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버려야 한다
만원을 넘지 않는 구제옷과 집에서 가져온 헌 그릇과 냄비, 중고매장에서 산 미니 냉장고와 삼촌에게 받은 안 쓰는 컴퓨터가 서울살이 두해째, 독립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때 염리동 옥탑이 보증금 500에 월세 10만원. (쓸 돈이 없어서라도) 검소함의 화신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되짚어보면 그 시작에는 '홈쇼핑'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원하던 대학에 갔지만 '인서울'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성적은 충분했지만 딸을 내돌리면 안 된다는 가부장의 확고한 의지와 사립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댈 여유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독교대학은 내게 너무나 갇힌 세계였다. 더 넓은 세상을 배우기 위해 휴학과 서울행을 감행했고 여러 헛발질을 거쳐 졸업 후 다시 서울에 다시 자리를 잡게 됐다.
서울살이는 고달팠지만 생판 남에게 얹혀살던 더부살이에 비하면 혼자 소꿉놀이하는 양 새롭고 즐거웠다. 신촌의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끼니를 해결했고, 생선을 팔던 주인집 내외가 남은 조기를 주면 매운탕을 끓여 5첩 반상을 해먹곤 했다. 대안교육 단체에서 받던 월급이 120만원이었지만 먹고살 순 있었다. 첫 직장에서는 2백만원이 안 되는 초봉을 받았고 그 돈으로 춤도 추면서 나름 알차게 살았다. 신입치고 썩 괜찮은 성취를 거두던 2년차에 거래처와의 회식자리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고, 사과를 받으러 간 내게 가해자는 머리를 툭툭 치면서 모멸감을 주었다. 나는 후임자까지 구해다놓고 회사를 관둔 후 인권위에 이를 제소했고 몇 달간 지난한 싸움을 거쳐 사과와 약간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자의반 타의반 프리랜서 생활이 시작됐다. 첫 회사와 단절하면서 인맥이 거의 끊겼으므로 일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기왕 회사를 관뒀으니, 하고싶었던 일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독립영화 일과 아마추어 극단 활동도 병행했다. 마감 몇 개를 해내면 약간의 고료를 받아 간신히 생활을 이어갈 순 있었다. 혼자 있을 때 활기찬 사람의 말소리가 그리워 종종 홈쇼핑을 틀어놓곤 했는데 어느날 손을 좀 떨면서 내복세트를 덜컥 질렀고, 정상가족에게 필요한 만큼의 생활재도 한 번씩 샀다. 그게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내 방식이었던 듯하다.
카드소비가 늘어나니 한도가 점점 높아졌고, 리볼빙 서비스를 신청해 잔액을 다음달로 넘기는 생활이 반복됐다. '기왕 망하는 거 제대로'의 심정으로 단편영화 제작비를 카드로 쓰고 나니 신용불량자가 코앞이었다. 진지하게 개인파산을 검토하던 때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수중에 현금이 없고 카드빚만 가득이라 전 같으면 거절했을, 자존감과 타협하는 일도 하게 되었고 겨우 돈을 받아 잔고가 생기면 그동안 '못 샀던' 아이템을 하나씩 질렀다. 금세 돈이 떨어져 또 빚을 내게 되고 다시 그 빚을 갚느라 허덕이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버렸다.
집에는 뜯지도 않은 택배가 몇 개씩 있었고, 물건이 쌓이다 못해 넘쳐흘렀다. 바닥까지 내려온 옷가지며 종이류를 밟고 넘어져 다치기도 했다. 정리 못 하고 수집벽이 있고 물건을 애호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증상은 다르겠으나 내 마음상태는 대략 이랬다.
- 아니 힘들게 돈 버는데 이것도 못 사(는 건 너무 슬퍼ㅠ.ㅠ) ?
- 내 공간이니까 내 맘대로 할래
- 결벽증이나 정리강박도 병리적이기는 매한가지 아님?!(말이나 못하면...)
- 물건을 수납하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보자(무너져도 다시 쌓으면 그만)
- 팔면 된다규(그걸 다 어느 세월에?)
집에만 들어오면 기운이 빠졌고 산더미 같은 짐들에 대항할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든 무기력이 덮쳐 마감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은 남는데 돈과 체력이 없으니 연애나 만남도 하지 않게 됐다. 집이 번잡하니 전처럼 친구를 불러 밥을 해먹이는 일도 그만뒀다. 이상하게도 친한 지인 중에 미니멀리스트가 많아 잔소리를 들을까 신경쓰였고 논쟁할 만한 거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바깥에서 만나거나 아니면 조금씩 뜸해졌다.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난 후 정리전문가가 되고 싶어하던 친한 후배와 함께 집을 뒤집어 엎고 두 박스 정도를 내다버린 적도 있는데, 내 기준이나 의지로 물건을 추려서 버린 게 아니라서 '그건 버리지 말걸...'하고 아쉬운 순간이 생기니 한동안 또 물건을 버리지 않게 됐다.
현재는 뭔가를 사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비워내는 정도로만 하고 있는데, 일단 갖고 있는 물건의 양이 너무 많고 수납이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 여전히 너무 쉽게 헐크러지고 마감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그 상태를 방치하는 기간이 길어지곤 한다. 물건을 쓰고 나면 제자리에 놓는 일 자체가 안 되니, 집상태가 점차 나아지지 않는 것도 물론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지켜야 할 원칙을 정했다.
- 싼 거 여러 개 사기 그만두고, 베이직한 아이템이나 소재가 좋아 오래 입을 옷 사기
- 읽고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본 후에 여러 번 읽을 책만 구입하기(이게 제일 어렵다)
- 2년간 손이 가지 않은 아이템은 버리거나 기증한다
- 냉장고에 재료의 목록(혹은 영수증)을 붙여놓고 상해서 버리는 식재를 없앤다(이건 꾸준히 실천)
- 자료집이나 기고한 잡지 등은 필요한 부분만 스크랩해 보관하거나 디지털화 하기
- 싱크대에 쌓인 그릇은 되도록 그날을 넘기지 않고 설거지 후 정리(많이 좋아진 항목)
여전히 남들이 보면 과한 물건에 정리되지 않은 집이라고 해도, 최소한 내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더 이상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잘 해낸 후에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 외에, 맛있는 걸 사먹는다거나 하는 작은 보상을 주기도 한다. 일단은 정리된 상태에 대한 미감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부터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매일 행주를 삶고, 물걸레질을 하는 삶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세상 가장 더럽고 게으른 사람이고 개선의 여지 따윈 없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집을 정리한 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으니 작은 성공을 거듭함으로써 점차적으로 더 나은 환경에 거주하게끔 습관을 고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세상에는
미니멀리스트로 태어나 계속 미니멀한 태도로 사는 사람
맥시멀리즘의 끝까지 갔다가 미니멀리스트로 갱생한 사람
이 있고 맥시멀한 삶에 진력이 나서 조금씩 바꿔나가는 나같은 사람도 존재한다.
남보다 늦되다고 해내지 못할거란 마음가짐은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를 믿고 조금씩, 그 길의 끝에 어떤 삶이 있을지는 모르나 적어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