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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 Nov 05. 2015

모리꼬네 사운드의 정수

미션, 1986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와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로 60년대 최고의 극작가로 손꼽혔던 로버트 볼트 Rober Bolt는 비교적 조용한 70년대를 보내고, 80년대 중반 이국의 역사를 다룬 또 한 편의 걸작 시나리오를 탄생시킨다. <미션 The Mission>이다. 


유럽인에게는 축복이었겠지만 원주민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신대륙 발견 이후 250년. 영국과 프랑스가 앞다투어 북미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미를 중심으로 각축을 벌인다. 하나님과 교황 그리고 국왕의 이름으로. 가장 성스러운 의식과 가장 세속적인 욕망이 한 몸이 되어 전도와 정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가운데 주로 오지에서 활동했던 예수회는 인간적인 태도로 선교와 교육에 나란히 힘을 쏟았다. 그러나 토착민의 문화를 인정하며 교세를 확장시킨 예수회의 선교 방식은 전통적인 가톨릭의 미움을 샀고,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어 한몫 잡으려는 부유한 상인들 역시 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미션>은 이 미묘한 상황을 곁에서 모두 지켜봐야 했던 한 추기경의 회상으로 그려진다. 파라과이의 과라니 족 선교에 나선 가브리엘 신부와 전직 노예 사냥꾼이었던 멘도자가 어떻게 자신들의 신념을 지켰고, 또 살아남은 자에게 어떻게 그들의 정신이 기억되는지. 

 

엔니오 모리꼬네가 <미션>의 영화음악을 작곡하게 된 것은 롤랑 조페 Roland Joffe 감독이 아니라 프로듀서의 선택이었다. 원래 이 영화의 음악을 무조건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에게 맡겨야 한다고 고집했던 프로듀서 데이빗 퍼트남 David Puttnam은 작곡가에게 전혀 연락이 닿지 않자 초조해졌다. 그때 공동 프로듀서를 맡고 있던 페르난도 기아 Fernando Ghia가 재빨리 자신의 지인이었던 모리꼬네를 작곡가로 추천했고, 후반 작업과 개봉 스케줄이 잡히자 어쩔 수 없이 그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페르난도 기아에 의해 작업을 맡게 된 엔니오 모리꼬네의 반응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음악이 없는 상태에서 가 편집된 영화를 본 모리꼬네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고, 자신이 <미션>을 위해 음악을 만들면 오히려 영화를 망칠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던 것이다. 하지만 실험 영화가 아닌 이상 음악 없는 영화는 없는 법. 지인과 감독의 간곡한 요청이 거듭되자 모리꼬네는 '마지못해' <미션>의 스코어를 맡기로 한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 중 아카데미 음악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팬을 그의 영화음악팬으로 만들었던 자신의 최고 걸작 중 하나를. 


<미션>의 영화음악이 일반인과 평론가에게 모두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순전히 그 아름다운 선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 혹은 고증에 가까운 그 작법에도 있다. 영화와 조화를 이루는 영화음악의 미덕이 오로지 멜로디에만 있지 않음을 이야기했던 모리꼬네는 영화음악 작곡가가 다양한 방면의 책, 특히 역사에 관한 책에 관심을 둘 것을 자주 권한다. 역사적인 위인을 다룬 드라마에서도 서양 고전음악에 바탕을 둔 스코어와 아이돌 가수의 삽입곡이 어느새 대세가 된(아마도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 OST 판매에 더 공을 들인) 우리에겐 좀 진부하게까지 들리는 말인데, 훌륭한 고증이 역사에 바탕을 둔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되는 것처럼 음악 역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까지는 충실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리꼬네가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화음악에서도 이런 그의 태도는 한결같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전통적인 서부 영화음악에 비해 그가 유행시킨 이탈리아 영화음악은 가볍고 대중적이었을지언정 서부 개척 시대의 공기를 환기시키는 선율과 악기들을 계속 연주에 활용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그 영화음악에 흥미를 느낀 많은 평론가들이 '실험'이라 썼고, 대중은 '재미'라 읽었다. 그리고 <미션>은 '고증'이라 쓰고, '감동'이라 읽는다.


