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후략)
우리는 조선시대를 왕을 중심으로 알고 심지어 외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록물이 왕을 중심으로 되어있으며, 학교시험에도 출제되기 때문이다.
주요 주제는 ‘누가 누구를 죽이고 권력을 독차지했었는가’이다.
이러한 왕을 둘러싼 불과 몇 안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정사’이다.
하지만 그 몇 명의 이야기는 결코 몇 백년의 시대를 대변할 수 없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왔다.
월세와 같은 소작세를 내지 못해 산적이 되었던 이야기나,
기근이 들어 먹을게 없던 나머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은 이야기.
심지어 근친상간에 불륜까지… 반듯한 유교사상의 시대라고 하기엔 자극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그 시대에도 있었다.
서기 이후(AD)로만 따져도 이천 년이 넘는 시대의 스펙트럼에서 기껏 해봐야 40년 남짓한 나의 세월은 한없이 하찮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 역시 전체를 싸잡아도 대통령 이름 몇 자정도만 교과서에 남겨질 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겪고 살아온 ‘야사’가 더 소중하다.
장담컨대 어떤 시험에도 내가 퇴사를 몇 번했고, 왜 했는지 출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23년의 평민(혹은 노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정도는 알려줄 수가 있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일에 분개했으며, 어떤 이유로 떠났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야사’가 누군가에게는 신기함으로, 누군가에게는 공감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충분하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100년뒤에 누군가의 논문에 ‘2000년대 초 직장인의 삶’으로 인용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