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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Jul 08. 2024

이방인이 되어보시렵니까?

2

'뉴욕에 온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모인 거야.' 아마 정확하지는 않을 테지만, 이런 대사를 어떤 영화에선가 본 적이 있다. 사실은 내가 마르고 닳도록 보고 또 들여다본 영화에서. 뉴욕은 나에게 그런 도시였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최선을 다해서 헤엄치는 도시.






꿈이 이루어지는 빌딩의 숲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맨해튼을 향해 달려가면서 본 모든 것들이 신기했다. 아직까지도 나는 꿈을 꾸는 것만 같은 몽롱한 기분이었다. 기시감이 들 만큼 익숙한 풍경들. 어린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영화들 속에 담겨있던 모습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나.



 

 달려가는 동안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다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화씨를 섭씨로 쉽게 계산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길에 기사님께서 해주셨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나에게 일종의 완충제 같은 것이었다. 정말로 이방인이 되기 전에 주어지는 익숙한 언어로 주어지는 조언. 그렇게 셔틀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가다가 맨해튼의 하얏트 호텔 앞에서 떨구어졌다.





 내가 머무를 숙소는 윌리엄스버그, 브루클린에 있었기 때문에 한번 더 이동하기 위해서 길 한편에서 우버를 기다렸다. 마침내 나는 뉴욕의 맨해튼 한가운데에 내 몸무게와 맞먹는 두 개의 캐리어와 함께 홀로 남겨졌던 것이다. 우습게도 우버를 기다리는 그 짧았던 순간이 내가 처음으로 홀로 먼 타지에 남겨졌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다. 더 이상 한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았다. 그것을 내가 피부로 느낀 까닭은 첫째로 국내의 항공사를 이용해서 14시간을 날아왔다는 점이었고, 둘째로는 한인 셔틀버스를 타고 맨해튼까지 달려왔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 시점 전까지는 뉴욕에 도착하고 나서도 익숙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서 캐리어와 함께 수많은 인파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그 교차로에 서 있는 순간에는 더 이상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은 없었다. 이방인으로써의 첫 순간이었다.







 조금 스포일러를 해 보자면, 착실한 나의 너드미가 반영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에 내 앞에 펼쳐진 첫날의 순간들은 여행기의 클리셰를 착실히 따르기라도 하듯 썩 유쾌한 성질의 것들은 아니었다.





 

 우버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는 동안 처음으로 정신없는 미국의 스몰토크를 경험했고- 제법 강렬 인도 억양을 가지고 계셨던 기사님이셨다는 점이 쉽지 않았지만-그 유명한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서 반쯤 넋이 나갔지만 긴장은 바짝 한, 이상한 상태로 호텔에 들어섰다. 다시 한번 확인하자면, 당시는 크리스마스로부터 일주일정도가 지난 시점이었고, 즉, 연말이었으며 그 말인즉슨 예약 가능한 숙소를 찾기도 힘들었지만 숙박비가 말도 못 하게 비쌌던 시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한국에서 앱을 통해 호텔 예약과 금액 지불을 모두 마친 상태였는데, 체크인 도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비록 돌려받을 돈이었지만, 보증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증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벌써 숙박에 대한 비용을 다 지불했는데도 체크인이 불가능하다니. 낯선 곳에 발 들인 이상 온갖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미국생활동안 정부지원금을 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당장은 비상금 정도의 현금과, 실시간으로 환전할 수 있는 카드에 연동된 계좌 속의 뉴욕 여행동안 쓸 경비만 들어있었다. 1000달러나 되는 돈을 당장 보증금으로 묶어둘 수는 없었다. 뉴욕에 들어선 후에 불과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겪은 비상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로비에 앉아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새벽시간일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찾는데에 5분이나 소요한 후에 내 방 앞에 도착했다.

 그렇게 혼자 도망쳐왔는데 첫날부터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당장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나 돈이 없었다는 사실보다도 이토록 내가 무력하고 무능한 사람이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사실이 그러했다. 그리고 전화로 그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이, 내 무능력함을 내 입으로 읊어내는 것만 같아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지워낼 수 없었다. 아마도 필연적으로 나는 여기에 있는 동안 그러한 기분을 많이 느끼게 되겠지만, 늘 그렇듯 처음 마주하는 감정은 견뎌내기 쉽지 않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자괴감과 함께 방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놀랍지도 않게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아무리 시도해 봐도 카드키는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인사한 지 15분 만에 다시 프런트데스크로 전화를 걸어 카드키가 작동되지 않는다고 항의해야만 했고, 잠시 후에 직원이 올라와 나에게 새로운 카드키를 쥐어주고 나서야, 마침내, 호텔 방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에게 새로운 카드키를 건네주고 간, 말하자면 그 순간 나의 구원자였던, 그 직원이 호텔방문을 닫아주고 떠났던 그 순간이 얼마나 나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두고, 캐리어를 열어 정리했다. 침대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아 할 몇 분 뒤의 나를 위해서.







