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오지랖은 사양,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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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월요일 (12월 28일),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장도 보려고 집을 나섰다. 트램 정류장에 펼쳐진 풍경에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여성 노인이 눈으로 덮인 바닥에 철퍼덕 두발을 다 뻗고 주저앉아 있었다. 근처엔 두 명의 여인이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바닥에 있는 노인을 불만 어린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은 데다 눈이 또 내려 길이 좀 미끄러웠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 여기저기 아주 작은 돌들이 뿌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운이 없으면 미끄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할까 싶어 노인을 주시하던 여인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분 혹시 미끄러지셨나요?'
'아니요. 술에 취했어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괜찮아요. 경찰을 불러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상황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노인을 주시하던 여인과의 대화 덕분에 발걸음 가볍게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 밖에 오래 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종종거리며 볼일을 보느라 바닥에 주저앉은 노인은 쉽게 잊었다. 그런데 그날 밤 문득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노인에게서 거리를 둔 채 노인을 쳐다보던 두 여인이 눈빛이 떠올랐다. 두 여인 모두 술에 취한 노인을 매우 못마땅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노인의 쇼핑백에서 나온 식료품 몇 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지만, 쇼핑백을 정리해주거나 노인을 일으켜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거리를 둔 채 노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덕분에 지난 11월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을 때가 떠올랐다. 내리막길에서 핸들의 균형을 잃으면서 자전거에서 튀어나가듯이 넘어졌는데, 인중을 바닥에 부딪혀 피가 났다. 상황이 심각해 보였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물과 휴지를 건네며 나의 안부를 걱정해 주었다. 나 때문에 멈춰 섰던 사람이 대여섯 명은 족히 되었던 것 같다. 그중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유독 잊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늦게 나타난 넘어진 곳 앞에 있는 커피숍의 직원은 상처를 닦으라며 물을 무친 부직포 천과 카페에 있던 구급상자에서 꺼내온 듯한 상처용 밴드 꾸러미를 내밀었다. 피가 나는 곳이 얼굴이라 상처의 위치를 모르겠길래 카페 직원에게 밴드를 붙여달라고 했다. 집이 어딘지를 묻고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집에 갈 거라는 내게 자전거를 타지 말고 걸어가라고 당부하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 아주머니와 다른 아주머니 한분은 내가 걱정된다며 한동안 나와 함께 걸었다.
한국에 띄엄띄엄 줄 서 있는 버스정류장 사진으로 유명한 핀란드는 코로나 이전부터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는 문화 덕에 거리 두기가 생활화된 곳이다. 덕분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도 실외에선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고도, 다른 유럽보다 조용히 코로나를 넘겼다. 버스정류장에서 시간표를 확인하려고 다가서면 근처에 있던 사람이 한두 발짝 물러선다. 나름의 배려이지만, 병균취급하는 것 같아 '해치지 않아요!'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망설임 없이 다가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돕고 있다 싶으면 제갈길을 간다.
거리 두기를 보면 타인에게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달리 보면 타인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다. 영어에서 인사의 일부로 자주 쓰이는 'How are you?'가 핀란드어로는 'Mitä kuuluu?(미따 꾸우루우?)'이지만 자주 쓰이진 않는다. 상대방의 근황이 정말 궁금해서 들을 준비가 되지 않는 한 'Mitä kuuluu?'는 쓰지 않는다. 한국의 안부인사인 척하는 얼평, 몸평, 그리고 근황에 대한 무례한 언급 등은 마주할 일이 없다. 그래서 핀란드인들은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러 해 살아보니 핀란드인들도 오지랖이 굉장하다. 그저 꽁꽁 숨겨뒀다가 필요할 때만 꺼낸다.
트램에서 빈자리가 많음에도 아들이 탄 유모차 옆에 앉아있는 내게 자리 양보를 강요하던 할머니와 부딪히기 싫어 자리를 양보했더니, 어디선가 나타나서 나를 대변해 싸워주던 핀란드 젊은 청년이 있었다. 길 가다 어처구니없이 넘어진 나를 일으켜주고 얼굴 보고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사라진 남자분, 지하철에서 괜히 시비 거는 사람을 대신해 싸워주던 사람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을 때도 근심스러운 얼굴로 주저 없이 도우려 했던 핀란드 사람들의 오지랖 덕택에 나는 이곳에서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에 주저앉은 취객이 못마땅하지만 차마 무시할 수 없어 거리를 두고 지켜보던 두 여자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었다.
취객의 난동은 싫지만 취객이 추운 날 다칠까 염려돼 경찰을 부르고 지켜봐 주던 사람들은 그 상황이 몹시 맘에 안 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경찰이 오기까지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굳이 나까지 그 불편함에 동참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도울 일이 없다던 두 명은 취객의 태도엔 퉁명했지만 마음 따뜻한 핀란드 오지라퍼들이었다. 사고를 당한 나에겐 따스한 온정의 도움을, 엄연히 잘못된 행동으로 위험에 처할 것 같은 사람에겐 냉정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 덕에 오지랖 피울 때와 감출 때를 생각해 본다.
이 글은 얼룩소에 먼저 공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