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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Nov 11. 2020

취미가 무엇인가요? (3) - 피아노 편

* 취미 :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즐거움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자기소개가 필요한 순간에 이름, 나이 등과 더불어 꼭 따라붙는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취미가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의미대로 여가시간을 재밌게 보내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이 취미일진대, 의외로 취미가 무엇인지 빠르고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억지로 무난하고 그럴 듯 해 보이는 음악 감상, 영화감상, 독서 등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고, 가끔씩 친구 만나기, 음주 등으로 질문에 응수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쓸데없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하나 가지고 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자부심 말이다.


앞선 취미생활에 대한 소개로 인해 덕후스러운 취미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있지만 나에게도 고상한 취미가 있다. 음악 감상이라는 식상하고 상투적인 취미가 아니라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 악기를 다룬다는 것, 피아노를 연주한다라는 고상한 취미 말이다. 이전 글에서도 잠깐 소개한 적이 있지만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시던 외숙모 덕분에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외갓집에 자주 놀러 가게 되었고, 자연스레 외숙모가 일하시던 피아노 학원에도 자주 놀러 가게 되었다. 유치원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외갓집에 놀러 가다가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시기 말이다. 형과 같이 외숙모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형은 취향이 맞지 않았는지 금세 포기하였고, 나는 중학생 때까지 꽤 오래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 중간에 우리 집이 이사해 외갓집이 멀어지게 되었지만 무려 택시를 타고 피아노 학원을 가는 열정을 불태우며 꾸준히 피아노를 배워왔다.


악기를 배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 혼자만의 연주와 나 혼자만의 목표로 꾸준히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활용할 수 있어야 더욱 재미가 생기고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던 덕분에 나는 배웠던 피아노를 활용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매년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할 때 쯔음 그 음악회에서 나는 처음으로 중창 반주를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계기로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였고, 내가 더 많이 배우고 더 잘 치게 됨으로써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리라는 생각도 들게 되어 지속적으로 피아노를 배워왔던 것 같다.


심지어 군대를 가서도 피아노를 칠 기회가 생겼다. 군대에서도 매주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역시 교회에서는 찬양이 빠질 수가 없고 피아노가 빠질 수 없다 보니 피아노를 칠 사람이 궁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내가 자연스럽게 피아노 반주를 담당하게 되었다. 사회에서도 피아노를 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남자들만 있는 군대에서는 오죽했으랴. 억울하고 힘들던 군대생활 중에 일요일에는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생각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고,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다.


이 정도로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면 내가 피아노를 굉장히 잘 친다라고 생각들을 한다. 그러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한다. 어쩌다 보니 기회가 생겨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반주도 하면서 커왔지만 피아노는 나에게 가끔 즐기는 취미일 뿐 전문적으로 하는 분야도 아니고, 남들 앞에 나서서 자신 있게 잘 칠 수 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도 못된다. 피아노는 나의 삶을 즐기기 위한, 철저한 취미의 영역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쩌다가 피아노를 치는 사람을 찾을 때에도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누군가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지 않는 한 내가 스스로 하겠다라고 했던 일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정말 나 아니면 절대 안 되는,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칠 줄 아는 사람이 유일무이한 경우에만 나서곤 한다.


피아노를 즐겨 쳤던 까닭에 어렸을 때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있었다. 엄마도 피아노를 가끔 치셨고, 나도 좋아했기 때문에 집에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한대 샀고 학창 시절 교회 반주 연습을 하기도 하고, 낱피스로 된 유행가 가요를 구입하여 치기도 했었다. 중학생 때 음악시간에 음악 선생님이 집에 피아노가 있는 학생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여러 명이 손을 들었고, 선생님은 이어서 자신 때문에 집에 피아노를 구입한 사람이 있냐고 다시 물었을 때 나는 손을 들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피아노는 나에게 있어 재밌고 즐거운 취미이지만 뭔가 나서서 자랑할 만한 취미는 아닌 것으로 생각되어 왔던 것 같다. 못하는 것 없지만 잘하는 것도 딱히 없는 나의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취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취미였다라는 생각 또한 드는 건 사실이다. 군 복무 시절 엽기적인 그녀의 선풍적인 인기로 인해 캐논 변주곡 또한 엄청난 유명세를 탔고, 더불어 이루마라는 피아니스트(본인은 연주자가 아니라 작곡자라 불리고 싶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도 큰 인기를 끌게 됨에 따라, 휴가를 나가면 꼭 캐논 변주곡과 이루마의 곡을 쳐야지 하는 생각에 악보를 사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악보를 들고 신나게 집으로 들어왔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피아노를 처분했다는 엄마의 말에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캐논과 이루마는 책꽂이 한켠에 고이 모셔둘 수밖에 없었다. 취업을 해 독립을 하고 혼자 오피스텔에 살던 시절 피아노 치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 차마 피아노는 사지 못하고 전자키보드를 하나 구입하였다. 몇 년 이 지나서야 드디어 캐논과 이루마의 곡을 연주해 볼 수 있어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난다. 88개의 건반이 비록 아니었지만, 건반을 터치하는 감은 비록 피아노와 너무 달랐지만, 악보를 보고 연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다.


내가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사실을 와이프도 알고 있었기에, 와이프(그 당시에는 여자친구)에게 서툴지만 나의 취미를 통해 와이프에게 감동을 주는 일도 해보고 싶어, 어느 날 한적한 카페에 가서 미리 얘기도 하지 않고 잠깐 앉아 있어 보라고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더불어 결혼식에서 와이프에게 피아노를 연주해주지 않는 것은 나의 의무를 해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결혼식 때에도 피아노를 치며 와이프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물론 주례자와 짜고 사전에는 절대 귀띔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지금도 혼자 살 때 샀었던 전자키보드를 와이프와 가끔 연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와이프도 피아노를 칠 줄 안다).


피아노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철저히 나의 즐거움을 위해 즐기는 취미이다. 피아노를 침으로 인해 음악적 소양(곡을 분석한다거나, 악보를 읽는다거나 등등)도 남들보다는 조금 더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았고 많은 추억들을 쌓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나는 피아노를 칠 줄 안다라고 얘기는 하지 않지만 가끔씩 피아노를 치며 옛날을 추억하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하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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