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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28. 2022

핀란드 무상교육 흔들기

핀란드 재무부가 공공재정 개선을 핑계로 무상교육을 흔드려 한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핀란드 대학 등록금 도입? 아직은 제안일 뿐이다.


12월 8일 핀란드 재무부가 공공재정을 개선을 위한 보고서에서 대학의 등록금 부과를 제안했다. 보고서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등록금을 부과하고, 이를 대학 재정의 일부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등록금 부과가 정부의 대학 지원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예정으로, 등록금으로 인한 추가적인 소득의 사용은 대학 자율에 맞기는 것으로 제안했다. 또한 등록금 부가가 학생들의 공부 기간을 단축시킬 것이라 예상했다. 등록금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은 학자금 대출로 충당한 뒤 대학 졸업 후 충분한 소득이 생겼을 때 대출을 상환하는 식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최근 핀란드는 청소년의 OECD 내 교육 수준 하락에 대한 회복 요구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 재무부는 향후 8년 동안 총 90억 유로의 긴축재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교육비 추가 지출에 대한 가능성을 현저히 낮췄다. 그 때문일까? 일부 대학 총장들은 등록금 제안을 반겼다. 하지만 누구나 공부할 수 있다는 핀란드 무상 교육의 근간은 차마 흔들 수 없었는지 두 번째 학위나 고용주에게 등록금을 부여하는 방식을 논했다. 등록금으로 인한 대학 수준 차별화에 대한 우려도 표명하며 대학 간 연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핀란드는 현재 자국민, 유럽연합과 유럽 경제지역 출신자, 핀란드 복지혜택 수혜자(일정기간 이상 세금 납부자)에 한해 대학 등록금이 무료다. 다시 말해 유럽 외 지역에서 오는 외국인들에게 등록금을 부과한다. 아직 논의 단계긴 하지만, 무상교육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핀란드가 자국민에게 대학 등록금 부과를 논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 무상교육 흔들기... 외국인 먼저


1. 균열의 시작


자국민에 대한 대학 등록금 부과에 대한 기사를 봤을 때 15,6년 전의 핀란드 대학생들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2006년 8월에 핀란드로 유학을 왔다. 당시 non-EU 학생에게 대학 등록금을 받자는 결론이 났다가 바로 취소가 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그때 유학생들은 설문조사에서 춥고 어두운 날씨에다가 물가까지 비싼 핀란드에 등록금까지 내면서 유학을 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조사 결과가 등록금을 받겠다는 결정을 무산시키는데 한몫했다고 들었다. 안타깝게도 2006년 즈음의 핀란드의 외국인 대상 등록금 도입 시도는 들은 이야기뿐이라 관련 기사를 찾으려 했으나, 능력 부족으로 기사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


당시 나는 이전의 토론에 대해 전해 들었을 뿐, 당장 학비를 내지 않아서 등록금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2007년에도 외국인에게 학비를 부과하자는 논의가 있었나 보다. 그때 핀란드 친구를 따라 조촐한 예술대 (현 알토대) 학생 데모에 참석했다. 흥미롭게도 데모의 주체는 유학생이 아닌 핀란드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반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유학생에게 학비를 받다 보면 어느 순간 핀란드 학생들도 학비를 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유학생 존재 자체가 핀란드 학생들에게 좋은 공부다. 굳이 유학을 가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오는 유학생들 덕에 다양한 문화와 사고를 접할 수 있다. 유학생이 없다면 핀란드 학생들을 더 많이 외국으로 보내야 하고 그에 따른 비용이 더 크다. 유학생에게 쓰이는 교육비가 오히려 저렴한 세계화인 셈이다. 

유학생이 졸업 후 핀란드에서 직업을 구할 경우 매우 저렴한 노동력이 된다. 핀란드인은 엄마 뱃속부터 시작해서 20년 넘는 기간 동안 투자를 해야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반면, 유학생이 졸업 후 바로 취업할 경우 석사 2년의 교육비를 투자해서(당시 대부분이 석사 유학생들이었다.) 바로 세금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

공부를 마치고 바로 돌아가는 경우도 먹튀가 아니다. 핀란드와 그들 나라의 가교 역할을 하며 사업을 하거나 핀란드와 연계된 일을 할 테니 그로 인한 이익을 무시할 수 없다. 

돌아가서 핀란드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경우도 핀란드의 무상교육을 받았다면 핀란드라는 나라에 긍정적인 마음을 간직하게 될 테니 그 무형의 자산이 간접적으로 핀란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핀란드인들이 같은 마음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엄청나게 넓은 시야를 가진 핀란드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핀란드 교육시스템을 나도 경험한다는 게 좋았다. 



2. 물꼬 트기, 외국인 대상 등록금 실험


데모의 덕택이었는지 한동안 학비에 대한 논의는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무관심 탓이었다. 2009년에 개정된 대학 법에 근거해 당시 정부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의 실험기간을 설정했다.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전공을 공부하는 non-EU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은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2011년 가을에서야 알토대학교와 라펜란타공과대학교를 주축으로 등록금 실험이 시작되었다. 알토대학교 학생회 자료에 의하면 알토대학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등록금 실험을 하였다. 등록금 실험은 학비 무료에 년간 8000 유로의 생활비 지급, 학비 무료, 학비 50%(연간 학비 4000유로), 지원이 없는(연간 학비 8000유로) 그룹으로 나누어져 진행되었다. 실험은 학비를 내야 하는 합격자가 입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출처: 알토대학교 학생회 자료


반면, 교육문화부의 등록금 실험에 대한 보고서는 실험이 초기 기대치를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핀란드 고등교육의 국제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지었다. 실험에 참여한 대부분의 교육기관은 등록금 부과에 흥미를 잃고 실험기간이 끝나기 전에 자체적으로 등록금 실험을 종료했다. 관련 학생단체는 등록금이 우수한 학생들 유치는 물론 재정 향상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이미 등록금을 부과하던 스웨덴과 덴마크의 경우를 예로 들며 반대했다.



