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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분홍 Jan 10. 2019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늘 생각하고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막했다.

뱉는다고 모두 말이 아닌 것처럼 쓴다고 다 글이 아닐 텐데 뭔가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었다. 무엇을 쓸까 생각하니 떠오르는 주제는 많았다. 최근 다녀왔던 여행에 대해 쓸까, 아니면 올해 나이 앞자리가 바뀐 내용이 좋을까, 평소 생각하던 주제를 확장시켜볼까 하다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오,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는 현재의 상태를 쓰기로 결정!


 우선 왜 쓰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나는 SNS도 잘 안 하고 회사에서 업무상 글 쓸 일도 없다. 오히려 글보다 말로 설명하는 게 편하다. 카톡으로 이모티콘을 사용해도 정확한 뉘앙스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차라리 짧게 통화하는 게 나은 적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굳이?라고 곰곰이 떠올려본다. 일단 내 생활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공책에 쓰는 것보다 예전 기록까지 보기 편한 온라인상에 올리고 싶다. 전체 공개를 해서 불특정 다수가 보는 것보다 소수의 지인들을 떠올리니 생각하는 대로 쓰기가 영 쑥스럽다. 그렇지만 여행 다녀온 얘기, 한 살 더 먹은 얘기들을 말로 하는 것은 더 번거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위해 기록하고 싶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쓰고 싶은 이유도 내용도 명확한데 왜 망설여지는지 생각해보니, 두려움이었다. 잘 쓰고 싶은데 내가 봐도 잘 읽히지 않는 글이 될까 봐 무섭다. 솔직하게 적어놓으니 극복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남의 글을 보고 판단하기는 쉬운데, 내가 쓰려니 영 마음이 불편하다. 계속 쓰다 보면 정말 좋아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우려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인데,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내가 경험한 일들을 재밌어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확실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해보자. 


 말하듯이 적어보면 편할 것 같은데, 그런 누구에게 말하듯이 써본담? 혼잣말하든 적으면 이 얘기 저 얘기 나와도 상관없다. 하지만 부모님한테 말하듯이 쓴다면 격식을 갖춰서 써야 하고, 친구랑 수다 떨듯이 적는다면 아무 말 대잔치가 될 수 있다. 


 우선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다니고 있던 외국계 금융회사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퇴사를 하면서 못해봤던 취미생활과 배웠던 취미생활들이 스쳐 지나갔다. 배우러 간 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전혀 새로운 직종을 시작한 것도 남기면 좋을 것 같았다. 휴가 때마다 다녔던 크루즈 여행에 대해서도 풀어보고 싶었고, 매일 카톡을 나누는 살가운 우리 형제들의 에피소드는 그림을 곁들이고자 하는 욕심도 생겼다. 


 그중 한 가지를 뽑은 뒤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갔다. 헐, 대박, ;;;, ㅋㅋ 같은 표현은 지양하고 글씨체 10포인트로 A4 1장 분량 정도가 되면 몇 가지 다른 주제를 뽑아 동일한 방법으로 적어나갔다. 그리고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유튜브를 보는 등 소일거리를 한 뒤 글을 다시 읽는다. 하루 동안 묵혀두는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완성될 글이 궁금해서 얼른 자리에 앉는 편이다. 읽으면서 정보나 메시지가 하나씩은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고, 에피소드를 추가하거나 문단을 재배치한다. 마지막으로 맞춤법 검사를 한 뒤 저장하면 끝!


 추가로 주변의 반응이 궁금할 때는 나에게 애정이 있지만 정확한 조언을 해줄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친구에게 쑥스러워하면서 글을 보낸다. 칭찬과 비평 중에 비평이 맘에 안 들면 칭찬만 마음에 새기는 방법도 있다. 잘한다 잘한다 해야 신나서 시키지 않는 일도 찾아서 하는 타입인지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지 신랄한 비평에 목말라하는 타입인지에 따라 취사선택 가능하다. 


 글을 다 쓴 뒤에는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를 읽거나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읽기만 하는 독자에서 조금이나마 끄적거리는 입장이 되면 글을 보는 마음이 경건해지기까지 하고, 어찌 되었거나 타인의 창작물에 대해 함부로 비판을 하지 않겠다 결심도 한다. 오호, 글쓰기가 한 이렇게나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하다니. 앞으로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한 걸음씩 옮겨갈 시간들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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