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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Sep 23. 2020

취미가 무엇인가요? (2) - 프라모델 편

* 취미 :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즐거움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자기소개가 필요한 순간에 이름, 나이 등과 더불어 꼭 따라붙는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취미가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의미대로 여가시간을 재밌게 보내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이 취미일진대, 의외로 취미가 무엇인지 빠르고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억지로 무난하고 그럴 듯 해 보이는 음악 감상, 영화감상, 독서 등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고, 가끔씩 친구 만나기, 음주 등으로 질문에 응수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쓸데없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하나 가지고 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자부심 말이다.


어렸을 때 형과 형의 친구와 자주 놀았던 기억이 있다. 형의 친구가 근처에 살았던 덕분에 자주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집에 놀러 오고 가는 일도 흔했다. 자연스럽게 형과 형이 좋아하는 놀잇감을 보고 배우게 되었고 그중의 하나가 프라모델을 만드는 일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프라모델을 사서 집에서 함께 만들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외갓집도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외갓집에 놀러 가면 외사촌 형이 프라모델을 만들어 놓은 것을 구경했던 기억도 있다. 어릴 때 주위에 있었던 형들이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된 나는 원래 프라모델을 취미로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보다.


프라모델을 단순 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취급하기에는 기술력과 심오함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릴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부모님이 사주셨기 때문에- 일단 프라모델 자체가 싸지 않다. 물론 프라모델을 디자인하고 찍어내는데 대한 기술력에 비하면 절대 비싼 값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만 절대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싸지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단순하고 크기가 작은 모델은 만원 정도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지만 크기가 크고 정교한 모델은 2~30만원에 육박할 만큼 가격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키덜트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라기보단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취미라는 것이다.


다 같은 프라모델이고 다 같은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프라모델도 알고 보면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다. 로봇 형태의 프라모델이 있고 메카닉(비행기, 탱크 등) 형태의 프라모델도 있으며, 사람 형태의 프라모델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캐릭터 문화와 융합해 우리에게 친숙한 라이언, 피치 등의 프라모델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프라모델은 로봇 형태, 그 중 “건담”이라는 프라모델 종류이다. 건담은 사실 애니메이션에서 파생된 프라모델인데, 정작 애니메이션은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프라모델을 통해 “건담”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쭉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건담”이라는 모델도 알고 보면 정말 많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놈이 그 놈 같지만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건담이 있고, 현재도 디자인을 살짝살짝씩 바꿔서 새로운 형태의 건담이 끝없이 나오고 있다. 모델뿐만이랴, 크기와 정교함의 차이에 따라 같은 건담임에도 불구하고 등급을 나누어 단순한 모델, 정교한 모델, 더 정교한 모델 등 굉장히 여러 가지 형태의 모델을 접할 수가 있다. 더불어 공룡 형태의 프라모델도 좋아한다. “조이드”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사실 아재들은 알겠지만 조이드는 태엽장치가 있어서 움직인다는 데에 굉장한 매력포인트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나는 움직이는 데는 큰 관심이 없고, 디자인 그 자체에 관심이 있고 만드는 데에 관심이 있어서 조이드를 좋아하고 있다.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데에는 역시 “만든다”는 데에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무슨 부품인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작은 부품들을 하나하나씩 끼워 맞추다 보면 어느샌가 완성된 하나의 형태가 되어져 있다. 조각조각은 의미가 없지만 조각을 통해서 완성된 전체는 큰 의미가 있다. 어렸을 때는 조각을 조립하기 위해서 본드칠을 해가며 부품을 연결시켜야 했지만, 요즘은 기술력이 좋아져 스냅타이트(암수 구분을 통해 끼워 넣는 형태) 기술로 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그냥 끼워넣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반대로 분해하는 것도 굉장히 쉽다. 그냥 빼내면 된다. 졸업 후 첫 회사에 취직 후 1년도 안돼 회사를 퇴직하고 쉬는 기간 동안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근 20년 가까이 접하지 못했던 프라모델을 다시 접하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본드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색 분할이 너무 완벽하게 되어 있어서 단순 조립만으로 원래 디자인을 표현해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잠시 멀어졌던 취미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어 하나의 모델을 완성하는 동시에 다음 모델을 구입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조립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피규어가 비슷한 느낌의 취미라고 할 수는 있는데, 사실 피규어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캐릭터를 형상화하고 입체화한 것이라는 데서 비슷해 보일지는 모르나 즐기는 포인트 자체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프라모델은 완성 후 조형을 감상하는 데도 의미가 있지만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취미인데 반해 피규어는 조형의 세세함과 완성도를 눈으로 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취미이다. 이미 다 만들어져 나온 것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 취미이다. 그래서 움직여 보거나 다른 포즈를 취해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반면 프라모델은 완성 후에 다시 분해를 할 수도 있고, 완성 후에 이리저리 액션 포즈를 취해볼 수도 있다. 피규어가 조형의 완성도는 높을지 모르겠으나, 완성을 위한 과정은 나의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씩 조립해나가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나는 피규어는 좋아하지 않고 프라모델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다 만들어진 프라모델은 짐짝 취급당하기도 한다. 어디 서랍 한구석에 처박아 놓기도 하고 겹겹이 쌓아서 상자 안에 보관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그동안 만들어왔던 프라모델을 짐짝 취급하는 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장식장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장식장 역시 플라스틱으로 조립하는 형태로 구입하게 되었다. 장식장이 내 방의 벽면 한구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집을 방문하는 지인들이 한쪽 벽면을 차지한 프라모델을 보면서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이게 다 얼마냐, 나이가 몇인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냐, 혹은 멋있다 등등의 반응 말이다. 일단 전체의 가격을 환산하면 물론 많은 돈이 들긴 했지만 하나하나씩 사모으다 보니 많아진 것이기에 가격에 부담을 느끼며 모은 건 아니었고, 전술했듯이 프라모델은 싸지가 않아 키덜트의 영역에 가장 부합한 취미이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즐기고 있었다고 대답해준다. 멋있다는 반응에는 감사하다로 화답한 것은 물론이고.


취미생활 1편으로 소개했었던 게임과 더불어 프라모델도 사실 일본 취미 문화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업무차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게임, 프라모델 등에 대한 전문점을 방문했을 때 그 규모에 굉장히 놀라기도 했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전문점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어른들의 취미 문화에 대해 예전보다는 조금은 관대해져서 이러한 취미생활에 색안경을 끼지는 않지만 남녀노소 자연스럽게 프라모델을 즐기는 문화는 아직 아닌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또한 사실 일본과의 관계가 최근에는 더더욱 좋지 않기 때문에 프라모델을 즐기는 일은 일본문화를 좋아한다라고 인식될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정치적인 부분은 좀 민감할 수 있으나 문화의 영역에서는 조금 더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다.


사실 요즘은 만드는 일은 좀 쉬고 있다. 만들지 못한 프라모델 박스들이 있지만 언젠가는 만드리라 하는 다짐을 하며 이미 다 만들어진 프라모델을 감상하고만 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열정이 조금 식은 탓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여전히 프라모델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며, 누가 나에게 물어봤을 때 프라모델을 만드는 취미에 대해 열심히 소개, 권장해줄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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