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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 Nov 02. 2015

365 X 27 =  6323

더 이상 뽐뿌질에 휘둘리지 않겠노라는 어느 작가님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그동안 모은 앨범의 총합이 궁금해졌다. 2011년 가을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혹시나 짐을 잃어버릴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헤아려봤으니 그 후로 약 4년이 지난 셈이다. 하여 주말 오후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CD를 세어보니 6천 장 남짓한, 정확히 말하면 6323장(100장 정도 더 나올 구석이 있어서 살짝 불확실하긴 하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요나 팝 혹은 클래식이나 재즈 음반은 소량이고, 대부분 영화의 음악이 담긴 OST라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가뜩이나 날고 기는 뮤지션들의 앨범 판매량도 나날이 줄어드는 마당에 전체 음악 장르에서 1%의 비율도 차지하지 못하는 비인기 장르인 영화음악을 신주단지 모시듯 끼고 살았으니 내 스스로도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OST 컬렉션 일부. 선반에 마땅한 공간이 없어  듣지 않는 음반은 상자에 골라 가끔 이베이를 통해 처분한다.


반면 만 장이 안 되는 볼륨이 소박(?)하다는 기분이 잠시 들기도 했다. 생각난 김에 계산기를 두들겨본다. 365 곱하기 27. 하루도 빠짐없이 27년 동안 음반을 한 장씩 구입한다 해도 9855장이 되니, 그러고 보면 의외로 자주 음반을 구입한 셈이다. 평균치로만 보면 적어도 이틀에 한 번꼴로 앨범 한 장을 구입했다는 얘기니까. 지인들이 중형차 두 대는 너끈히 뽑았을 거라고 농을 던지곤 했는데, 이것이 엄연한 사실로 다가오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렇다고 그동안 듣고 싶었던 모든 앨범을 죄다 손에 넣은 것도 아니다. 아직 구입하지 못한 음반을 찾아 이베이와 인터넷을 기웃거리거나 뉴스레터에 차곡차곡 쌓인 신보 소식을 읽으며 지금도 여전히 군침을 삼키고 있으니. 모든 컬렉터가 비슷하겠지만, 음반 수집가의 호기심과 탐욕 역시 지칠 줄을 모른다.  


경험에 비춰보면 음반은 100장까지 모을 때가 가장 재밌다. 음악의 세계에 막 눈을 떠 일주일 아니면 한 달 내내 아낀 용돈을 들고 음반점에서 고르고 골랐던 음반들이 나중에 구매한 음반보다 자주 손이 가는 앨범들이니까. 대중문화 평론가인 최규성의 말을 빌면, 음악을 즐기려면 약 500장 정도가,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면 1000장 내외의 음반을 소장한다고 한다. 문화 평론가도, 더구나 연구자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인 나로서는 지금 보유하고 있는 음반들은 꽤 부담스러운 양임에 틀림없다. 일주일에 서너 번 듣게 되는 앨범이 있는 반면, 일 년에 한 번 꺼내 듣지 못하는 앨범들을 선반 한켠에서 발견할 때마다 괜스레 미안하고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극악스러운 음반 수집을 멈추지 못하는 까닭은 전 세계 5000개, 1000개 단위로 판매되는 키덜트 아이템이 레어템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이 바닥에도 다양한 레어템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도 적게는 전 세계 100장, 많으면 3000장 밖에 시장에 풀리지 않는 OST들이. 누구나 사랑하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의 영화음악 앨범들도 10년 전부터 전 세계 500장 내지 300장 정도밖에 찍어내지 않았으니 구입 시기를 놓치면 따블이 아니라 따따블, 혹은 대여섯 배의 가격에 비싼 해외 배송비까지 치르지 않고서는 손에 넣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모 음반 수집가는 음악을 듣는 마지막 단계가 재즈나 클래식이라면, 음반 수집의 마지막 단계는 영화음악이 담긴 OST라는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더욱 난감한 일은 찾아 듣고 싶은 영화음악일수록 국내는 물론 해외 음원 사이트에서도 좀처럼 찾아 듣기 어렵다는 것. 국내에서는 주로 국내 개봉한 유명한 영화의 음악 위주로 서비스되기에, 영화음악팬들이 저마다 숨은 걸작으로 꼽는 테마곡과 오리지널 스코어들을 네이버 뮤직이나 벅스, 멜론 같은 음원 사이트에서 만난다는 것은 예전에도 요원했고, 지금도 요원한 일이다. 사실 그동안 다람쥐처럼 하나 둘 모은 음반의 8할 정도가 무슨 수를 써도 듣기 어려운 앨범들이다. 모리꼬네의 <타타르 황야>나 스텔비오 치프리아니의 <베니스의 사랑>, 필립 롬비의 <인 더 하우스> 같은 명반들을 영화음악 매니아로서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때때로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것인지, 음반을 사랑하는 것인지 헛갈리기도 한다. 음악을 즐기려고 시작했음에도, 그 음악이 담긴 음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감을 느끼는 경우를 더러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그를 표시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음반을 구입하거나 유료로  다운로드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허접한 음악이라도 공짜로 듣고 악담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창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테니.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왜 이 영화음악에 반하게 됐는 지 느끼고 싶어서. 그동안 두 차례 대대적인 처분을 했음에도, 왜 이 음반이 여지껏 살아남아 지금도 내 CD 선반에 꽂혀있는지 스스로 알고 싶어서. 글을 쓰면서도 더러 이 앨범이 얼마나 귀하고 드문 것인지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은 자랑질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키보드를 누르던 손을 멈춘다. 오디오의 볼륨을 조금 높이고 눈을 감으면  오래전 영화를 보다가 멜로디에 빠져들었던 첫 대면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어떤 음반에 대한 조금은 정제된 편애의 기억이 되어 담긴다. 가뜩이나 느린 글쓰기 속도와 함께 일하면서 짬을 내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만의 컬렉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딱 5천 장의 앨범을 맞추기 위해 음반을 사고, 음악을 듣고, 다시 음반을 처분하고,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새삼 깨닫는다. 분량이 길다고 좋은 글이 아니듯, 음반의 양이 많다고 결코 좋은 컬렉션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글이든, 음반이든 볼륨을 늘리는 것보다 과감히 잘라내는 것이 더욱 힘들고 어렵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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