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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THINK MORE TALK LESS

"더 생각하고 적게 말해라", 힘들지만 좀 더 길게 보십시오.

"저도 피해자라고요"

"저희도 할 말이 많은데 그냥 입 닥치고 있으란 말입니까?"

"저희 주변에선 상대도 잘못한 게 있는데 왜 너만 바보처럼 가만히 있냐라고 난리에요"


기업과 유명인분들 위기관리 조언을 할 때 종종 받는 피드백입니다. 간혹 격앙된 상황이 되어 변호사분들을 제외하고 저희 같은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조력 그룹에서 빠지기도 합니다. 전문가, 제3자 입장에서 현 상황에 맞게 조력하지만 '나도 저 상황에선 다른 사람 말들이 귀에 돌어오겠나?'는 생각을 하며 충분히 이해할 때도 있습니다.


움직이는 자동차 사고에는 흔히 100 대 0은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이는 기업이나 유명인 위기관리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안이 복잡하고 시간에 따른 서사를 들어보면 100 대 0으로 이른바 피해자와 가해자 나눠지는 상황은 잘 없습니다. 그래서 위기관리가 어렵습니다. 만약 이 사안은 100 대 0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든다면 '전략적 위기관리'가 오히려 필요 없을 정도로 해결 방식은 심플합니다.


모든 위기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법에 따라 해석하는 과정이 변호사분들의 영역인 '실제 법정에서 진행되는 법적 위기관리'이고 여론에 따라 해석되는 과정이 저희 같은 위기관리 컨설턴트의 영역인 '여론의 법정에서 진행되는 위기관리'입니다.


통상적으로 가해자는 사회적 비난을 받고 피해자는 사회적 보호와 공감, 옹호와 동정을 받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여서 식상하지만 가해자보다 피해자로 평가받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가해자라 평가받는 기업들이나 유명인들이 ‘우리도, 나도 피해자’라는 인식과 커뮤니케이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매번 정작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들만 존재하는 ‘피해자들의 세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기업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인과 기업이 이해관계자와 대중들에 대한 철학과 원칙에 따라 모범적인 활동과 경영을 하고 그것에 따라 긍정적 평판을 상당히 쌓아왔다면 특정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해관계자과 대중들은 발 벗고 나서 옹호해 줄 준비는 언제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 그런 긍정적 자산이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위기 발생 시 격정적 심경 토로 혹은 감정적 읍소와 하소연으로만 점철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위기가 수면 위로 올라온 직후 강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이 판단과 해석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우리의 주장은 대부분 Fact(사실)라는 주장을 근거로 설명되며 대중들이 그것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설득 과정을 병행하게 됩니다. 이때 이 ‘정상참작’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있거나 해당 위기 이슈 발생 전후, 이슈의 당사자가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고 나서의 ‘불가항력’이라면 피해자의 포지션을 선택하고 주장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피해자 관련 커뮤니케이션은 대중들에게 일방적인 주장에 가까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론 오히려 비난을 받고 대중의 분노를 증폭시키죠.


위기 발생 초기 여론의 법정에서 대중들에게 확립된 가해자 포지션은 극단적 사실관계가 뒤바뀌지 않는 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 더 혁신적인 수준의 합리적 결정이 필요한데 이 결정은 위기를 예측하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내가 왜 가해자 포지션에 서게 되었는지 히스토리와 지금의 결과를 정확히 고찰해 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드시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장고(長考)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꼭 긴 시간을 쓰지 않더라도 이 시간은 즉흥적 결정과 즉답으로 인한 실수를 예방하며 장기적 위기관리를 위한 포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 이슈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혹은 (지금 피해자라 평가받는) 상대가 혹은 다른 이해관계자가 좀 더 조심했었더라면 이 위기는 없었을 것, 나아가 내가 피해자임을 몰라주는 대중들 수준이 문제라는 논리로 나도 피해자라는 커뮤니케이션할 것이라면 차라리 침묵이 해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 한 번에 대응으로 끝내야 하는데 이런 상황 인식이라면 여러 번 반응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가해자 포지션이 더 고착화됩니다.


사실관계 교정할 부분이 명확하고 대응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든다면 대중들이 시쳇말로 "이번 건은 중립 기어 박는다"라는 표현으로 이성적 판단을 하기 위해 좀 더 기다려보겠다라는 평가를 받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면 도움 되지 않습니다. 여론의 법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것은 내가 아닌 오로지 대중들의 몫'입니다. 배심원 역할을 하는 대중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로 피해자 판결을 받아내려면 간결하고 명확한 입장의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전략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힘들지만 좀 더 길게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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