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열 줄 소설 -30-

희미한 기억

by 이사금

30. 희미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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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이지 기분 나쁠 정도로 으슬으슬한 안개라며 시영은 걸어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시영은 정처 없이 안개 속을 걸어 다니다가 자신이 왜 여기로 나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졌고, 문득 자신의 기억이 희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얼마나 밖에 있었는지,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고 머리가 부딪친 것처럼 띵한 게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뭔가 할 게 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 답답한 안개 속의 길을 걸어 다니고 있으면 생각하던 게 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밤이 되려면 멀었는데 낮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기분 나쁜 날씨라며 정말 괜히 나왔다고, 분명 평소에 다니던 흔한 산길인데도 기분 나쁠 정도로 적막해서 마치 낯선 곳에 온 것 같다며 시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 망할, 폰을 두고 나왔나?


이윽고 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시영은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오늘따라 이상하게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시영의 머리 위인 절벽 끝에는 ‘추락위험’이라고 강렬한 글씨가 새겨진 표지판이 달려 있었다.


곧이어 추락사한 자신의 시신 옆을 지나가던 시영의 혼령은 자신이 왜 여기에 나왔는지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 혼미함에 다시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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