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 Mar 07. 2016

그란데 모리꼬네
그란디시모 마에스트로

2월의 마지막 날, 괜스레 마음이 들떠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건 징검다리 휴일 때문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가 궁금해서였다. 16년 만에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상 후보에 올랐으므로. 설명이 필요 없는 할리우드 톱라인의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비롯, 벌써 11번째 음악상 후보로 지명된 토머스 뉴먼의 <스카이 브릿지>, 카터 버웰의 역작이라 할만한 <캐롤> 그리고 작년에 이어 연달아 노미네이트 된 아이슬란드의 무서운 신예 요한 요한손까지 후보작들이 쟁쟁했기에, 가뜩이나 뭔가를 알아맞히는데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올해 트로피의 향방을 점치기가 더욱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꼬네에게 상이 돌아가길 내심 바랐다. 꽤 오래전부터. <헤이트풀 에이트>가 아니더라도, 그가 후보에 오르게 된다면. 


많은 이들에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수상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겠지만, 내겐 모리꼬네의 이번 도전이 더 간절하게 다가왔다. 역대 수상자 중 필시 최고령일 여든일곱의 나이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모리꼬네는 그동안 디카프리오보다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어 보였다. 아니, 인연은 있었지만 상복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미국에 적을 두기를 거부하고 이탈리아를 떠나려 하지 않았던 이 반골 기질 다분한 음악가를 할리우드는 외국인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영화음악에 호감을 품을지언정 선뜻 아카데미 음악상을 내주진 않았다. 대신 아카데미는 모리꼬네에게 2007년 공로상을 수여했다. 물론 그것 역시 값진 트로피였다. (영화음악을 작곡한 찰리 채플린을 논외로 한다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시작으로 15차례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음에도 일흔여섯에 공로상을 받은 알렉스 노스 다음으로 영화음악가로서는 역대 두 번째 공로상 수상자였으니까. 그 상을 마지막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다시 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노령의 알렉스 노스처럼 모리꼬네도 왠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애틋했다. 허나 나이를 잊은 이 노 음악가는 그 후로도 장편, 단편, 다큐멘터리, 텔레비전 미니 시리즈, 광고까지 분량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약 30여 편의 새로운 스코어를 줄줄이 내놨고, 2015년에는 세 편의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아카데미에 후보로 처음 거명된 것은 1979년. 테렌스 멜릭의 <천국의 나날들>이다. 84년에는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음악상으로서 가장 유력했으나 후보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제때 보내지 못해 심사에서 탈락되는 수모를 겪었고, 2년 뒤에 선보인 <미션>은 허비 행콕이 음악을 맡은 <라운드 미드나잇>에 안타깝게 밀리고 말았다. 그것도 작곡이 아니라 편곡된 음악으로. 모리꼬네 스스로도 인터뷰를 할 때마다 두고두고 수상 결과를 아쉬워했던 <미션>은 <헤이트풀 에이트> 이전까지 그가 오스카상에 가장 근접했던 작품일 것이다. 주세페 토르나토레에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안긴 <시네마 천국>의 경우, 2인 이상 작곡가가 만든 작품을 심사에서 탈락시키는 규정 때문에(모리꼬네는 아들 안드레아와 이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아예 후보로도 올리지 못했고, 배리 레빈슨의 <벅시>는 앨런 맨켄의 <미녀와 야수>에게,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과 토르나토레의 <말레나>는 각각 <마지막 황제>와 <와호장룡>에 음악상을 내줬다. 그러니까 아카데미 첫 도전부터 '진짜' 음악상을 받기까지 모리꼬네는 꼬박 37년이 걸린 셈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와 퀸시 존스. 존스는 모리꼬네가 2007년 공로상을 받았을 때 가장 환호했던 음악가 중 한 사람이었다


70년대 미국에 자리를 잡은 이탈리아의 거물 영화 제작자 디노 데 로렌티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가 일찌감치 할리우드로 건너갔다면, 좀 더 빨리 그리고 수월하게 상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를 기쁘게도 하고 괴롭게도 한다는 AS 로마의 열혈팬이자 가톨릭 신자 그리고 체스와 핫초코, 파스타를 사랑하는 모리꼬네는 뼛속까지 이탈리아인이었고, 그 기질이 곧 자신을 이루는 음악의 원천이므로 로마를 떠나지 않았다. 제법 많은 영어권 영화에 참여했으면서도 그가 전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래서 흉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뼈를 묻겠다는 그의 굳은 심지를 확인하는 것에 가깝다. 일거리를 찾아가기보다 좋은 음악으로 자신을 찾아오게 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는 무명 시절 스무 살 무렵의 모리꼬네가 품은 생각이었고, 자신의 음악을 알아봐주는 감독에게 그는 최선을 다했다. 세르조 레오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피에로 파졸리니, 루치아노 살체, 마우로 볼로니니, 알베르토 네그린, 브라이언 드 팔마, 주세페 토르나토레.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역시 그런 그를 찾은 감독들 중 하나였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영화 제작의 모토로 삼은 타란티노는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사실 그와 모리꼬네의 만남은 애당초 어려워 보였다. 영화음악에 있어서 타란티노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에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과거의 음악만을 활용한다는 원칙 아닌 원칙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잊혀진 옛날 영화음악을 모르는 이들에게 비장의 무기처럼 그가 꺼내놓은 선곡 리스트는 귀를 즐겁게 했지만, 반대로 빈티지 영화음악팬들은 타란티노를 두고 니들 드롭(레코드에 바늘을 올리듯 선곡하는 것) 뮤직 플레이어 혹은 영화음악의 스캐빈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다른 영화에 삽입하는 것을 질색했던 버나드 허먼이 생존해 있었다면, 타란티노의 음악 발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허먼보다 정도는 덜했지만 엔니오 모리꼬네 역시 영화음악은 영화의 맞춤옷이라는 생각을 품은 작곡가였으므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제작에 들어가면서 모리꼬네가 참여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사실 기대만큼 걱정도 컸다. 물론 두 사람의 만남은 무위로 돌아갔다.