 양손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웠던 캐리어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그걸 끌고, 또 들고 걷기 위해 애쓰면서, 호텔에 도달해서는 로비에서 밤을 지새울까 잔뜩 긴장하던 모든 것들이 짓누르던 어깨가 비로소 가벼워졌다.






 정신없는 거리와 영어로의 대화들, 호텔로 들어와서도 생겼던 여러 문제들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나는 침대에 누워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도시의 이방인이 되기 위해 치른 통행료정도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이 나는 조금 놀라웠다.




 나는 대체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받는걸 견뎌하지 못하면서도 기묘한 욕심이 있어서 늘 스트레스 받을만한 일들을 스스로 벌렸다. 세가지 코스를 한번에 수강한다든지, 또 거기에 자꾸만 공모전과 대외활동을 끼워넣는다든지 하는것들. 그래놓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내는것은 상상하고싶지도 않아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일이 끝날때까지 좀처럼 쉬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자발적 워커홀릭으로 살게 될 운명같은. 헤르미온느처럼.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정말로 지금 처해있는 상황을 좋아하고있다는걸 알아차릴수 있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으면서 그 끝에있을 결과를 기대하고 꾸역꾸역 달리는것이 아니라, 그냥 스트레스를 받아도 지금 당장 좋다고.






창 밖으로 보이는 '뭔가 다른' 건물들. 시차로 조용한 핸드폰. 쫓기는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은지가 언제였던가,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대학교를 다 졸업 해 내 도록 붙들고있어야 했던 답안지를 제출하고, 새로운 종이를 받은 기분.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속에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우습게도 슈퍼를 다녀오는 일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나는 '나만의' 호텔방을 조금 더 누리고싶었고,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새 옷걸이에 걸어둔 패딩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한 여권과 지갑과 카드키를 들고 호텔방을 나섰다. 십 이월의 뉴욕은 꼭 내가 떠나온 나라처럼 추웠다.







 공사중인것 같은 짧은 도로를 지나 슈퍼로 들어섰다. 연말인데다가 늦은 시간의 슈퍼는 한적했고, 나는 한참을 구경했다. 엄청난 양의 향신료들과 빵, 치즈 코너들, 그리고 고기와 햄들과 그 사이에 불닭볶음면과 한국 라면들로 가득 차있는 코너까지. 호텔에 잠시 머무르다가 워싱턴으로 떠나야 하는 내가 살 수 있는 물건은 별로 없었지만, 그 사실이 나에게는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슈퍼에서 장을 보는 이곳에 소속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구경을 마친 나는 브루클린에서의 첫날밤을 기념하기 위한 브루클린 맥주 한 캔, 그리고 하이네켄 맥주 한 캔과 구운 새우 한 팩, 곧 나에게 후회를 안겨줄 FAGE 꿀 요거트 한통과 코코넛 칩 한 팩을 골랐다. 여권 검사를 하고, 'Happy holiday(즐거운 연휴 보내)'라는 연말의 인사를 건네받고는 제법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슈퍼를 나섰다.







 호텔방으로 돌아온 나는 사온것들을 정리하고 먹을 준비를 마치고서야 숫가락도 젓가락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온 일회용 젓가락이 몇 개 있었으나, 숟가락이 있을리는 만무했고, 나는 열심히 골라온 요거트를 그저 바라보는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그렇게 전시된 요거트와 함께 보송보송한 상태로 호텔방의 티비로 유튜브를 보며, 새우와 맥주를 먹고 나는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까무룩 잠들었다.







이륙한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채로 논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나는 이방인으로써의 삶을 내가 사랑할것이라는것을, 이 순간을 분명 언제고 그리워할거라는것을 이미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그제야 나는 뉴욕에 있었다.





장난처럼 말하고는 했던, 뉴욕에서 울려퍼지는 'Empire State of Mind' 를 듣는다는 내 버킷리스트중 하나를 이뤄내면서.








In New York.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 There's nothin' you can't do. Now you're in New York. These streets will make you feel brand new. Big lights will inspire you. Let's hear it for New York.


뉴욕. 꿈으로 지어진 콘크리트 건축물들의 정글. 여기서 네가 못할것은 없어. 너는 지금 뉴욕에 있잖아. 이 거리들은 너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느끼게 해 줄거야. 큰 불빛들은 영감을 줄거고. 뉴욕을 위한 이 노래를 들어봐.


                                                                                                         -Empire State of Mind/ Jay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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