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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6. 2020

STRANGER13

고등학교 시절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위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PC 앞에 앉게 되었을 때 다음,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 등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 포털은 대부분 이메일, 카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기에 회원가입이 필수였다. 회원가입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개인 정보와 더불어 ID를 생성해야만 했다. 나의 ID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엄청나게 고민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포털은 ID를 한글로 만들 수가 없다. 현재도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그럴듯한, 멋들어진,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선정해야만 했다. 물론 완성형의 영어단어가 아니라 이름의 이니셜이라던가 이름 끝자라던가 하는 방식의 ID 생성도 가능은 했다. 그렇지만 이 기회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영어단어가 무엇인가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 이니셜로 하자니 너무 노티 나는 것 같았고, 의미 없는 영어 글자의 조합은 금방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ID를 만들어내기 위한 길지 않은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년도 채 살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는 훌륭한 계기가 된 것이다. 이종건이라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종건이라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이종건이라는 사람은 과연 같은 사람일까. 내가 바라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과 실제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니 그 보다도 다른 사람들은 이종건이라는 사람을 의식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직까지는 학창 시절밖에 없었던 나의 삶이지만 학교에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왔을까 한번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며 잘 살아왔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전학을 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반장으로 뽑히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공부를 죽도록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는 게 앞으로의 내 삶에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 중 뭔가 한 가지 나를 관통했었던 느낌은 “어색하다”라는 느낌이었다. 친한 친구들도 있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들이 싫지는 않았지만, 내성적인 내 성격 탓인지 어딘가 어색하다라는 느낌이 늘 있었다. 반장을 하던 시절에도 모든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지도 못했다.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무엇인지 모를 겉도는 느낌이 어색함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솔직한 성격이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게만 느껴지고, 나를 드러내는 거 자체가 내성적인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조용히 지내왔던 시절들이 많았었고, 말수도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없더라도 이곳은 아무런 변화가 없겠지, 이 사람들과 이 공간에 나는 잠시 스쳐가는 사람 중의 한 명일 뿐이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속한 곳에 100% 동화되지 못하고 어색하고 어딘지 모르게 겉도는 듯한 사람. 그게 바로 이종건이라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STRANGER. 낯선 사람, 처음 온 사람. 이방인. 나를 표현하는 영어단어 중 STRANGER라는 말보다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어느 순간, 돌아보고 고민하고 생각하던 중 느끼게 된 생각이었다. 그래. 나는 이방인 같은 사람이구나. 한 발짝은 떨어져서, 조금 먼 곳에서 이 곳에서 지내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너무나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그래. 나의 ID는 앞으로 STRANGER이다.


또 하나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영어단어로만 하자니 중복이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나. 이방인 같은 사람이 또 있었나. 아니면 혹시 전람회의 “이방인”이라는 노래에 감명받아서 ID를 STRANGER로 했나. 해결방법이 존재했다. 영어단어 뒤에 숫자를 붙이면 중복일 확률이 매우 줄어든다. 그런데 7 같은 숫자는 행운의 숫자로 여겨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이다. 식상한 건 나도 싫다. 7 같은 숫자는 나는 붙이고 싶지 않다. 그러면 어떤 숫자를 붙이면 될까. 나는 어떤 숫자를 좋아할까?


짧지 않은 삶을 또다시 돌아봤을 때 나는 유난히 “1”이라는 숫자와 “3”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많았다. 1학년 때 3반이었고, 13번이었고, 31번이었고 3학년 때 1반이었고 31번이었던 것이다. 일단 1이라는 숫자는 좋아 보였다. 첫 번째이고 최고임을 뜻하는 숫자이니까 말이다. 3이라는 숫자는 기독교에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숫자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등 3은 완전함을 뜻하는 숫자로 많이 쓰인다. 나와 인연이 깊은 3이라는 숫자가 교회를 다니고 있는 나에게 더욱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 계기이다.


좋아. 그러면 1과 3을 조합해서 ID뒤에 붙여봐야겠다. 조합할 수 있는 숫자는 13과 31이 있다. 일단 13이라는 숫자에 좋은 느낌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13일의 금요일,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13번째 제자 등을 감안하여 전통적으로 13은 소위 말해 재수 없는 숫자로 인식된다. 근데 말이다. 13이라는 숫자가 재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은 실제 13이 재수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리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리저리 말을 맞추어 13을 더욱더 재수 없게 만들게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오기가 생겨났다. 13이 진짜 재수 없는 숫자인가. 글쎄 아니지 않을까. 아님을 내가 증명해 보이면 되지 않을까? 13이라는 숫자를 내가 써서, 내가 훌륭하게 성장한다면, 사람들도 그런 나를 좋아하게 된다면 13이라는 숫자는 재수 없는 숫자가 아니라 재수 있는 숫자로 인식되지 않을까? 그래 13이 재수 없는 숫자가 아님을 한번 나의 삶으로 증명해보자. 13은 나의 삶에 늘 가까이 있어왔던 숫자이고, 또 앞으로도 그럴 숫자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ID가 STRANGER13이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고, 너무나 애정이 느껴지는 ID이다. 과거에 뭔가 어색하고 친밀하지 못하다라는 의미로 만들긴 했지만, 최근에는 앞으로 나의 삶에 있어서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내가 처한 상황과 공간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바람의 표현이다라는 새로운 의미까지 부여하게 되었다.


가끔씩 후회할 때는 있다. 이메일로 자료를 받기 위해서 이메일 주소를 불러줄 때 짧지 않은 영어단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서 고난이 없는 경우가 어디 있으랴. 나의 고민과 애정이 닮긴 ID를 사람들에게 열심히 불러주면서 앞으로도 ID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 이 정도 고난쯤은 감내하자라는 각오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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