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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21. 2022

핀란드, 배고픈 거리두기 줄 서기

버스를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무료 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경 이미지: 2022년 12월 9일 오전 9시 20분경에 헬싱키 트램에서 찍은 사진



지난 금요일 오전 9시 20분경에 트램을 타고 무료 음식을 나눠주는 곳 앞을 지나갔다. 거리두기를 준수한 듯 띄엄띄엄 사람들이 꽤 길게 늘어서있었다. 300m는 족히 돼 보였다. 줄의 앞쪽으로 갈수록 바퀴 달린 장바구니들이 사람을 대신하기도 했다. 줄 서있는 사람들은 연령층이 높아 보였고, 생각보다 다양한 인종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누군가 알려줬을까? 핀란드에서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곳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있는데, 그 서비스를 통해 알음알음 널리 퍼진 걸까?


줄의 시작점에는 Hurstin Valinta(훌쓰띤 바린따)가 있었다. 1960년대부터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 음식을 나눠주던 곳으로 무료 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핀란드어로 정보를 찾기 위해 그(핀란드인)에게 무료 음식 관련 키워드(Ruoka-apu, ruokajono, Hursti)를 물었을 때도 빠지지 않았다. Hurstin Valinta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무료로 나눠준다. 어쩌다 그 시간대에 트램을 타고 지나가면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늘 낯설다. 40분 전인데도 꽤 긴 줄이 늘어서 있다니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핀란드에서 무슨 일일까? 


최근 기사에 따르면 무료 음식을 받기 위한 줄이 길어지고 있다. 이자, 전기세, 음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중위 소득층이 저소득층으로 밀려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반대로 음식을 기부하던 상점들이 줄고 있다. 버려지는 음식에 대한 비판으로 마감 세일이나 유통기한이 가까운 남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회사까지 생긴 결과이다. 사회의 긍정적인 노력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매몰찬 현실이 되었다. 다행히 커뮤니티 차원에서 또는 개인들의 도움이 늘고 있다고 한다. 가끔 동네 슈퍼 계산대를 지나면 물품 기부를 받는 쇼핑카트가 눈에 띄는데, 이런 노력들을 일컫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줄에 정말 음식이 필요한 사람만 있을까? 다수는 아니겠지만, 외로워서 나온 이들도 있을 테고, 공짜 음식에 대한 욕심이 있는 이도 한 둘은 있을 것이다. 가장 꺼려지는 경우는 음식에 쓰는 돈을 절약해 술과 담배를 조금이라도 더 사기 위해 나온 중독자들이다. 이런 이들 때문에 공짜 음식을 나눠줘선 안된다기보다는 어찌 되었든 나온 이들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의 도움이 닿지 않는 사각지역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런 단체들이 없으면 안 되겠지만, 정부의 노력으로 그 필요성이 조금 줄었으면 한다. 무료 음식을 나눠주는 행사가 늘고 있는 걸 체감하고 있는데, 그 수가 주는 걸 체감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한국은 어떨까? 물가인상은 세계적인 추세니까 복지의 사각지대가 핀란드보다 많을 테니 더 심각한 상황이지 않을까? 가끔 배고픈 이들에게 손을 내민 가게에 돈쭐을 내주는 한국의 기사를 접한다. 사람들의 온정은 좋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핀란드도 풍요로운 나라다. 풍요로운 나라에서 배곯는 이들이 있다는 게 웬 말인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올 겨울이 너무 춥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얼룩소에 먼저 공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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