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한 번 쯤 회의만 하다 끝나는 날이 찾아온다. 쉬지 않고 일했는데 저녁 6시가 다 돼서야 업무를 시작하는 듯한 이 기분은 참 별로다. 열심히 달렸는데 이제야 출발선이라니. 붉은 노을이 얄궂다. 회의의 효용성에 의문을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함께 일하고 협업이란 제각기 만들어 가져온 결과물의 모음에 불과하지 않으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적과 목표와 가치와 의미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정렬하는 것이 곧 회의의 역할이니까. 회의는 단편적인 업무들을 더 커다란 프로젝트로 엮어주는 강력한 이음새니까.
지금도 기억하는 최악의 회의는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참여한 리브랜딩 회의였다. 리브랜딩… 리브랜딩이란 무엇인가? 브랜드가 가지고 있던 원래 이미지에 변화를 주는 작업이다. 그 정도에 따라 상품 또는 서비스의 종류부터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까지 갈아 엎을 수 있는 중대한 프로젝트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그리고 있어야 한 마디라도 얹을 수 있는 자리다. 그런데 어떤 맥락 설명 하나 없이 ‘회의를 할 테니 일단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것도 시작 5분 전에. 이거 맞나? 외부자의 시각이 필요한 걸까? 그렇다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전형적인 ‘모이면 뭐든 나오겠지’식 회의였다. 외부자의 시각 따위의 역할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창업자와 동일한 수준의 ‘진심’을 요구 받았다. 킥오프 미팅도 아니고 얼추 나온 결과물을 공유하는 자리도 아니라 너무 본격적으로 실무적인 회의라 민망할 정도였다. 프로젝터 빔을 맞으며 상사가 말했다. 리브랜딩을 할 거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몇 개 잡아봤다, 각자 마음에 드는 것을 꼽고 이유를 말해라. 끝. 이제 남은 순서는 “뭐든 좋으니 일단 말해보세요.”라는 잽과 “어, 그건 아닌 것 같아.”라는 어퍼컷을 번갈아가며 처 맞는 것이었다.
일이 되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회의를 해야 하는데, 회의만으로도 격무에 시달린 것처럼 에너지가 소모됐다. 터덜터덜 회의실을 나섰다. 사실 그 자체로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문제는 ‘된 일’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 회의가 있든 없든 “내가 보고 결정할게요.”라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업무 시간은 업무 시간대로 모조리 증발했다. 외부에 나가서 “우리 팀은 팀원 간 자유로운 수다가 언제든지 업무 회의로 발전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며 으스대던 상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에 세게 카운터를 꽂는 상상을 하며 노트북에 HDMI 잭을 꽂았다.
대부분의 회의는 잡스러운 이벤트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상사가 흡족한 마음으로 회의를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물론 그러면 그러는 나름대로 열 받을 것 같긴 하지만). 그의 마음에 드는 회의는 유니콘과 같다. 회의가 끝나면 각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 태도에 대한 피드백이 이어졌다. 이쯤 되면 회의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회의란 사실 ‘과정'이 아니라 ‘결과'였던 걸까? 난 정말 몰랐다... 속으로 욕을 퍼붓는다. 여보세요, 회의는 예술작품이 아닙니다. 굳이 따지면 생활용품이죠. 회의를 ‘해야’지, 왜 ‘감상'하려고 하나요?
회사 일이 대개 그렇듯 어찌 저찌 결과물이 나오긴 한다. 일단은 데드라인이 있으니까. 그러나 회의록 행간에 숨겨진 상사의 진심을 팀원들과 짜맞춘 다음 간신히 엮어서 만들어 낸 결과물 앞에 놓인 운명은 무자비한 난도질뿐이다. “뭐든 좋으니 일단 말해보세요"와 “어, 그건 아닌 것 같아.”라는 두 가지 답만 할 줄 아는 듯했던 상사는 온 데 간 데 없다. 그렇게 의견이 많으면 그때 얘기를 하시지 그랬어요. 단죄자의 자리에서 신나게 칼춤을 추는 상사의 뻔뻔한 해체쑈를 1열에서 보고 있으면 지난 회의는 우리에게 뭘 남겼나 절로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의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줄곧 비아냥거렸음에도 마지막 문단에 이르러서 메시지의 방향을 꺾을 수밖에 없는 것은 협업에 있어 의견을 조율하고 일정을 맞추고 결과물을 공유하는 시간은 선택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매 단계에서 우리는 회의장으로 소환된다. 어떤 회의는 완전히 허무하고 어떤 회의는 조금 덜 허무하지만, 모든 성취는 그러한 허무함 사이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회의는 예술작품일지도. 밥벌이 하는 우리의 피땀이 들어간.
파주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저는 최근에 회의에서 재미라는 걸 느꼈습니다. 하나의 대상을 두고 각기 다른 시선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 때로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업무의 요령들을 회의를 통해 배우고 있거든요. 동료들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을 보고 있으면 저도 이 천하제일 아이디어 대회의 참가자 중 한명으로서 분투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요.
회의와 관련해 하나 분명한 건 제 경험상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회의를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라는 건 자고로 생각보따리를 풀어내는 시간이 아니라 선택지를 줄여나가는 시간이니까요. 물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모여 '머리를 맞대면 무엇이든 나올 것'이라는 식의 회의가 도움이 될 때도 분명 있겠지만요. 각자의 뾰족함을 발휘해 자료를 긁어모은 뒤 그것들을 취사선택을 하는 작업이야말로 회의의 본질이자 묘미가 아닐까요.
야망백수
회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관리자의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먼저 실무자에게 회의의 필요성을 납득시켜야겠죠. 실무자는 회의 시간만큼 당장 오늘 퇴근이 늦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보상체계 점검도 필요하겠고요. 괜히 열심히 참여했다가 대가 없이 일만 늘어난다면, 개인 입장에선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겠어요. 무엇보다도, 회의를 했으면 뭐라도 결정했으면 좋겠네요. 기껏 모인 결과가 “그럼 00씨(원래 담당자)가 다음 회의까지 좀 더 디벨롭 해봅시다!”라면, 이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라는 말로 회의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걸 종종 목격하는데요. ‘수평적 의사구조’는 물론 ‘좋은 말’이기야 합니다만, 그 ‘좋은 말’이 결정권자의 업무 유기를 정당화하는 레토릭으로 쓰이는 걸 볼 때마다 회의감이 솟구치곤 합니다. 차라리 이런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화정의 탈을 쓴 독재 같은 회의는 집어치운다! 탑-다운으로 가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요식행위에 동원되는 것만큼 힘빠지는 일은 없으니까요.
마감도비
회의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생활용품이라는 말 공감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무용품이 돼야겠죠. 편리하고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그 무엇이요. 가끔은 목적 없는 회의에 참석할 때가 있어요. 갑자기 소집된 탓에 구성원들 모두 고민할 겨를도 없이 모여 앉아 표면적인 아이디어만 내뱉다가 끝나는 거요.
어떨 땐 제가 맡은 직무와 상관없는 안건이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있어야 할 때도 있어요.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보내다 만 메일, 오전 중에 처리해야 할 업무, 점심에 잡아놓은 미팅 등등 이거 할 시간에 차라리 빨리 일할 수 있게 보내줬음 싶더라구요.
격렬한 논쟁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면(사내 회의에서 그럴 수나 있을까요?) 다들 아이디어를 곰곰이 생각한 뒤에 결론만 내놓을 수 있는 그런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회의가 열렸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습니다. 전국에 계신 팀장님들, 부디 이 글을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