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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은 이른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시차 적응을 하지 못했는지, 어째선가 일찍이 일어난 탓이었다. 한국은 밤일 시간에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 여유롭게 카페에서 책 같은 것을 읽으면서 브런치를 먹는, 현지인처럼 행동해 보자는 명목을 앞세운 '뉴요커'가 되어보는 환상 충족을 해 보기로 결정했다.
한 해의 마지막날이어서 그랬는지 이른 아침의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벽을 가득 메우고 바닥으로 넘쳐흐른 그래피티들과 방심하면 밟을 것 같은 똥들로 덮인, 퀼트조각처럼 보일정도로 여기저기에서 공사 중인 것 같은 도로들. 그리고 누구 하나 봐주는 이 없었던 신호등.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그 도로를 걸었다. 당황하지 않은 척하려고 온 힘을 다해서 내 선글라스를 탐내는 노숙인분과 인사를 나누며.
카페에 앉아서 커피와 함께 빵 부스러기를 잔뜩 흩뿌리며 몇 분 전 내가 잔뜩 긴장한 채로 주문한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를 듣고, 무엇을 먹는지 바라보는 일이 생각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아메리카노보다 라떼를 마시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것, 그리고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카페에서 모국어 이외의 언어에 둘러 쌓인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다. 꼭 배경삼으려고 재생시켜놓은 유튜브가 별안간 원격조종이라도 당한 양 전혀 다른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 같은.
화려했던 토스트는 다 사라지고 헨젤과 그레텔이 걸어간 것 같은 접시를 바라보며 이걸 주문하기 위해 애썼던 일이 벌써 아득히 옛날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하기 위해 애써본 적이 언제였던지.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어릴 적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던 그 기분을 어른의 몸으로 느끼는 것일까,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 이라더니,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두 번째 봄을 맞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났다.
카페의 문을 열고 나와 코끝으로 시린 공기를 느끼며 나는 금세 구글맵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될 길을 한참이고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낡은 건물들과 무엇을 파는지 알 수 없는 상점들을 지나, 공사 중인 도로를 피하고 무단횡단을 일삼으며, 핑크색의 브루클린 다리로. 걸을수록 지나온 길과 지나갈 길의 풍경이 너무나도 달라지는 곳. 발 밑으로 흐르고 있는 강과 그 너머로 보이는 맨해튼, 고층빌딩의 섬, 그리고 그 사이의 거대한 풀장처럼 보이는 초록빛 센트럴파크. 나는 그 풍경을 그리워했던 사람처럼 바라보며 조거(jogger)들 사이로 계속해서 걸었다. 한 시간도 훌쩍 넘는 그 길을 걷기 시작했던 이유는 첫째로, 카페로 향하던 아침에 마주했던 수많은 뉴욕의 노숙인들은 나의 머릿속 어딘가에 있는 뉴욕 지하철의 악명을 더욱 드높여주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으며 셋째로는 때는 마침 겨울로 누군가를 죽일 마음이 들 정도로 해가 뜨겁지도 않았던 탓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가십걸 속의 맨해튼을 동경하던 제니를, 그리고 맨해튼에서 적응의 시차가 필요했을 댄을 십분 이해했다.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 중 하나가 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그 속의 수많은 ‘론리 피플’들. 그 아이들은 이방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주민이었겠지.
그렇게 도달한 맨해튼에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지극히 너무나도 너드스러운 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서점에 들르는 것이었다. 서점! 책은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가장 오랜 짝사랑 상대로, 내가 반드시 서점을 첫 목적지로 지정했던 것에 대한 하찮고 우스운 일화가 있다.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던 중학생 시절, 우연히 읽었던 전 세계의 북카페 여행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졸업하면서는 꼭 같은 책을 구매까지 했었다. 그 책을 가지고 있으면 꼭 어느 날인가 나니아의 옷장이 열리듯,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침내 찾아온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미룰 참을성은 내겐 없었다.
꿈만 꿔 왔던 ‘예비’ 이방인으로써의 첫날은 환상적이었고, 대마냄새에 공격당한 코가 아팠으며, 배고팠다. 나는 윌리윙카의 초콜릿공장에 발을 들인 아이처럼 한참이고 벽을 빼곡히 메운 책들 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처음 마주하는 대마냄새의 습격을 받고,- 대마냄새는 정말이지 난생처음 맡아보는, 세상의 온갖 불쾌한 냄새를 모두 모아다가 응축해 놓은 것만 같았는데,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어김없이 맡아야만 했다-한해의 마지막을 보내려는 인파 속에 섞여 맨해튼을 구경하고,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나의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꼭 머리카락까지 배인 것 같은 대마 냄새를 지워내려 한참이나 샤워를 하고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볼드랍(Ball drop)을 중계하는 방송을 잠시 보다가, 이내 흥미가 떨어져 모던패밀리를 틀어놓고 모닝빵과 어제 남긴 구운 새우를 먹으며 뉴욕 탐험의 첫날과 한 해의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들 속에 혼자 조용히 보낸 하루지만, 나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행복한 어떤 날 중 하나일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 느끼는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혼자였고, 열세 시간 떨어진 땅에 있는 수많은 아는 얼굴들과 소중한 얼굴들이 생각났으나, 그뿐이었다.
이방인을 가장한 여행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차로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들고 먼 타지에서 오롯이 혼자라는 경험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