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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an 11. 2023

장관이 육아휴직을 한다면...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핀란드 국방부장관이 육아휴직을 했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Children are only small for a short time, and I want to have memories from more than just photos.
국방부장관의 트윗에서


핀란드 국방부장관, Antti Kaikkonen(안띠 까읶꼬넨)이 2023년 1월과 2월에 자리를 잠시 비운다. 2022년 7월에 태어난 둘째를 돌보기 위한 육아휴직이다. 그의 아내 Jannika Kaikkonen(얀니까 까읶꼬넨)은 바이엘의 핀란드 사회관계 담당 이사로 선출되어 새해부터 해당업무를 처리한다. 아직 어린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부인의 직장 복귀를 위해 그가 자연스레 육아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핀란드의 육아휴직은 계속 변하고 있지만, 상당기간 동안 약 10개월 정도의 육아휴직이 보장되었던 탓에 10개월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 이 마저도 아이가 너무 어리다고 여겨 빠르면 돌이 지난 후부터 보내거나, 두 돌까지 어린이집 보내기를 미루는 가정이 늘고 있다.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기간이 10개월을 넘기는 가정은 일정기간 아빠가 주 양육자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이직으로 조금 일찍 직장에 복귀하는 엄마대신 아빠가 아기를 돌보는 상황에 처한 핀란드 국방부장관의 육아휴직을 핀란드 사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어느 사회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국방부장관의 육아휴직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육아휴직 관련 비판은 핀란드 사회 통념상 잘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목소리를 높이기 어렵다. 이 와중에 용감하게 목소릴 높인 정치인이 있었다. 중도 우파, National Coalition Party(NCP, 국민연합당) 대표, Petteri Orpo(뻳떼리 올뽀)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왜 하필 지금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나토가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국방부장관이 자리를 비우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반응이었다.


국방부장관의 육아휴직을 당연시 받아들인 핀란드 대중에게 NCP 대표의 국방부장관 육아휴직 비판은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소셜미디에서 NCP 대표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녹색당 대표, Maria Ohisalo(마리아 오히쌀오)는 남자의 육아참여를 독려하는 새로운 육아휴직제도를 확정 지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NCP 대표가 국방부장관의 육아휴직에 놀라냐며, 국방부장관의 육아휴직을 응원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NCP 대표는 이틀 만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방부장관의 육아휴직에 대한 비판을 철회한다는 글을 올렸다. 글은 이번 소동이 정치인에게 좋은 학습의 기회였다며 가까운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중요성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It's never too late to learn even for a politician,
NCP 대표의 페이스북 게시글 중에서


핀란드 국방부장관의 육아휴직 소식은 가디언과 유로뉴스에서도 다뤘으며, 한국에도 전해졌다.




만약 한국에서....


연령 때문이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한국에서 장관이 육아휴직을 한다면 한국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국방부장관의 육아휴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비판한 정치인을 오히려 비난하는 핀란드를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한국은 NCP 대표처럼 가정보다는 나라가 먼저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룰 것 같다.


핀란드 국방부장관은 나토 가입 관련 일은 처리할 수 있는 데까진 미리 처리해 놨으며, 헝가리와 터키의 결정만 남은 상태에서 자신의 할 일이 더 이상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사엔 나오진 않았지만, 핀란드의 시스템이 자신의 부재를 잘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그의 육아휴직 결정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뭘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도 할까? 이래서 저래서 개인이 무시된다면, 개인의 삶이 지속될 수 있을까? 개인의 삶이 지속되지 않는 사회나 국가가 지속가능할까? 엄마가 엄마로 아빠가 아빠로 개인이 개인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종종 미뤄야 한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까?


멀리서 지켜보는 한국은 자꾸 국가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국민을 윽박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제가 군주제라 착각하는 이들이 정치권에 판을 치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를 따르는 무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비록 정치적으로 옳지 못한 발언을 했지만, 본인의 실수를 인정한 핀란드의 NCP 대표와 같은 정치인은 한국에서 볼 수 있을까? 여러 생각과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 글은 얼룩소에 먼저 공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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