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빙 라운지에서 당신이 투명인간이 되는 이유

맹그로브의 화려한 통유리창 너머, 라이프스타일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by 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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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의 20층 라운지. 통유리 너머로 탁 트인 시티뷰가 펼쳐지고, 사람들은 이것을 코리빙의 낭만이라 부른다. 낯선 이와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 커피 잔을 부딪치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우아하게 스며드는 삶.


이곳은 단순한 공용 공간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를 발아래 둔 채 일상의 격을 끌어올리는 완벽한 무대다.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아침의 청명한 하늘부터,

붉게 타오르는 황홀한 일몰,

그리고 별빛처럼 흩뿌려진 도심의 야경까지.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처럼 펼쳐진다.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면 뺨을 스치는 바람과 함께 루프탑의 압도적인 개방감이 가슴을 때리고, 실내로 걸음을 옮기면 차분한 우드 톤의 라이브러리가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며 포근하게 몸을 감싼다.


마치 일상과 비일상을 오가듯, 해외 어딘가의 부티크 호텔의 프라이빗 라운지에 방문한 것처럼. 감각적인 음악 사이로 매력적인 이방인들과의 대화가 오가는 밤.


코리빙은 곧 힙하고 즐거운 네트워킹이라는, 인스타그램 피드에서나 존재할 법한 세련된 공식이 이곳에서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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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맥북을 올리는 순간, 이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었다는 고양감에 사로잡힌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해가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하고, 은은한 조명 아래서 책장을 넘기며 사색에 잠기거나, 탁 트인 테라스에서 노을을 배경으로 과일과 함께 와인 잔을 기울이는 밤.


이 눈부신 미학의 공간은 존재 자체로 사람들에게 나는 꽤 세련되고 트렌디한 삶의 궤도에 올라와 있다는 강렬한 도취감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현대인들이 꿈꾸는 가장 찬란한 라이프스타일의 결정체다.




하지만 20층 라운지의 진짜 공기는 당신이 꿈꾸는 환상과 달리 잔인하다. 함께 산다(Co-living)는 거창한 간판 뒤에 숨겨진 이곳의 진짜 풍경은 훨씬 더 기형적이고 지독하게 건조하다.


라운지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당신을 반기는 것은 숨 막힐 듯한 정적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테이블과 소파를 채우고 있지만, 공간을 채우는 것은 오직 마우스 클릭 소리와 키보드 타격음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철저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들은 누구와도 얽히고 싶어하지 않으며, 곁에 누가 앉든 일말의 관심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배경은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그 본질은 철저히 단절된 세상.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지는 기묘한 투명인간들의 거실.


코리빙의 낭만을 품고 올라온 누군가가 자신을 받아줄 누군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장착한 채 스몰톡의 타이밍을 엿본다 한들, 타인을 튕겨내는 이 거대하고 차가운 벽 앞에서는 그 무엇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 압도적인 무관심의 공기가 사람의 숨통을 가장 비참하게 옥죈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기껏 모여든 공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순적이게도 스스로 고립을 실천하고 있다.


누구도 서로의 삶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누구도 내 옆의 사람의 존재를 배려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한국 특유의 폐쇄성이나, 각자 바쁜 현대인의 삶 탓으로 돌리며 위안을 삼는다. 그저 타인의 존재를 소거하고 지워내는 데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자신은 이 세련된 공간의 주인공으로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는 생각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수백 명의 이웃이 존재하지만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곳. 그것이 바로 이 눈부신 20층 라운지의 민낯이다. 함께 살기 위해 모였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서로를 지워버리는 기만. 이곳의 누구도 당신의 삶에 먼저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이 20층 라운지의 암묵적인 룰을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남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말든, 난 그저 내 삶의 방식 그대로, 나답게 움직였다.


나 또한 이 압도적인 정적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무관심의 공기에 짓눌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뒤로 숨었던 유령인 적이 있었다. 타인의 경계를 두드리다 차가운 거절에 부딪혀 자존감이 긁히는 날도 분명 있었다. 먼저 내민 손이 허공에서 길을 잃고 어색하게 거두어지던 순간의 비참함도 뼈저리게 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는 안전한 고립보다는 기꺼이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더 나은 삶의 형태를 완성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다.


테라스를 오가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는 대신 먼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커피를 마실때 머신기 앞에서 마주치게 되면 망설임 없이 말을 걸었다. 라운지 옆자리에서 누군가 열심히 자신만의 작업을 하고 있다면, 우연한 타이밍에 대화를 시도헀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코리빙 거주자이든 단기 스테이 여행자든 가리지 않았다.


균열을 내는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꽤나 즉각적인 피드백이다. 대단히 차가운 외면이나 노골적인 불쾌함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겉보기에 예의 바르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상태로 애매하게 끝난다.


하지만 그들중에 특별한 만남이 가능해지는 인연이 있다. 우연히 경계의 벽을 허물고 마주 앉아 몇 마디의 언어를 교환해 보면, 그들 역시 이 고립 속에서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 이 지독한 적막을 깨어주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단지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없었거나, 타인에게 거절당해 자신의 초라함이 증명되는 것이 두려워 무관심이라는 가장 안전하고 세련된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과의 만남이 나의 세계를 저 너머의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이곳 맹그로브에서 보낸 지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번 이 라운지의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얼굴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자라온 배경도 다 달랐다. 심지어 사용하는 언어와 국적마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피상적인 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진지한 각오였다.


