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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Sep 09. 2018

잡동사니증후군을 아시나요

망하거나 압사당하지 않고 사는 법


지난 일주일간 식재료 8만원, 아이허브에서 건강식품과 기초화장품 6만원, 그리고 댄스대회 참가비용으로 십여 만원을 썼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산 일은 별로 없었지만, 생일주간이라 모든 쇼핑몰에서 축하를 명목으로 쿠폰을 보내주고 있으니 하나쯤 셀프 생일선물을 살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사는 게 고단하거나 물건의 힘을 빌어서라도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할 때, 쇼핑을 한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대세를 거스르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동네방네 자랑할 일은 아니다. 끝 모를 침체에 빠진 출판시장에서도 미니멀리즘은 잘 팔린다. 내가 아는 ‘잡동사니 중독자’들도 정리법이나 미리멀리즘 책은 즐겨 산다. 결국 그조차 수집의 대상이고, 정리법을 쇼핑한다는 자체로 위안 받을 뿐이다. 미니멀리즘 덕에 삶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믿음과 경험을 강권당하는 것이 지겹고, 아직 그대로냐며 묻는 말에는 죄책이 더해진다. 


소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물건애자’인 나는 소유를 지속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역사가 없다. 내 소유물은 계속 늘어나다가 요즘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물건 덕분(?)에 투룸에 혼자 산다. 남들은 방 한 칸에도 잘 사는데, 따져보면 물건만큼의 임대료와 때때로 정리와 청소에 드는 노동까지 추가로 부담하는 셈이다. 그리고 켜켜이 쌓여있는 물건들 틈새의 미세먼지 또한 건강에 좋을 리 만무하다. 만성 알러지성 비염이 환절기에는 더 심해지니 ‘코찔찔이’가 되는 건 예사고 겨울에는 아예 티슈나 손수건 없이 외출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세일하거나 배송비가 아까워 하나 살 걸 두 개 사고, 미끼상품에 낚여 사고, 글을 써가지고는 아무리 아껴도 부자 되기 글렀다는 걸 깨달아 사고, 때때로 여행 다닐 능력이 안 되어 사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사고 또 샀다. 대체로 쇼퍼홀릭은 무언가를 거침없이 사다 신불자가 되거나, 살 만큼 사곤 욕구가 충족돼 더 사지 않게 되는 시기가 온다. 어쨌든 여한이 없어야 멈출 수가 있다. 


그런데 돈이 아까워 망설이다 조금 더 싼 놈으로 타협하고 나면 아쉬움이 남아 다음에 또 사게 된다. 이런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곧 물건에 압사당하겠다 싶었다. 소소한 지름으로 차곡차곡 모은 내 물건들은 결국 잡동사니 군집의 우수리가 되어버렸다. 집을 정리하다 보면 이런 걸 샀지 싶은 녀석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내가 인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물건의 양을 넘어섰다는 증거다. 

여백을 잘 견디지 못해, 채워버리는 사람이 바로 나같은 잡동사니 증후군 되시겠다. 


어쩔 수 없이 쟁여둔 물건들을 중나에, 플리마켓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나의 콜렉션은 지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캐리어에 가득 물건을 싣고 나가 몇 시간 동안 십만 원의 판매고를 올린 적도 있다. 그래서 혹시 모르면 팔지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경각심이 희석되기도 했다. 정작 파는 데 드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시간과 품이 어마어마한 것이 문제였다. 제때 팔리지 않아 골칫거리가 되거나 많이 손해를 봐야만 물건을 줄일 수 있었다(새 것이라도 소장가치 높은 명품이 아니면 감가상각이 크니까). 좋은 기회에 멋진 물건을 샀다가 내가 쓰기에는 과분하다고 생각해 뜯지도 않은 채 쌓아두곤 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물건임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욕망의 덧없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버리거나 되팔아 물건을 비워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도 미련을 다 버리지 못했다. 그것들을 사는 데 들인 여력이 아까웠고, 본전이 간절했다. 줄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카드한도를 채우니 소비할 수가 없었다. 프리랜서의 수입이란 비정기적인 데다 언제 들어올지 알 수가 없다(드물게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소비란 그런 현실을 부정하고자 하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더 그럴싸한 물건으로 비루함을 가리려는 노력은 도리어 자존감을 파먹었다. 무언가를 샀다는 것을 타인이 알아봐주고 ‘가격 대비 탁월한 소비’라고 칭찬해주길 바라는 기대를 버렸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이 곧 나는 아니었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동안 얻은 것들이 있었다. 자잘한 여러 번의 소비 말고 그럭저럭 괜찮은 물건을 사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사놓고 쌓아 두지 않기 위해 현 시점에 필요한 물건에 집중했다. 덜어내는 일에 그래도 조금 너그러워져서 나눠 쓰는 일의 즐거움도 알게 됐다. 

주로 구제쇼핑몰에서 산 옷들이 옷장 밖으로 탈출하기 전의 모습. 이제는 사진으로 남길 수조차 없다. 

여전히 집에는 버거운 양의 물건이 있고 정리가 안 되어 어지럽다. 변한 것이 있다면 전처럼 물건에 휘둘리지는 않을 거라는 약간의 자신감이다.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고 될 수도 없으며 모두가 열 벌의 옷만으로 행복하지는 않다. 현재의 집에서 지금의 소유와 더불어 행복할 수 없다면, 누구와 함께라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과단성 있게 비우는 일보다 조금씩 변화하면서 스스로 욕구를 조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받는 원고료는 십여년 째 그대로고, 좋아하고 응원하는 단체를 위해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내기도 망설여지는 형편이지만 무리하지 않고 나를 잡아먹지 않는 한도에서 오늘의 일들을 해나간다. 그리고 이제는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떠나보내는 기쁨을 조금씩 느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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