 좋아하시죠?

내가 겨우겨우 쥐어짜낸 텍스트를 업로드하는 페이지는,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힘을 합쳐 지은 공간이다. 나는 거기에 입주해서 이 기능 저 기능 건드리며 불평을 쏟아내는 까다로운 세입자다. 오늘도 작은 불편함을 찾아내서 제보를 했다. 아무래도 버그 같다고. 개발자는 버그가 아니라 반은 의도된 것이며, 반은 기술적 한계라고 얘기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퇴근 직전에 개발자에게 DM이 왔다. “ 다시 생각해 보니 버그가 맞습니다. 부족한 실력으로 오판해서 죄송합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DM에 감정 표현을 누른다. 하트.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에 우산모양 그래픽도 찾아서 누른다. 창밖으로 비 구경을 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과를 하고 싶다. 누구에게? 조회 수와 트래픽들에게. 개발자가 내게 그랬듯이 DM을 보내 사과하고 싶다.

비는 오후 내내 내린다. 퇴근시간은 지났지만 사람들은 집에 가지 않는다. 대신 비가 잦아들길 기다리며 배달음식을 시킨다. 비가 점점 많이 내린다. 집까지 가는 길이 온통 물로 가득 찼다. 이러다간 지하철 역사가 거대한 수영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숙한 수영선수다. 아직 어떤 영법도 배우지 못했지만 때가 되어 레일에 뛰어든. 온 힘을 쥐어짜 딛고 있던 땅을 밀쳐낸 반작용으로만 나아가며 아직 한 번의 숨도 내쉬지 못한. 잠영의 속력도 내겐 제법 빠르게 느껴진다. 동력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나는 모른다. 계속 갈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물속을 움직여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친구의 생일이다. 아침의 일이 아주 먼 옛날 같다. 친구의 이름 옆 케이크 모양 그래픽이 아니었으면 길을 잃을 뻔했다. 대화창을 켜두고 친구와 내가 자주 왕래하던 시절을 생각한다. 친구는 노래를 만든다. 1년인가 1년 반인가 거쳐 기어코 노래를 한 곡 발표했다. 1년에 하나라니, 친구는 마감이 아니라 노래를 좇는다. 세상엔 마감이 필요한 곳도 있고 노래가 필요한 곳도 있어서 우리는 둘 다 어찌어찌 살아가고는 있지만, 둘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나 멀 일인가. 그 간극은 무엇으로 메워야 하나. 기프티콘으로? 기프티콘을 고르며 친구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생각해낸다. ‘흔하고도 어여쁜 우리는 모두 조각배라오*’

빗소리에 노랫소리가 섞여든다. 필생의 역작을 깎느라 흘린 땀이든 퇴근길에 남몰래 떨군 눈물이든 물이긴 매한가지다. 한 데 모일 움푹한 곳만 있다면 무리 없이 섞여들 다 똑같은 물. 천만의 조각배가 정박한 도시, 늘 목마른 가문 빌딩들 위로 비가 세차게 내린다.


*에세이 제목과 노랫말은 손지연님의 노래, <조각배>에서 빌려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행복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