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야사 11]하루아침에 정리해고

사원이야기

by 일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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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사태가 터졌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사실 경제 신문도 제대로 볼 줄 몰랐다. 당연히 어떤 징조도 몰랐다.

그저 언젠가부터 뉴스에서 부실저축은행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왔다.

어디 지방의 은행이름에서 시작하여 꽤 유명하고 규모가 있었던 과일이름의 은행까지 닿았다.

야심차게 이력서를 지원했다가 떨어졌던 경험이 있던 터라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는 찰나, 결국 올 일이 왔다.

내가 맡고 있는 가장 크고 안정적인 실적을 내주는 거래처가 업계 1위였던 저축은행이었던 것이다.

그 저축은행이 파산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업계 1위라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했다. 그러다가 이름이 슬슬 거론되자 지나가는 바람일 거라 했다. 나중에는 설마 파산까지는 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 끝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왔다.

거대한 공룡이 쓰러지면 주변 공룡들은 포식을 하지만 그 공룡과 함께 붙어 있던 미생물들은 모두 사라진다. 하필 우리는 모두 그 미생물들이었다. 대표이사가 구속되는 상황이 되었고, 모든 직원들이 패닉에 빠졌다. 본사 직원들도 당장 어떤 상황인지, 어떤 대책도 없었다. 그 와중에 영업을 계속할 수 있을리 없었다.

콜센터에는 걸려오는 전화들로 오히려 북새통이었지만, 며칠뒤 날아온 공문과 함께 전화기 스위치로 내려갔다. 사업장 폐쇄였다. 200여명의 직원들이 모두 실업자가 된 것이었다.

불행히도 다행히도 나는 미생물 중에서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나는 관리직인 '잡매니저'였기 때문에 사업장을 잘 정리하고 다른 거래처를 배속 받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입사 6개월만에 정리해고 업무를 하게 되었다.

도급직이었던 직원들을 모두 퇴사시켜야 했다. 아침 기지개를 펴듯 신나게 채용을 했던 곳에 밤이 찾아왔고 나는 각 방을 다니며 사람들을 내보내며 불을 꺼야만 했다. 어두운 그림자들은 하나 둘씩 호롱불을 들고 각자의 곳으로 떠났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평가결과에 따른 해고였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나쁜 평가를 스스로 인정하기는 누구나 쉽지 않을테니. 하지만, 사업장이 사라지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슬프게도 따져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초점없는 직원들을 정리했다.


이 일로 인해서 나는 부서내 불운의 아이콘이 되었고, 다들 본인이 아닌 것을 내심 안도 했다. 사업장 정리 작업을 하느라 야근과 격무에 시달렸자만 실적이 없는 나에게 동정의 손길들이 생겼다. 사람의 마음은 따뜻한 것일까, 간사한 것일까.조직 내에서 나는 오히려 인정을 받고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이윽고 새로운 거래처를 받았다.

국내 굴지의 카드회사. 백화점, 슈퍼 등 유통과 금융 등 여러 계열사를 두고 있는 대기업이었다. 이번에는 쉽게 망하지 않을 회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콜센터도 아니었고, 도급도 아니었다. 경쟁과 생존의 상징인 '파견'이었다.

내가 채용해야 하는 직무는 다양했다. 사무지원, 데스크, 서류심사, 채권회수, 운전기사 등 정해져있지 않았고 거래처에서 요구하는 직무를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채용하면 되었다. 또한, 내가 사람을 많이 채용을 못하더라도 고객사에 큰 피해가 없었다. 다른 파견사 잡매니저들이 사람을 뽑아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여긴 여러개의 파견사가 경쟁을 해서 채용을 따내는 정글, 그게 파견담당 잡매니저의 업무였다.

학교다닐 때부터 나는 경쟁이 싫었다. 같이 잘 놀다가도 서로 경쟁을 하라고 하면 괜히 더 하기 싫었다. 같이 달리다 넘어지면 신나서 먼저 달리는 것보다는 일으켜 같이 달리는 것이 더 좋았던 성격, 영업활동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 것이었다. 처음 한 달부터 채용TO 다른 파견사에 뺏기면서 시작했다. 적응이 그리 쉽지 않았다. 자신감이 떨어졌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6개월만에 거래처가 사라졌다. 새로 받은 업무는 몸에 맞지 않은 옷.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도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 다행히 두가지나 있었다. 첫번째는 외근이 많다는 것. 거래처가 수도권 요소요소에 위치해있던 덕분에 합법적(?)으로 외근을 다닐 수 있었고 이동시간이 긴 만큼 정서적인 휴식이 많았다. 삭막한 사무실을 벗어나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며 오후의 햇살을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도심의 공원에 앉아 마시며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실적에 대한 압박을 잠시나마 잊으며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두번째로 나에게 싱그러움을 주는 것은 바로 3년 만에 시작하게 된 달콤한 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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