<미션>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ㅣ Virgin Records(2002)

  

엔니오 모리꼬네는 <미션>을 작곡하기에 앞서 시대 조사에 먼저 착수했다. 그리고 영화음악의 가이드 라인이 되는 세 개의 주의사항을 정했고, 그것을 토대로 이 영화의 테마곡들을 차례로 완성시켰다. 가장 먼저 그가 주의를 기울인 것은 주인공이 오보에를 연주한다는 것. 원주민의 선교와 교육에 음악을 활용했던 예수회의 특징은 영화 속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할 뿐만 아니라 가브리엘 신부가 직접 연주할 수 있을만한 단순한 멜로디여야 했다. 또한 175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곡은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모리꼬네는 그 연주곡을 직접 작곡할  수밖에 없었다. 교재용 리코더로도 'Gabriel's Oboe'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모리꼬네는 오보에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옥타브의 한계를 고려해 이 곡을 썼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간적인 배경에 한 가지 더 모리꼬네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것은 트렌토 공의회 이후 모든 작곡가들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음악의 형식. 16세기 최고의 교회 음악 작곡가인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모리꼬네는 모테트(Motet)를 작곡했고, 낭송에 가까운 무반주 성악곡인 이 모테트는 개종한 과라니 족의 노래인 'Ave Maria Garani', 'Te Deum Guarani'로 영화에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리꼬네가 주의를 기울인 요소는 시간이 아니라 공간적인 배경, 즉 파라과이 원주민이 구사하는 토속적인 색깔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길고 집요하게 반복되는 타악기의 리듬과 팬플룻의 음색을 과라니 족에 대한 인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미션>에서 모리꼬네의 스코어가 대단한 음악적 성취를 이루게 된 것은 이 고증 다음에 또 한 번 이루어진 설계의 과정에 있다. 영화 속 인물의 역학관계에 따라 모리꼬네는 자신이 가이드 라인으로 정한 세 가지 음악의 요소를 두 개씩 짝을 지워 사용한 것이다. 가령 'Gabriel's Oboe'에는 가브리엘 신부의 오보에 연주를 바탕으로 코랄풍의 교회 음악 스타일이, 'Vita Nostra'는 과라니 족의 원시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오보에의 테마와 모리꼬네의 아내 마리아 트라비아 Maria Travia가 라틴어로 가사를 붙인 코러스가, 'Te Deum Guarani'에는 모테트에 토속적인 향취를 더하는 팬플룻의 멜로디를 살짝 가미한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이 결탁해 추기경을 압박하고 과라니 족을 공격하기로 한 대목에 흐르는 'Refusal'은 또 어떤가. 해체에 가깝게 오보에의 테마를 편곡한 모리꼬네는 가장 그 다운 방식으로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되살려내고, 이 곡은 바로 다음에 오는 과라니 족의 반격을 그린 'Asuncion'과 절묘한 댓구를 이룬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마에스트로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더해 하나의 장대한 레퀴엠으로 완성시킨다. 겨우 살아남은 원주민 소녀가 부서진 바이올린을 주워 밀림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에 흐르던 'On Earth As It Is In Heaven'이 그것이다. 갈라진 세 개의 작은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져 어마어마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 곡엔 <미션>을 위해 모리꼬네가 준비한 음악의 모든 것이 빠짐없이 다 들어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결말에 눈물 한 방울을 기어코 쏟게 만드는 영화음악의 힘이. 질릴 만큼 들었음에도 매번 탄복할  수밖에 없는 모리꼬네 사운드의 정수가.




01 [03:48]  On Earth as it is in Heaven

02 [01:53]  Falls

03 [02:12]  Gabriel's Oboe

04 [02:48]  Ava Maria Guarani

05 [01:30]  Brothers

06 [01:19]  Carlotta

07 [01:52]  Vita Nostra

08 [01:35]  Climb

09 [02:46]  Remorse

10 [04:00]  Penance

11 [02:47]  The Mission

12 [01:57]  River

13 [02:38]  Gabriel's Oboe

14 [00:46]  Te Deum Guarani 

15 [03:28]  Refusal

16 [01:25]  Asuncion

17 [04:18]  Alone

18 [03:54]  Guarani

19 [01:58]  The Sword

20 [00:59]  Miser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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