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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젝션피가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비딩(bidding)의 효율성과 공정성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리젝션피(Rejection Fee=탈락보상금)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종종 "리젝션피가 존재한다면 마케팅 에이전시들은 재벌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었던 오래된 이슈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리젝션피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고 본다. 핵심은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비딩(bidding)의 효율성과 공정성에 대한 이슈이고 리젝션피 지불 여부는 그 이슈의 상징과 같은 것이다. 대표적인 문제점을 몇가지 사례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많은 업체 줄세우기 그리고 훈계

특히 정부기관, 공기업의 프로젝트 비딩 과정은 부정을 배제하기 위한 원칙이라는 명분이 일부 이해되지만 난맥상도 여전하다. 예를 들어 4개 이상의 에이전시가 최종 PT에 참가하는데 각 에이전시당 PT 시간은 10분이 주어진다. PT를 진행하는 담당자는 거의 랩 수준의 발표를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외부 인사는 자신의 셀링만 하거나 발표를 한 담당자에게 훈계를 하기도 한다. 건성으로 듣다가 혹은 졸다가 뜬금 없는 질문을 하거나 처음부터 제안과 관련 없는 질문이 난무하는 경우도 있다. 작게는 며칠, 많게는 몇 주 동안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응집해서 도출한 제안에 대해 리젝션피도 없는 상황에서 뜬금없는 야단마저 듣게 된다면 자괴감에 빠진다. 최소한 리젝션피가 있다면 여러 에이전시를 쉽게 불러 줄세우기 하는 경우는 줄어들 수 있겠다.


다 담아 다 담아 그리고 아이디어 무단사용

비딩의 시작은 보통 RFP(request for proposal=제안요청서) 또는 RFQ(Request for quotation=견적요청서)를 클라이언트(광고주)가 배포하고 에이전시가 수령하면서 시작된다. 참여 의사를 밝힌 에이전시들은 따로 OT 과정을 거치면서 해당 프로젝트의 이해를 높이기도 한다.


이때 클라이언트의 방향성과 목적이 명확하지 않고 특히 예산 가이드라인이 없을 경우 제안이 산으로 간다. 타깃에게 화살을 쏴야 하는데 안드로메다로 로켓을 발사하겠다는 제안을 담아내야 한다. 실제 예산은 X배너 세우기인데 제안은 우주에 배너를 건다. 그리고 탈락된 아이디어는 무단으로 활용된다.


만들어진 판

이미 짜여판 판에 상대를 들어오게 해서 이득을 얻는 일종의 사기행위를 '공사 친다'라고 한다. 비딩 후 나중에 들어보면 이미 내정되어 있는 판에 이른바 '들러리'를 서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비딩 무용론의 핵심 이유 중 하나다. 외부 평가 위원들이 평가할 때는 서슴없이 연필로 평가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이후 속고 속이는 복수혈전이 진행되기도 한다.


깜깜이·묻지마 결과

비딩 이후 선정된 업체도 탈락한 업체도 우리가 왜 선정되었는지 우리가 왜 탈락했는지 대부분 알 수 없다.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의례적인 메일을 받는 정도는 오히려 준수한 수준이다. 심한 경우 비딩 후 아예 에이전시를 선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선정 후 내부 사정으로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 약속된 예산을 깎는 정도도 양호하다.


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비딩 과정 필요

에이전시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다른 제안을 카피하거나 다른 클라이언트에 제안 했던 내용을 재활용하기도 한다. 에이전시도 비딩 시 제안 내용과 실제 실행 과정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고 역량이 없음에도 일단 벤츠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장담하고 소형차 수준의 결과물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클라이언트(광고주)가 변해야 더 빠르고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가장 먼저 RFP, RFQ 그리고 예산의 명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를 담보하기 위해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더 정확히 고민 되어야 한다. 이것은 에이전시가 만들어 줄 수 없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에이전시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고충이 있다. 그래서 여러 에이전시를 부르기도 하고 매출이 높거나 단지 덩치가 큰 에이전시를 선호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분야의 에이전시를 클라이어트들에게 제대로 소개하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각 분야 협회의 역할도 필요하다. 에이전시들의 평판은 해당 분야 전문지, 전문 미디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클라이언트 담당자가 순환 보직으로 매번 교체되거나 이동 퇴사 등으로 변경되어 내부 에이전시 관리의 히스토리가 끊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결과와 평판이 좋지않았던 에이전시가 회전문처럼 돌아 다시 입성하는 경우들도 있다. 내부에서 에이전시 히스토리 관리를 진행하고 외부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에이전시 역량과 평판에 대해 꾸준히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클라이언트(광고주)와 에이전시는 상호 존중 받아야 한다. 정보와 지식,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시간과 인력 그리고 실제 투여된 비용은 합당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그에 따른 리젝션피에 대한 개념과 수준 등의 논의가 좀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선 비딩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위한 변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에 따른 상호 신뢰가 우선이다.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훌륭한 에이전시가 아닌 항상 훌륭한 클라이언트(광고주)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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