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스트라스부르의 6월은 긴 겨울을 쉽게 잊게 만들 만큼 부드럽다. 뺨을 스치는 바람에도 꽃향기가 섞이고, 사람들의 말소리마저 음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헌데, 올 해는 많이 다르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고 시청으로 진입하는 터널 위를 천천히 지나간다. 라디오에선 지난 독일 총선과 루마니아 대선 이야기로 시끄럽다. 극우 정당의 약진, 이민자 문제, 불안한 청년들. 유럽은 계속해서 점점 닫히는 문을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제 한국의 대선이 끝났다. 투표 결과 통계를 보니 마음이 아렸다. 남녀, 세대별로 나뉜 마음들, 붉은색 푸른색 띠를 가만히 보며, 지난 현대사를 그려보니 60-70대와 20-30대를 관통하는 단어 하나가 불연듯 떠올랐다.
콩고물
한참을 그 단어를 곱씹었다. 누군가의 성공 옆에서, 흘러내리는 잔여물이라도 받으려는 마음. 직접 이루지 못했지만, 그 잔여물은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믿는 태도. 그렇게 콩고물을 기다리는 태도가 한마음이 아니었을까.
흰 눈이 그득 머리 위에 내린 어떤 이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반짝반짝 곱상한 어떤 이는 공정이라는 단어로... 우리는 피해자였다고. 기회를 빼앗겼다고... 이구동성 그들의 목소리가 구릉구릉 심상치 않은 어두운 하늘 소리 처럼 들렸다.
유럽의 젊은 극우 지지자들과는 또 다르다. 이곳의 분노는 먹고 살기와 정체성에서 비롯되지만, 한국의 그들에겐 억울함이 정체성처럼 박혀 있는 듯하다.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청년, 서울과 지방. 무언가와 맞서 싸우는 것 같지만, 실은 외부의 확실한 질서 속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커 보인다.
시청 앞의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문득 생각한다. 그들의 말 속엔 맥이 없고, 허기만 남아보인다. 마치 끝없이 분비되는 생동의 호르몬과 무력감의 호르몬의 싸움 같은 것. 그 전쟁의 피로감을 타인 향한 증오로 풀어내는 모습을 그리고 나니, 추적추적 미어지는 잿 빛 봄 날 하늘이 내 마음 같아졌다.
노인도, 청년도 각자 호르몬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 내 안의 평화를 찾아 나설 수 있기를... 외부의 질서에 안기는 대신, 내 마음 안의 평화를 길어 올리기를... 역사의 식탁에서 손님처럼 앉기보다는, 들뜬 마음으로 주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볼 수 있기를...
한 낮의 일(Ill) 강을 지날 때, 강물 위로 수 많은 동그라미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선선한 바람에 나도 모르게 웃는다. 따뜻한 볕을 기다리는 마음이 애틋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