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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6. 2020

좋은 선물


뜻하지 않게 선물을 받을 일이 있다. 생일일 수도 있고, 축하받을 일이 생겼을 수도 있으며, 기념일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선물은 내가 고를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취향에 맞는 선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내가 필요로 하는 선물이 내게 주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혹여나 선물의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지는 순간,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은, 내가 필요로 하는 선물을 고르게 된다.

이런 경우도 있다. 선물의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지기는 하지만 선택의 범위를 내가 설정할 수 없는 경우 말이다. 누군가 정해놓은 3가지 선물의 범위 내에서 선물을 골라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회사에서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경우이다. 설, 추석 혹은 회사 창립기념일시 3~4가지 선물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되, 3~4가지는 일방적으로 주어진다. 이러한 경우 고민이 시작된다. 차라리 선택권이 없었으면 고민은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선택의 권한이 나에게 넘어왔다. 내가 결정해야 한다.

선택의 범위 내에서 내가 좋아라 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게 결론이 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딱히 필요로 하는 것도 없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 이런 경우 쉽게 결론은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라면 그중에서 그나마 가장 내가 좋아하고 가장 필요로 할 것 같은 것을 고르게 된다.

그러나 나는 가끔, 때때로 일탈을 해 본다. 의식적으로 내게 필요할 거 같지 않은 선물을 골라보려고 노력해 본다. 내 의식의 흐름대로라면, 내 본능대로라면 당연히 나에게 필요하고 쓸모 있는 선물을 골라야 하지만, 마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내 의식을 다른 사람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해 보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주어진 선물을 잘 써 보는 경우도 있으나 정말 쓸데없어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허무한 결론일 수는 있으나, 의미 없는 결론은 아니다. 평소의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하지 못한 일을 해 본다는 데서 나에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의식대로라면, 내 본능대로라면 아마 평생 선택해보지 않았을 선물을 나는 선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필요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선물은 누구에게나 의미 없는 선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그 누군가에게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그 누군가에는 의미 있는 선물이었을 수도 있다. 가져보지 못한 물건을 가져봄으로 다른 사람의 취향을 느껴보고 다른 사람이 하는 생각을 나도 잠깐이나마 해 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져보는 것은, 잠깐이나마 전혀 다른 생각을 해 보는 것은, 부담되는 일이고 꺼려지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해봄직할 만한 일이다. 세상에는 내가 가져보지 못한 물건이 너무나도 많다. 또 세상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하던 것만 하기에는, 꼭 필요한 것만 가지기에는 길지 않은 삶이 너무 아깝다. 다른 생각도 한번 해봄으로써 나의 생각의 지평은 넓어진다. 평소에 안 해본 일을 해 봄으로써 좀 더 많은 일을 해 볼 수 있다. 지금 당장은 필요로 하지 않은 일이었을지 모르나, 언젠가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일 수도 있다. 또 죽을 때까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죽을 때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번 해 보는 것이다. 나 스스로 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경우 내가 상황을 통제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내 선택권을 박탈당해보면 안 하던 일을 해 보게 된다. 해 보지 않은 일을 한번 해 봤을 때 내 지평은 넓어지고, 해보지 않은 생각을 해 봤을 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좋은 선물. 나에게 꼭 필요하고, 내가 가지고 싶던 물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 필요로 하지 않아 보였던 것. 내가 가지고 싶다라고 생각을 못해봤었던 것. 그게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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