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을 엿보고 있다
당신은 저를 모르지만,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어요.
전 당신의 '관객'이거든요.
"난…ㄱㅏ끔…눈물을 흘린ㄷㅏ…☆"
새벽녘, 감성으로 충만할 때 눈물 셀카와 더불어 오글거리는 허세로 가득한 글을 업뎃한다. 우리는 일기장에 써도 될 심경을 왜 굳이 SNS에 올리는 걸까. 트위터에 올린 연예인의 한마디는 곧 기사화되고, 페이스북은 맛집을 방문하거나 유럽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자랑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이제 SNS는 사람들의 일기장이나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타인의 일기는 호기심의 대상인 법. 덕분에 세계인들은 공통적으로 '관음증'이란 질환을 겪고 있다. 짝사랑하는 이성의 이름을 사람찾기에서 검색해보거나 헤어진 연인의 일상을 탐색하기 위해 몰래 미니홈피를 방문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관음증이란 이미 우리 삶 깊은 곳에 침투해 있는 엿보고 싶은 욕망의 곁눈질이다.
관음증을 소재로 한 영화 <타인의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한 남자, 비즐러(울리쉬 뮤흐)의 이야기다. 1984년, 동독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밀경찰-스타지-을 구성해 국민의 삶을 조사하는 무자비한 첩보활동을 해왔다. 서독으로 넘어갈 거라는 의심을 받는 순간 아무도 모르게 집 안에 도청장치가 설치된다.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비밀경찰 비즐러는 극작가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의 삶을 감시하고 도청하는 임무를 맡는다. 드라이만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진 순수한 예술가로, 변화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의 견제 대상이 된다.
냉혈한이었던 비즐러는 서서히 드라이만의 진실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애정을 느낀다. 드라이만이 죽은 친구를 애도하기 위해 연주하는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를 도청할 때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타인의 삶에 완전히 동화된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정부의 눈을 속이고 동독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할 때, 그 사실을 본부에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가택 수색에 대비해 의심받을 만한 증거물을 미리 숨겨주기까지 한다. 결론적으로 드라이만의 믿음이 옳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한 남자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어 삶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과 깊은 대화만이 타인과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점을 의심해본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 비즐러와 드라이만은 서로 몰래 지켜보는 장면만 있을 뿐, 단 한 번도 마주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타인이 된다. SNS를 즐기는 우리의 모습과 도청을 하는 비즐러의 모습은 다른 이의 삶을 엿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크나큰 차이는 훔쳐보는 대상의 행위에 있다. 치장하고 만들어진 모습으로 개인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SNS가 진정성을 상실한 반면 드라이만은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내비친다. 비즐러는 한 사람의 진짜배기 삶을 훑음으로써 거짓과 가식이 없는 한 생명체 자체의 모습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 것이다.
SNS 친구가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던 사건은 화려한 사진으로 자신을 꾸미고 '좋아요'수에 집착하는 행위가 부질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온라인에서 'ㅋㅋㅋ'로 남발되는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공감대가 없어서 잠시 어색하더라도 직접 사람과 사람 사이에 눈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 눈 한 번 못 마주친 비즐러와 드라이만, 두 남자도 가슴 찡한 우정을 나누는데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이와는 어떠한 관계로도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홀로 짹짹대는 트윗-tweet-이 아니라 내 앞의 누군가와 함께 주고받는 지저귐이다.
2012-11-04
그래서 제 인스타그램 주소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