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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pr 13. 2020

소소한 일탈에서 오는 새로움

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저마다 한 번쯤 일탈을 꿈꾸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하고,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 쇼를 해보고 싶다는 자우림의 노래가 괜히 인기가 있었겠는가. 매뉴얼화된 비슷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안정적인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매일매일이 다르지 않다라면 따분함을 느끼고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물론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출 만큼 용기가 있거나,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떠날 만큼 무책임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 또한 모두의 생각이겠다.


어렸을 때 생각했던 “안정적인 삶”이란,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일이었다. 그러자니 중학교 때는 3년이 지나면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불안정함이 기다리고 있었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수능이라는 거대한 혼돈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 때라고 아니었겠는가. 취업 아니, 그전에 군 입대라는 무시무시한 변화 앞에서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후에는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 빨리 취업을 해서 안정적으로 수입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오게 되었다.


이제는 안정적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큰 위기 없이, 큰 변화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 그토록 꿈꾸어 왔던 안정적인 삶이란 바로 이런 거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삶이 따분하다라고 느낄 순 있겠으나, 나름 많은 고민 속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일상적인 삶이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사람마다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나는 매뉴얼화하고 반복하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는 성향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큰 일탈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일탈이 아닌 변화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시간과 이 공간이 지루하고 따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험해보지 못하고 놓쳤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습관을 따라 해 와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 머리보다 몸의 반응에 따라 해 와서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못 가봤다, 배낭 하나만 메고 세계 일주를 못해봤다 등은 여전히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미련도 없다. 나의 안정적인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해 볼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은 어떤 게 있을까 하는 생각 정도이다.


집과 회사가 20km 정도로 짧지 않은 탓에 가는 방법이 굉장히 다양하다. 차를 가지고 갈 수도 있고, 버스를 탈 수도 있으며 지하철을 탈 수도 있다. 차를 가지고 가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올림픽 대로를 탈 수도 있고, 강변북로를 탈 수도 있다. 운전을 하는 중에 장성규의 굿모닝FM을 듣기도 하고, 김영철의 파워 FM을 듣기도 한다. 그 과정 중 내가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방법을 찾고, 그 방법대로만 하려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따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강변북로로 갔으면 의식적으로 내일은 올림픽대로로 차를 향해 본다. 오늘 차를 가지고 갔으면, 내일은 버스를 타 본다. 큰 변화는 아니다. 회사에 간다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도 않고 어차피 동일하다. 그런데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보게 된다. 어제 못 봤던 것들을 오늘은 보게 된다. 오늘과는 또 다른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30대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살아왔고 큰 후회 없이 살아온 삶이며, 어렸을 때 기대하던 삶이었다. 이제 조금 살만하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변화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고 마음에만 담아두던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까지 살아왔던 39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된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나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나의 얘기를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이 아직 일상화되지는 않았다. 1월 16일 첫 글 발행을 시작으로 3개월 정도 글을 써보고 있는데, 글을 쓰는 과정이 아직 조금 낯설다. 집에서도 써보고 카페에 가서 써 보기도 하는 등 장소의 문제와 더불어, 어떠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쓸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들은 계속 고민 중이다. 사실 큰 주제는 3가지 정도로 한정되어 있는데(1.회사에서 일을 하는 과정 2.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일들 3.나 자신에 대한 고백), 이 또한 아직 정형화되어 있지는 않고 이런 얘기들 저런 얘기들 써보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쳐 매뉴얼화하고 일상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글 쓰는 방식과 주제에 대한 안정성이 담보되었을 경우, 또다시 작은 변화-다른 주제에 대해 써 본다거나, 전혀 새로운 장소에서 글을 써본다라거나-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실천해 볼 예정이다.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큰 일탈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출근을 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잠을 줄여가며 글을 쓰지도 않는다. 지금의 삶을 사는 과정 중 시간을 조금만 할애하여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 후의 내 삶도 지금까지와의 삶과 큰 변화는 없다. 여전히 나는 회사원이고 남편이며 친구이다. 큰 일탈을 시도할 만큼 용기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소소한 일탈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강변북로로 가다가 올림픽 대로로 가는 정도의 일탈보다는 조금 스케일이 큰 일탈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내 삶에 있어서 소소한 일탈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 정도의 소소한 일탈 정도는 계속 시도해 볼 용의가 있다.


변화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이 다이내믹하고 매일매일 다른 삶이라면 그런 삶에는 변화가 아니라 일상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변화 자체에 대한 갈망이 없을 수도 있다. 굳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선택지가 너무 많고 해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으며, 거기서 오는 새로움 또한 느껴보지 못할 가능성이 너무 많다. 길지 않은 인생, 조금 더 다채롭게 살기 위해 소소한 일탈을 계속 시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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