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 2013
아무리 차가운 심장을 가졌다 한들, <스틸 라이프>의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기는 힘든 일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혼자서 이 영화를 봤다면 더더욱 그럴 터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한적한 극장에 불이 밝혀졌는데도 출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몇몇 관객의 마음도 나와 비슷했으리라. 촉촉하게 젖은 타인의 눈가를 보면서 나 역시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야 했으니까. 덕분에 (반강제로) 객석을 지킨 사람들은 영화음악가 레이첼 포트만이 작곡한 마지막 선율을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덜시머와 켈틱 하프 그리고 버섯 모양의 신비로운 악기 카이사(Caisa)가 어울려 내는 서러운 멜로디를.
외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영화음악가 자체도 드물지만, 이런 음색과 멜로디를 전매특허처럼 구사하는 작곡가로서도 희귀한 사례일 포트만은 <스틸 라이프>의 세계를 환상과 현실의 중간계 같은 색깔로 물들인다. 영국의 흐린 날씨처럼 온통 잿빛을 띄지만 왠지 온기가 감도는 회색. 따스함을 품은 그 빛깔에 가장 가까운 단어를 팬톤 컬러칩에서 찾는다면 웜 그레이(Warm Gray)쯤 되지 않을까. 홀로 세상을 떠난 이의 신변을 정리하면서 같은 인간으로서 차리는 마지막 예의. 참치 캔 하나와 구운 토스트 한 조각을 곁들인 식사에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인연일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향해 조심스레 품어보는 설레임. 속내를 좀처럼 보이지 않던 사내의 어깨에 내려앉는 선율이 그윽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