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은 있다? 없다?
It was MEANT to be. And I just kept thinking…Tom was right.
나는야 무남독녀 외동딸. 어린 시절, 언제나 혼자 놀았기 때문에 또래 친척들이 방문하면 빙빙 돌며 신나 했다. 그러다 가장 먼저 묻는 말, “언제 가?” 어릴 때부터 나는 이런 아이였다. 시끌벅적하던 집안에 곧 찾아올 고요는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아이. 그래서 늘 시작보다 끝을 생각하는 아이. '언제 가'냐는 말의 어감이 친척들의 표정을 오묘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무렵부터는 사랑하는 이들의 빈자리를 생각했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본 결과 많은 이들이 시간에 기대 아픔을 지워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발견했을 땐 은근히 든든한 마음마저 들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크나큰 상실과 절망을 가져와도 잔인하고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곧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연애도 예외는 아니다. 연애는 친척의 방문과는 달라서 "언제 헤어져?" 하고 물을 수는 없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건 안다. 첫 만남의 설렘이나 사랑하는 동안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행복감은 찬란하다. 하지만 나는 다가올 이별을 문득 떠올리며 사랑이 떠난 뒤 후폭풍을 감당할 준비를 한다. 남녀 간의 이별은 나에게 닥친 상대의 임사(臨死)와도 같아서 곧 평정이 찾아온다는 걸 뻔히 알고 있다. 그래서 자꾸만 연애감정에 시니컬해진다. 최근에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철없는 것들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이건 정말 심각하다.
그래서인지,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도 연애 비관론자 썸머(주이 디 샤넬)에게 몰입된다.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지 환상일 뿐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그녀는 남자들이 보기에 나쁜 년-Bitch-이다. 사랑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는 남자 톰(조셉 고든-래빗)에게도 그렇다. 그녀가 떠난 후 톰은 망가져 혼자가 된다. 지나가는 커플에 괜한 시비는 물론이고 사랑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절규한다.
썸머의 쿨한 만남과 헤어짐, 곧은 인생관에 감탄할 무렵 두 사람이 재회한 파티에서 그녀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 충격에 빠져 도망치는 톰을 따라 내 마음도 요동친다. 언니, 그러기예요? 사랑은 없다면서요. 배신감에 떠는 나에게-실은 톰에게- 그녀는 말한다.
"그냥,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알게 됐어. 너와 있을 때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걸."
그녀가 마침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사랑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라고 노래하던 자우림의 김윤아도 온갖 매체에서 부부애를 뽐내고, 누군가의 '뭔가'가 된다는 게 싫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다던 썸머도 결국 한 남자의 아내가 됐다. 스스로 보호하느라 경계하고 대비하며 지내온 나에게도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느껴지는 사랑이 찾아올까.
나도 사랑을 찾으면 "아우, 왜 이제 나타났어!" 하고 어깨를 툭 치며 웃어 보이고 싶다. 그리곤 "내가 이 나이 때는, 저 나이 때는…"하고 조잘대며, 그동안 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조곤조곤 묻고 싶다. 이런 상상을 하는 걸 보면 내 연애세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가 보다. 남녀 간의 사랑 같은 건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눈을 뜨면 누군가와는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모든 것이 이 사람과는 가능하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 나한테도!
2012-10-13
놀랍게도 현재 '언제 헤어질지' 정해놓은 연애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