2011년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비슷한 루머가 다시 한 번 퍼졌다. 그러나 3년 전 칸 영화제 세미나에 참석한 타란티노에게 영화음악가를 고용해 새로운 스코어를 만들지 않는 까닭을 묻자 그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어떤 작곡가도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죠. 생판 모르는 음악가가 내가 만든 영화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을 게 뻔하잖아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내가 세운 전통을 깨려 했던 첫 번째 영화였죠. 그 영화를 만들기 훨씬 전부터 내겐 아이디어가 있었답니다. 한 무리의 작곡가들을 한꺼번에 고용해 각각 서로 다른 테마곡들을 맡기는 거였죠.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몇 곡, 랄로 시프린에게 또 몇 곡 이렇게 말이죠. 그러나 누구도 그런 식으로 작업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음악을 사랑하지만, 영화음악가를 향한 그의 불신은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음악가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내게 필요한 것은 작곡가가 아니라 음악 에디터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제작된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음악은 조금 달랐다. 타란티노의 음반 컬렉션에서 꺼내온 화려한 선곡 리스트는 여전했지만, 영화를 위해 만든 네 곡이 새로이 추가된 것이다. 그중 하나가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Ancora Qui'였다. 영화도, 음악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사달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가 개봉되고 한참이 지난 뒤 엉뚱한 곳에서 났다. 2015년 3월 할리우드 리포터는 로마의 한 대학교에 강연을 나간 모리꼬네가 타란티노의 영화에 음악은 일관성이 없다며 앞으로 그와 어떤 작품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한 것. 이 뉴스를 접한 모리꼬네가 펄쩍 뛰었음은 물론이다. 자신이 그 말을 한 것은 맞지만, 앞뒤 문맥을 모조리 자르고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기사화했다며 스스로 해명했다. 그리고 와전되기 전 그가 했던 본말은 이렇다. 자신은 영화음악에 일관성을 요하는 작곡가이기에 향후 타란티노가 그 부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함께 작업할 것이라고. 결국 두 사람의 스캔들은 언론사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헤이트풀 에이트>의 스코어를 녹음하는 엔니오 모리꼬네와 쿠엔틴 타란티노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2015년 6월. 제59회 다비드(도나텔로) 영화제 무대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동안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상을 받아가지 못했던 타란티노 감독이 이탈리아를 찾았고, <펄프 픽션>과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트로피를 그에게 직접 수여하는 모리꼬네의 흐뭇한 모습이 전파를 탄 것이다. 그리고 7월에는 타란티노의 새로운 서부극에 엔니오 모리꼬네가 전체 영화음악을 작곡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며칠 뒤엔 체코로 날아가 <헤이트풀 에이트>의 영화음악 작업을 하는 두 사람의 사진과 작업 상황이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왔다. 영국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열린 추가 녹음 현장을 찾은 배우 월터 고긴스의 말에 따르면, 모리꼬네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내내 타란티노는 그 곁에서 아이 같은 표정으로 지켜봤다고 전했다. 그다음은 당신이 아는 것과 같다. 12월 <헤이트풀 에이트>가 개봉됐고,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노 작곡가는 돌비 극장에서 열린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마침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허리 통증으로 인해 몇 달 전 미국 콘서트를 모두 취소해야 했던 모리꼬네가 장거리 여행을 만류하는 의사의 충고를 무릅쓰고, 노구를 이끌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찾았을 때 '이번엔 혹시?'라는 기대감에 은근히 들뜬 건 그 때문이었다. 또한 매해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 음악상 후보들을 초청하는 SCL(작곡 및 작사가 협회)의 환대를 받으며 영화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이번 아카데미 음악상 경쟁자인 존 윌리엄스와 모리꼬네가 다정히 손을 맞잡은 사진을 보았을 땐 뭉클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마지막 여정이 될 지도 모르는 마에스트로의 방문을 모든 이들이 나서서 축하하고 또 감사해한다는 인상이 들어서다. 진심으로. 


시상식 직후 이탈리아 신문 라 리퍼블리카와 가진 그의 인터뷰가 눈에 띈다. "그동안 다섯 차례 아카데미에 후보로 오를 때마다 저는 아내에게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까봐 덜컥 겁이 났거든요. 그러나 이번에는 집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속으로 트로피를 받아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사실 얼른 로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화음악은 아니지만, 지금 한창 새로운 작업을 하는 중이었거든요." 나이를 잊은, 참 왕성한 활동력이다. 영광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새로운 작품을 걱정해야 하는 천상 작곡가. 그런 모리꼬네의 모습이 언제나 날 설레이게 한다. 그에게 경배를. 그란데 모리꼬네, 그란디시모 마에스트로(위대한 모리꼬네, 가장 위대한 마에스트로).

작가의 이전글 소비에트 시대의 숨겨진 영화음악 10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