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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Oct 11. 2015

#002. 클릭

행복이 있는 곳

레프러콘은 금 단지를 찾으러 무지개다리의 건너편까지 달려갔죠. 
하지만 종일 걸려 겨우 도착했을 때, 
그 곳엔 단지 콘플레이크 조각만이 있었어요.

우리 대학생의 삶이란 게 그렇다. 공부해도 불안하고 안 하면 더 불안하고. 대외 활동에 자격증 수집까지,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주위에는 온통 나보다 잘난 사람만 보인다. 앞날은 막막한데다 서투른 연애, 힘든 아르바이트까지 뭐 하나 속 썩이지 않는 게 없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취직은 할 수 있을지, 내가 선택한 진로는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민하며 상처받는 20대. 곧 내 어깨에 붙을 '취준생'이라는 단어는 벌써 엄청난 피로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예비 취준생 시절 따위는 후루룩 날려버리고 취업하는 그 순간으로, 나아가 승진하는 날로, 삶의 찬란한 순간만을 쏙쏙 골라 만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만능 리모컨을 득템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실제로 이 리모컨을 소유하게 된 행운의 주인공은 영화 <클릭>의 마이클 뉴먼(아담 샌들러)이다. 마이클은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일에 빠져 사는 워커홀릭이다. 우연한 기회에 리모컨을 가지게 된 그는 마침내 자기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시끄럽게 짖는 강아지는 소리 줄임 버튼으로 처리하고 아내와의 지겨운 말다툼은 빨리 감기 버튼으로 돌리는 등 그의 삶은 한층 더 안락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이 리모컨의 대가는 젊음과 추억이었다. 사용한 기능을 기억해두는 자동모드 때문에 샤워, 가족과의 시간 등 한 번쯤 지나쳐도 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자동으로 지나간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가족들에게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작아졌으며 살찌고 주름 가득한 모습만이 거울 속에 비칠 뿐이다.  


중학교 때 친구와 놀다가 문득 "너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야?"하고 물었었다. 그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 언제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잔망스럽게도) 지금 바로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것! 친구 집에서 자도 된다는 엄마의 허락을 받아냈을 때,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왔을 때, 오매불망 기다린 배달 음식이 도착했을 때. 행복이라는 것이 항상 거대한 폭풍과 같은 크기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는 비밀을 그때 깨달았다. 


대학생으로 사는 것이 고달프다며 징징대지만, 찬찬히 돌이켜 보면 삶에서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구구단 때문에, 사춘기가 와서, 수능 시험이 코앞이라… 우리는 항상 고달팠다. 밤식빵에서 속살을 삭삭 긁어내 노오란 밤을 찾아내는 재미처럼 힘든 순간 가운데엔 달달한 행복이 분명히 숨어 있다. 리모컨을 이용해서 승진이나 결혼 같은 삶의 커다란 이벤트만 찾아다니다 놓쳐 버리기에는 우리의 모든 순간이 너무 아기자기하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 다가올 과제와 시험이 벌써 지긋지긋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어떤 순간이 지루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가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와의 다툼은 더 돈독한 사이로 발전하기 위한 초석이며, 교수님이 툭 내뱉은 한마디가 잠들어 있던 심장을 뜨겁게  달구기도한다.  


예비 취업 준비생의 삶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는 법. 멀게만 느껴지는 행복도 사실은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있다. 매일 만나는 조그마한 행복과 새삼 눈을 마주치고 처음 만나는 것처럼 다정한 인사를 건네야겠다. 


2012-09-16 

오늘의 가장 슬픈 일: 이제 대학생 아니다

이 칼럼을 보면 J가 생각난다. 사귄지 겨우 한 달이나 됐을까? 

갑자기 카톡으로 이 칼럼이 인쇄된 잡지 지면을 찍어 보내줬다. 대학에 배포되는 잡지였기 때문에 J가 학교 다니면서 스크랩해놓은 것들을 뒤지는데 내가 쓴 칼럼을 발견했다는 거다.  그때는 운명과 인연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두근두근 행복했다. 연애는 짧아도 추억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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