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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 Sep 18. 2015

시각과 청각 사이

혹은 영화와 음악 사이

영화는 오로지 시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청각 이미지를 더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죠. 영화에서 사운드를 완전히 배제하고자 했던 앤디 워홀이 60년대에 선보인 실험적인 무성영화나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같은 드문 사례를 제외한다면, 소리는 영화와 늘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타고난 성질 때문에 관객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일쑤입니다. 영화에서 그 비주얼과 대등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꽤 중요한 요소인데도 말이죠.


영화의 사운드는 대사와 음향 그리고 음악으로 이루어집니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사연을 우리가 이해하고 따라가게 해주는 대사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리죠. 디지털 상영관이 많아진 요즘엔 희미해진 기억입니다만, 예전 극장(특히 동시상영관)에서는 상영 도중 영사기를 조작하는 기사의 실수로 사운드가 나오지 않는 경미한 사고가 간혹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럴라치면 누군가 영사실을 향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곤 했죠. 만일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해도, 지금 영화를 보는 누구든 음소거 버튼을 누른 채 영화를 감상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막이 주인공의 대사를 대신 모두 전달해 준다고 할지라도요. 


"니가 가라 하와이"


왜 일까요? 대사는 영화의 플롯과 스토리를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대사를 전달하는 배우의 목소리 역시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의 톤과 음색, 속도, 어투까지 개성 강한 배우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요?  그리고 그런 배우들이 연기한 영화 속 매력적인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춘사월 두릅 따듯 똑 부러지는 말투가 일품인 윤여정의 대사에도, 능청스러우면서도 빠른 호흡을 가진 송강호의 묘한 어투에도, 그리고 남자라면 한 번쯤 따라 해 봤을 '니가 가라 하와이'에도 소리가 주는 의외의 재미가 숨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소리를 가집니다.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닫히는 자동차 문, 바닥에 떨어진 접시가 내는 소리는 그 상황을 보지 않고도 눈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겐 친숙합니다. 그러나 그런 장면을 필름에 담았던 초기 무성영화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부자연스러워 보였죠. 그러나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신기술만으로 관람객들의 탄성을 충분히 자아낼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영화적 감흥이 별로 없는 그런 일상의 활동사진을 언제까지 계속 상영할 수도, 보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이 아니라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필요했고, 가상의 상황을 현실감있게 만들어줄 소리도 필요해집니다. 음향이 영화 속에서 사운드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임을 깨닫게 된 겁니다.


영화에서 음향이 주는 가장 중요한 효과는 현장감일 것입니다. 일상의 모든 동작에는 소리가 있고, 그 소리가 있는 곳에는 어떤 상황이 있기 때문이죠.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 소리의 파장은 우리 귀에 들릴 리 만무하지만, 공상과학 영화 속 우주선들을 하나같이 굉음을 내며 비행합니다. 그런 음향이 없으면 오히려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죠. 그래서 음향은 발견하기 어려운 사소한 영역에 놓여있지만, 제대로 쓴 음향의 효과는 제법 큽니다. 브라운관을 뚫고 나오는 사다코의 음산한 신음, 버나드 허먼이 작곡가가 아니라 음향 기술자로 만든 <새>의 기괴한 사운드, 질주하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없었다면 속도감도, 스릴도 건지지 못했을 <분노의 질주>까지 말입니다. 


<시티 라이트>, 1930


아이러니하게도 음향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가장 먼저 눈치챈 영화인 중 하나는 찰리 채플린입니다. 채플린은 무성영화가 몸짓과 표정 만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기에 다른 언어권에서도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고, 향후 언어 장벽에 부딪히게 될 유성영화는 머지않아 몰락할 것이라며 무성영화를 고집했습니다. 다른 영화사들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 제작사로 탈바꿈한 뒤에도요.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에는 대사가 아닌 소리, 그러니까 음향과 연관된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꽃을 파는 눈 먼 소녀가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로 떠돌이 채플린을 백만장자로 오해하는 장면이죠. 유성영화가 발명된 뒤에 만들어졌음에도 무성영화로 제작된 <시티 라이트>는 이 장면에서 음향 대신 음악을 사용했지만, 차문이 닫히는 소리가 이야기의 중요한 발단이 된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왜냐하그 이전까지(혹은 그 이후로도) 화에서 음향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일상의 소음 정도로 대부분 취급됐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초창기 영화에서 음향은 곧 음악이었고, 음악이 곧 음향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음악.


세상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두 단어가 합쳐진 영화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영화음악을 순수 음악으로 접근하기엔 어딘가 얄팍해 보이고, 영화로 접근하기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건 블로그에 글을 발행할 때마다 영화 카테고리를 선택해야  할지, 아니면 음악 카테고리를 선택해야  할지 쓸데없이 고민하는 제 모습에서 더러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영화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영화가 음악의 힘을 빌어 내 감정의 버튼을 누르는 그 방식에 매번 매혹당합니다. 또 영화와 음악 사이에서 때때로 길을 잃거나 찾기도 하죠. 시각과 청각 사이에 놓인 이 영화음악이 앞으로 이곳을 채워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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