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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r 15. 2020

승부욕이 없는 사람

* 승부욕 : 상대와 경쟁을 하여 승부를 내거나 이기려고 하는 욕구나 욕심.


승부욕이 있다는 건 대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주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념이 있다는 것처럼 여겨지고, 해당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높이 올라가기 위해 열심을 낸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에게 “승부욕”이란 경쟁을 해서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한 마음”으로 느껴지는 단어이다. 열심히 하고 집중하는 것은 좋으나, 이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영 탐탁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시험을 봐서 등수를 매기고, 축구경기나 농구 경기를 해서 승부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그나마 “공부”라는 영역에서는 내가 열심히 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히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운동”이라는 영역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탁구, 배드민턴 같은 1:1의 경쟁 혹은  농구, 축구 같은 다수:다수의 경쟁 등 상대방과 직접적으로 부딪혀 누가 더 잘하는지를 경쟁해야 하는 일이 운동의 목적이자 결과로 느껴졌다. 누군가는 져야 누군가는 이기게 되는 일이었다. 지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일 뿐더러 상대방보다 내가 더 못함을 인정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즐거운 일이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운동경기를 통해 지는 일이 없을 순 없었다(무승부인 경우는 예외로 하자). 누군가는 반드시 져야 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이기는 일만 있을 뿐이다. 내가 이기더라도 상대방은 진다. 내가 져야 상대방이 이긴다. 나는 이긴다는 기쁨보다는 누군가는  져야 한다는 사실이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 혼자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게 되었고, 경쟁을 통해서 승부를 내야 하는 일은 잘할 자신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당구를 칠 때도 잘 치지 못했고, 스타크래프트를 해도 잘하지 못했다. 그 자체가 재미없진 않았다. 당구 치는 일은 재미있었고, 게임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다만 하는 일 그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이지, 이겼다는 결과가 크게 재밌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져야 했고, 져야 하는 일을 내가 감당하는 게 속 편했다. 잘 못한다는 것의 핑계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맞다. 경쟁하는 일을 잘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 잘 못하는 결과로 계속 나타난 것이다. 열심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치고 말뿐, 경쟁에서 이겨야겠다라던가 남들을 제치고 우수한 성과를 내어야겠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게 돼버렸다. 그래서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고 자주 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내어야 하는 스포츠 게임은 손도 대지 않고 있는 희한한 현상도 발생하게 되었다.


통상 “뭐하면 맨날 져요”가 장점이 될 순 없다. “이기고 싶어요”가 혹독한 사회생활 속에서는 장점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혹은 “승부욕이 없는 편입니다”라고 스스로 자신 있게 말을 하지는 않았다. 면접 볼 때 얘기하지 않았고, 친선 운동경기를 할 때나 일을 할 때도 굳이 “다른 사람들을 이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저는 승부욕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거 자체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떳떳하지 못한 일보다 더 내키지 않는 일은 아득바득 눈에 불을 켜고 상대방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일이었다.


착하다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착한 사람도 아니고 마음이 선한 사람도 아니다. 착하기 때문에 져도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그 경쟁에서 이기는 일 그 자체가 나한테는 부담이고 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가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일-이를테면 한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해서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는 일, 매일매일 노력해서 마라톤을 완주하는 일(마라톤 경기에서 1등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은 열심히 할 생각이 있고 노력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내가 나은지 상대방이 나은지 직접 겨뤄보는 일은 여전히 영 내키지가 않는다.


앞으로도 이러한 생각은 크게 바뀔 거 같지는 않다. 이기는 일에서 가치를 찾기보다는, 나 혼자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는 일에 열심을 내며 살아갈 것 같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는 일은 누군가를 이기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나 혼자 열심히 해도 성과를 낼 수 있을 일이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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