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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ug 21. 2020

마라톤에 임하는 자세

밤새고 100점 맞기 vs 12시에 자고 80점 맞기. 어떤 것이 바람직할까. 아니 어떤 것이 더 나을까. 아니아니 어떤 게 더 익숙할까. “잠”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잠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굉장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얘기하고 싶은 건 일의 완성도와 노력의 정도에 대한 우선순위이다. 평소에 공부를 잘해 놓으면 좋으련만 사람이 어디 그런가. 닥쳐야 하게 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함을 굳게 믿기 때문에 여유가 조금 있거나 데드라인이 닥치지 않은 일은 내 앞으로 잘 가져오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시험을 앞두고 하는 공부는 벼락치기가 제맛이며 효율성도 가장 높다고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고민이 생긴다. 공부를 많이 못했기 때문에, 내일 시험이기 때문에 오늘 공부를 해야 하는데 시험 범위가 너무 넓고 암기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말이다. 살짝 후회가 든다. 진작에, 미리미리 공부 좀 해 놓을 껄. 하지만 그런 후회를 할 시간도 이제는 충분하지 않다. 빠르게 공부를 해야 한다. 빠르게 하긴 하는데, 언제까지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 고민이 생긴다. 그동안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지 못한 시간만큼 충분히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근데 어쩌나. 밤이 되니 잠도 슬슬 오기 시작한다. 공부도 해야겠고, 잠도 자야겠고 고민이 된다. 잠을 참아가며 공부를 많이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잠을 참아서 공부하면 막상 시험시간에 정신이 멍해지고 졸려서 오히려 시험을 망칠 것 같기도 하다. 공부를 조금 덜 하더라도 온전하고 맑은 정신에 시험을 치면 얼핏 본 내용들도 기억이 날 거 같기도 하다. 적당히 타협해볼까. 밤을 새우는 건 무리인 거 같고 2~3시 정도까지만이라도 해볼까. 어떡하지.


일을 할 때는 어떤가. 회의가 한 달 후로 잡혔다. 혹은 프로젝트 진행 결과 발표 일정이 한 달 후로 잡혔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남아있으니 아직 급한 건 아닌 거 같다. 지금부터 조금조금씩만 준비하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3주간 정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회의가 일주일 남았다. 일주일 남았으니 이제 여유가 많이 없어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3~4일 정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발표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이제 치열한 고민이 시작된다. 일단 준비를 시작한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면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일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완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단 야근은 좀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밤새 야근하기에는 너무 피곤할 거 같다. 자료는 적당히 준비하고 내일 말로 때울까. 아니야. 자료가 완벽해야 발표도 잘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밤을 새더라도 자료를 완벽히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어떡하지.


조금 부족하더라도 무리 없이 진행하면서 데드라인을 정확히 맞추는 성향과 조금 늦고 힘들더라도 완벽을 기해야 하는 성향. 이는 옳고 그름의 영역은 아닌 거 같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완벽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고 맞아 보이긴 하다. 그러나 결과만큼 중요한 게 과정 아니겠는가.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고 너무나도 고되다면 지치기 마련이다. 당장 그 일 한 가지는 조금 무리해서 진행해볼 수 있겠으나 그러한 일들이 두 번 세 번 닥쳤을 때는 너무나도 힘들어지고 소위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다. 물론 내 인생의 너무 중요한 문제-입시를 위한 시험공부, 취업을 위한 시험 준비, 승진을 위한 시험 준비 등-에 대해서는 무리가 되고 힘들더라도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맞겠으나, 그 정도로 인생을 걸만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일에 대해서도, 매사에 그렇게 몸을 혹사시킬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대충대충 살아서는 안된다. 맡은 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든,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든 말이다.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는 일은 조금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 건 맞는 것 같다. 완벽을 기하다가 데드라인을 놓쳐버리는 일도 흔치 않게 발생한다. 밤새 시험공부를 하다가 정작 아침에 잠이 들어 학교에 지각한다거나, 회의자료를 회의시간까지 작성하지 못하는 일 등 말이다. 이러한 일을 방지하고자 죽을 만큼의 노력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노력을 기울여서 D-DAY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게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과정이 원만한 방법을 택하는 편이다. 원체 잠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공부한다고 밤을 새우는 일은 자신도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잠을 자는 편을 늘 택해왔다. 회사에서 일을 함에 있어도 완벽함보다는 기한을 우선시하고 무리 없이 준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취미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게임을 밤새 해서 최고 레벨에 도달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좋아하는 일을 할 자신은 없었기에 게임을 더 하고 싶더라도 잠을 충분히 자는 편이었다. 일을 함에 있어서나 놀이를 함에 있어서 80점까지는 빠르게 올리는 편이다. 그러나 100점을 맞기 위해서 죽을 만큼의 노력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서 특별히 못하는 건 없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적당한 노력을 통해 적당한 결과물을 얻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살아간다는 건 백 미터 달리기라기보다는 마라톤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초장부터 냅다 달리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이 들지만 지나고 보면 조금 더 멀리 보고 조금 더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는 숨을 쉬지 않는 경우가 많다(우사인 볼트는 숨을 쉬지만). 숨을 쉬지 않고 단기간에 폭발력인 집중력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얻는다. 100미터이기 때문이다. 숨도 쉬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일을 하기는 어렵다.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숨도 쉬어야 하고 주위도 둘러봐야 하며 페이스를 조금 빠르게 해야 할 때도 있고 조금 천천히 해야 할 때도 있다. 죽을 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조금 피곤할 정도만큼의 노력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완벽을 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문제가 없을 만큼만 하면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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