3. 끈질긴 보수의 승리


대중은 등록금 실험을 실패로 받아들였으나, 보고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희망을 담았던 보수는 끈질겼다. 2014년 일부 고등교육기관과 핀란드 기업연합과 산업연합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시 정부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전히 non-EU 학생을 대상으로 한 등록금 부과를 2016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같은 해 말 계획은 무산되는 듯했다.


등록금을 도입하고 싶어 하던 그들은 끈질겼다. 2015년 12월, 결국 핀란드 의회가 외국어로 제공되는 학위 과정에 대해 non-EU 학생에게 2017년 8월부터 연간 최소 1500유로의 등록금을 부과하기로 결의했다. 핀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등록금 부과로 2017년 지원자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곧바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영어로 진행되는 학위에 대한 non-EU 학생에게 등록금 부과는 상당한 사회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10여 년의 끈질긴 시도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잊힌 문제가 된듯하다. 



4. Non-EU 학생에 대한 등록금 도입 이후


Non-EU 학생에 대한 등록금이 도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토대학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학위과정을 이끄는 지인에게 실상을 물은 적이 있다. 각각의 학위과정마다 현실은 다르겠지만, 등록금을 내야 하는 합격자가 많지 않아 대체로 장학금 대상자이며 등록금을 내야 할 경우 입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본인이 재정 담당자가 아니어서 단언할 수 없지만, 사실상 등록금으로 발생하는 이익이 미미할 것이라 했다. 오히려 등록금으로 인한 추가적인 행정절차까지 고려하면 손해로 도입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견해였다. 현장의 비판적인 견해는 존재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핀란드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인 데다가 그 마저도 예외인 경우를 제외하면 굉장한 소수여서일까? 등록금 부과를 무효화하자는 논의는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내 관심 밖의 일이라 그럴 것이고 나와 같은 사람이 다수라 그럴 수도 있다.  


2007년 본인의 일이 아닌데도 데모를 했던 핀란드 대학생들은 언제가 슬금슬금 본인은 아니더라도 핀란드인도 등록금을 내야 할 거라며 염려했다. 아직은 제안이기는 하지만 그 염려가 현실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 몹시 불쾌하다. 자국민에게 등록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이 예전에 외국인 한정이라며 등록금을 주장하던 핀란드 정치권의 모습과 겹쳐 보여 내 아이들은 등록금을 내야 하는 세대가 될까 걱정스럽다. 그렇지만 난 핀란드 대중의 넓은 시야를 믿는다. 코로나 이전 핀란드의 행복 인터뷰에서 핀란드인들은 기꺼이 세금을 내는 이유로 무상 교육과 합리적인 복지 제공을 꼽았다. 부모의 배경과 상관없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무상교육이 핀란드 경쟁력의 근간이기에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층을 나누고 자신만 잘 사려는 보수층들의 정치 놀이에 무상 교육이 희생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


핀란드의 등록금 기사 덕에 대학 등록금을 받았다가 학생들과 시민들의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던 독일, 외국인에게 엄청난 등록금을 받으며 재정을 충당했지만 힘들었던지 결국 자국민에게도 등록금을 받는 영국, 외국인에게만 등록금을 받고 있지만 별 성과가 없어 보이는 스웨덴과 덴마크 등이 떠올랐다. 17여 년 전 영국에 살 때 외국인에게서 얻는 재정적 이익 때문에 일정 수의 외국인 입학생을 받느라 정작 실력 있는 내국인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더불어 외국인 학생의 수준 때문에 교육의 질이 저하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핀란드 학생단체의 외국인에 대한 등록금 부과 반대 이유 중 돈을 낸 사람과 내지 않는 사람과의 차별에 대한 염려가 있었는데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등록금 관련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떠올리니, 이래저래 만났던 지인들도 함께 떠올랐다. 2006년 등록금을 내야 할 상황에 처했던 간호사면서 대학생이었던 독일 친구는 굉장히 분노했었다. 최근 안부를 물었던 영국에 사는 지인은 엄청난 대학 학비 탓에 뚜렷한 소신 없이 친구들이 대학에 가니까 자기도 대학에 갈 거라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말에 만난 덴마크 대학에서 연구하는 지인은 외국인에게 드는 교육비용을 못마땅히 여겨 영어로 진행되는 학위과정과 수업을 자꾸 줄이며 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듯한 덴마크의 현실을 비판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스웨덴 공부하셨던 친구의 부모님도 떠올랐다. 그분들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인과 차별 없이 복지혜택을 받아 공부를 하셨다. 당시 한국이 굉장히 가난했던지라 한국의 외교관보다 스웨덴의 학생 보조금을 받던 본인들이 풍족하게 살았다고 하셨다. 지금 스웨덴에서 등록금 내며 공부하는 학생이 들으면 놀랄 이야기가 아닐까?




예전 자료를 찾는데 시간이 걸려 글 쓰는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한국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많이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은 얼룩소에 먼저 공개한 뒤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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