말과 글은 거울과도 같아서,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가는 순간 그 사람의 영혼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각자가 구축하고 있는 삶의 본질, 인간에 대한 예의와 태도,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자유에 따르는 책임에 대한 방식에서 우린 닮은 부분이 많았다. 피상적인 스몰톡의 단계를 단숨에 건너뛰고, 각자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와 철학을 거침없이 탁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이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최소 2시간, 대화가 깊어질 때는 새벽을 맞이하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스스로의 삶에 질문을 던지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품으며, 타협 없는 목표를 향해 끝없이 과녁을 겨누는 삶.


20층 라운지에서의 짧은 만남이란, 오직 그러한 궤적을 밟아온 두 사람이 조우했을 때, 그 절묘한 타이밍에만 잠시 열리는 특별 무대 같은 것이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의 아침, 모두가 잠든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유령들이 모두 사라진 시간대. 그 어디에서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날 선 통찰과 비즈니스의 본질, 결핍과 치열한 고민의 흔적, 그리고 실존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들이 오간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타격하고, 또 기꺼이 박살 나며 그 파편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향해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달린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 20층 라운지에서 기꺼이 시간을 지불하며 얻어내는 가장 값비싼 전리품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이 화려한 라운지에서 고립되는 이유를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어서, 혹은 스몰톡의 타이밍을 못 잡아서 이 공간에서 고립된다고 착각한다. 혹은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한다.


틀렸다.


관계의 문을 여는 진짜 열쇠는 그 사람 자신이 뿜어내는 밀도와 중력이다. 타인의 벽을 두드리기 전에, 내 안의 심연부터 채워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타인과 마주 앉아 기꺼이 교환할 진짜 언어가 생긴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보고, 비젼을 이끌어내는 식견과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직업, 자산, 외모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 하는 그 위에, 자신만의 언어로 독자적인 사유의 시선을 구사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20층 라운지의 관계는 얕은 사교성으로 열리지 않는다. 타인의 시간을 멈춰 세울 만한 고유한 매력이 없다면, 나눌 수 있는 독특한 세계관이 없다면, 스파크가 일어날 정도로 용기있게 강렬하게 부딛힐 수 없다면, 몇마디 가벼운 스몰톡을 나누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끝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가장 매너 있는 선택이다.


이곳은 당신이 무엇을 추구하고 연구하며, 삶의 어느 지점에 미쳐있는 인간인지 그 사유의 레벨을 증명해야 하는 가장 냉혹한 심사대다. 당신이라는 인간의 농도가 짙어지고, 누군가가 말하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스스로 묻고 답하며 완성해 낸 가장 자기 자신다운 모습이 침묵 속에서도 뿜어져 나올 때. 오직 그때에만 이 라운지에서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라운지에 올라왔다가, 철저한 투명인간 취급을 견디지 못하고 쓸쓸히 나가떨어진다. 이곳에 사는 그 누구도 텅 빈 삶에 먼저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 무색무취의 타인에게 내어줄 시간은 없다. 코리빙이라는 거대한 가능성은 오직 자기만의 궤적을 가진 이들에게만 교차점을 허락한다.


물론 20층 라운지가 그저 햇살 좋은 도서관으로 소비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고요하고 고립된 정적 속에 머물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 거대한 수직의 공간을 지배하는 진짜들, 아비투스 호스트들의 삶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낯선 이방인과도 스스럼없이 묵직한 대화를 이어가며 자신들만의 언어로 공간을 장악하는 압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반드시 보게 된다.


모두가 나처럼 철저히 혼자인 것은 아니구나.
다들 각자 바빠서 말을 안 섞는 줄 알았는데, 그저 나에게만 차가웠던 거구나.
누군가는 이곳에서 저런 삶을 누리고 있구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기 있는 소음과 자신이 머무는 초라한 정적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실감하는 순간, 예고 없는 박탈감이 폭풍처럼 몰아치게 된다.


그 격차를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의 비참함은, 20층 높이에서 맨몸으로 추락하는 것보다 더 아프게 자존감을 파고든다. 차라리 몰랐다면, 누군가의 저 견고한 세계를 두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다면 고통스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똑같이 외롭고 파편화된 삶을 사는 것이라 자위할 수 있었을 테니까.


이 화려한 무대의 입장권은 샀지만, 정작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진짜 삶에는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다는 잔혹한 진실. 다시 말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오직 쟁취하는 자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쟁취란,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는 혈투가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갈 약간의 무모함이다. 이 파편화된 20층의 요새에서 자신만의 궤도를 돌고 있는 이들 역시, 실상은 철저하게 고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뿜어내는 단절된 시공간과 차가운 방어막은, 역설적으로 아무하고나 얕은 온기를 나누느니 차라리 완벽한 고립을 택하겠다는 외로운 결벽증에 가깝다.


우리는 완벽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어설픈 친절이나 아무나 다 하는 스몰톡이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자신만의 진실된 스토리를 들고 이 적막을 깨부수며 다가와 줄 진짜 바이브를 가진, 누군가를 말이다.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든, 통장 잔고가 얼마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의 삶에 치열하게 묻고 답하며 당신만의 이야기를 묵묵히 채워가고 있다면, 꿈을 갖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문을 열 자격은 충분하다.


그러니 언젠가 당신의 내면이 단단하게 여문 어느 밤, 이 눈부신 20층 라운지로 올라와 누군가에게 주저 없이 먼저 말을 건네라.


누군가가 기꺼이 닫혀있던 노트북을 덮고 당신의 이야기에 시간을 내어줄 것이다. 선을 넘어서면 어제와는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서울의 야경을 등지고 마주 앉은 두 개의 고독한 우주가 부딪혀 빚어낼, 그 따뜻하고 찬란한 스파크가 존재하는 실존적 호스트들의 세계.


진짜 코리빙은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다. 기꺼이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발아래 펼쳐진 수만 개의 흔한 네온사인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고 눈부신, 진짜 20층의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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