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위기가 사회적 재앙으로 번지는 일이 계속 발생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업의 위기관리 대응을 지켜보다 보면, 때로 대중 및 시장의 상식과 동떨어진 행보에 당혹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저건 오히려 위기를 키우는 자충수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드는 지점에서 종종 그런 느낌을 받거나 나아가 분노까지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조직, 그 기업 또한 나름, 때로는 최선을 다해서 위기관리를 하고 있는 과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경험 상 단순한 실수라고 볼 수 없고 조직 내부의 구조적 병폐나 왜곡된 전략적 지향점이 투영된 결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전략이라는 이름의 행위인셈이죠.
제 경험에서 위기관리 이면의 단면과 위기관리 전문가의 시각에서 본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의 원인을 말씀드릴 수 있는 수준에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래 글은 특정 기업을 지칭하고 있지 않으며 위기관리 전문가로서 편협한 경험을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도움 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정리했을 뿐 옳고 그름을 나누거나 모든 상황에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업 위기관리는 본질적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의 프로세스의 산물'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만약 통상적인 상식과 기본 원칙을 벗어난 독특하고 공격적인 위기관리 대응이 지속된다면 이는 조직과 기업내 합리적 의사 결정 프로세스의 산물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제 경험상, 이런 사례는 대부분 최고의사결정권자 1인의 독단적 의지이거나, 그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대리인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였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개인의 의지에 장악될 때 위기관리는 많은 사람의 '상식'이라는 궤도를 이탈하게 됩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가 외형적으로 갖춰져 있더라도, 내부 임원들이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한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 제기할 수 없는 문화라면 그 체계는 무용지물수 밖에 없습니다. 의견이 묵살되는 조직에서는 전략의 허점을 보완하고 검증하는 절차가 생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한때 조직이나 기업 내에서 일부러 반대 의견을 제시해 토론을 활성화하고, 편향된 의사결정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역할과 조직을 만드는 것이 유행일 때도 있었습니다.
일부 성격이 급한 정보기관이나 대관 분야 출신 인사들의 강력한 실행력이 작동할 때, 종종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공격적인 아이디어들이 현실화되곤 합니다. 이분들의 실행이 무조건 실패하진 않습니다. 그 성공적 경험이 더 무리수를 두게 하는 자양분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성공과 1:1로 100% 매칭 하기 불가능한 많은 위기 상황을 강력한 실행 중심으만 대응하면서 위기 상황과 주요 이해관계자를 '소통'이 아닌 '제압'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결과 대중의 정서와 심각한 괴리를 만들게 되고 그 격차가 위기의 경중을 더 높이는 경우들도 발생합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명확한 방향성이 없거나 전문 지식이 얕은 경우, 소위 '비선'이라 불리는 외부 지인이나 객관성이 결여된 조력자 그룹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들이 처음에는 비선이 아니었지만 갈수록 비선이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때부터는 전문적 전략이 아닌 개인적 친분과 단편적인 조언이 의사결정을 지배하며, 객관성을 잃은 비정상적 실행이 난무하게 됩니다. 항상 위기관리 초반에 객관성을 잃은 지인 전문가 그룹 배제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유명인, 연예인분들)
기업 위기관리 자문과 컨설팅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일년에 수백 번 이상 듣는 질문이 "성공한 위기관리 사례를 알려주세요." 혹은 "위기관리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가요?"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늘 이렇게 답합니다. "위기관리는 단순하게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 없습니다. 다만, 위기관리 과정에서 특정 포인트를 Good Point, Bad Point 라고 나눌 수는 있습니다", "아주 현실적으로는 사장님이,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성공이라고 하시면 성공이죠"라고. 위기관리 목적이 긍정적 평판과 여론을 만드는 것에 있다면 그에 따른 유연한 대응을 하겠지만, 오직 '법적 대응(승리)'에만 매몰된다면 대중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철저히 법리적 대응만을 선택하게 됩니다. 긍정적 여론을 만드는 행위와 법적 대응 사이 간극이 존재할 수 있으며 여론과 법리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대중에게는 그 대응이 비상식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대중이 특정 기업의 대응에 분노하지만, 기업이 설정한 '핵심 타깃'이 대중이 아닐 때 대중들 입장에선 괴리가 발생합니다. 실제 그 기업의 핵심 타깃이 대중, 일반 소비자가 아닌 주주, 정부, 혹은 특정 권력기관 혹은 그 권력기관의 특정 집단 아니면 개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기업의 비즈니스 입장에서 대한민국 시장이 핵심 타깃이 아닐 수 있고 우리 국민이 타깃이 아닐 수도 있으며 그 측면에서 분노하는 내가 그들에게 타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위기관리 교과서에는 없지만 좋은 말로 '막무가내 전략', '모르쇠 전략', '벼랑 끝 전술'이라고 말씀드리고 멸칭으로는 '미친 척하는 전략'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내용은 과거 칼럽을 참고해 주시길 희망합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앞서 언급한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결합해서 작동하는 경우입니다. 드문 사례이긴 하나, 의사결정 시스템이 마비된 상태에서 잘못된 의사결정 및 편향된 시각과 조력이 결합하면, 목적마저 왜곡된 대응을 펼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에 대응하는 태도는 기업의 평소 철학을 그대로 투영합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 위기관리를 ‘기업의 본질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수백억, 수천억 원의 비용을 투입한 마케팅과 기업 홍보, CSR, ESG 활동으로 쌓아 올리는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는 단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보여주는 대응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그 기업의 철학과 품격을 즉각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기업 위기관리 시스템의 구축과 동시에 이를 운용하는 구성원들의 성숙한 역량이 절실한 때입니다. 무엇보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명 구성원이 소속된 기업 수장(首長)의 올바른 철학과 원칙이 그 어느 시대보다 강조되고 있습니다.
기업 위기가 사회적 재앙으로 번지는 일이 계속 발생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