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헬스장이 아닌 맹그로브 피트니스 룸을 선택한이유

고통을 지불한 자들만이 닿을 수 있는 원초적 커뮤니티가 있다

by 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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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외 어느 도시를 가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곳 최고의 헬스장부터 찾아내는 사람이다.


글로벌 수준의 최상급 분위기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뿜어내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괴수들 사이에서 내 몸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것. 그것이 내가 낯선 도시에 도착해 가장 먼저 내 삶의 주도권을 쥐는 나만의 리추얼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수적인 일들에 불과하다. 이것이 내 여행의 방식이고, 이게 내 삶의 원칙이다.


철저하게 통제된 루틴으로 스스로를 벼려내는 나에게, 공간의 수준은 곧 내 삶의 임계치와 직결된다. 그래서 내 기준은 늘 하이엔드였다. 스팀과 건식을 모두 갖춘 사우나, 수영장, 완벽한 동선으로 배치된 최신식 머신, 흠잡을 데 없는 공조 시스템. 자본의 인프라가 내 퍼포먼스를 완성한다고 믿었다.


여행을 가서 술은 안마실 수 있고, 밥도 굳이 비싼 것을 먹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헬스장만큼은 언제나 그 도시 최고를 향했다. 그렇기에 맹그로브의 지하 벙커(나는 맹그로브의 지하 피트니스룸을 이렇게 부른다)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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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 차갑다. 기구가 없다.


럭셔리한 라커룸이나 맞춤형 서비스는 고사하고,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이라곤 단 1%도 존재하지 않았다. 벽면에 노출된 콘크리트와 사방을 에워싼 차가운 거울. 이곳은 헬스장이라기보다 영화 속 큐브처럼 완벽한 밀실에 가까웠다.


여의도 페어몬트의 호텔 헬스장부터, 강남의 수많은 피트니스 클럽을 경험했다. 지난 5년동안은 무대를 해외로 옮겨 최고의 헬스장을 찾아떠났던 나다.


이런 곳에서 과연 내 기준치를 충족하는 폭발적인 운동이 가능할까.


효율성 측면에서 최상의 공간,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단 30초안에 방문할 수 있다는 압도적 장점.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이 좋은 인프라가 코앞에 있음에도 정작 이곳은 늘 한산하다는 것이다. 400명의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팩트(Fact)는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해석은 다르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이 공간은 맹그로브의 입주민들에게 최고의 공간이 될 수도 있고 기억에서 사라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단언컨대, 나는 맹그로브에 이 피트니스 룸이 생긴 이래 이곳을 가장 오랜 시간 이용한 사람일 것이며, 뿜어낸 운동의 퍼포먼스로도 압도적인 상위권일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이용하는 시간대가 각자 다르겠지만, 내 말이 맞다.


사람들은 문을 열고 기웃거리다 이내 사라진다. 입주민이든 스테이 고객이든 처음 오는 사람은 티가 난다. 몇 번 얼굴을 비추는 새로운 사람들도 결국 대부분 며칠 운동하는 시늉만 하다 스쳐 지나가는 유령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열심히 자신만의 변명을 만들어낸다. 헬스장의 기구가 부족하고 공간이 너무 작다는 등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낸다. 프리웨이트를 할 수 밖에 없고 몸을 써서 운동할 수 밖에 없으니 운동을 할 줄 모르는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맹그로브가 제공하는 수많은 편의공간 중 이곳의 문턱이 가장 높다.

난 이 공간에서 거주하면서 피트니스 룸에서 보내는 99%의 시간을 외롭게 홀로 운동해왔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운동해 본 사람이라고 하면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원칙이 있다.


좋은 도구와 공간은 성장을 가속화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결과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화려한 인프라에 취해 있던 나를 일깨운 건 역설적이게도 칼 한자루만 들고 하루에 수백번 수천번을 휘두르며 피를 토하던 대학 시절 검도부의 기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했던 건 화려한 최신식 머신에 둘러싸였던 시절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마룻바닥 위에서 죽도 하나에 의지하던 대학시절이었다.


공간이 주는 가치가 그토록 대단하고, 도구가 주는 혜택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면 왜 최상급 헬스장만 다니게 된 졸업 이후의 나는 그 시절 '검도부 선배'의 몸을 유지할 수 없었을까. 그저 나이 문제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궤도에서 내려온 적 없던 내게, 이 좁은 벙커는 가장 찬란하고 가장 짐승 같았던 그 시절의 감각을 강제로 소환해 냈다.


그 시절 목검과 죽도를 휘두르며 인생을 불태우던 나날이 남자로서 가장 황금기를 걷던 시절이었고 우리는 칼만 휘두른게 아니라 책도 휘둘렀다. 각종 번역서와 해외이론들을 연구하며 어떻게 하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 폭발하는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치열하게 토론했던 나날이 아직도 기억 저편에 존재한다.


난 모든 다양한 바벨기반의 운동, 맨몸운동을 포함한 모든 프리웨이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워크아웃을 세우고 운동을 수행해왔고, 캐틀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부터 러시안 캐틀벨을 들고 운동해왔다.


그렇기에 난 보였다.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처음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벨을 쥐고 움직이는 순간, 이 작은 벙커 안에 치밀하게 계산된 보이지 않는 동선이 피부로 느껴졌다. 설계자의 숨은 의도가 나를 덮쳐왔다.




겉보기엔 이게 뭔가 싶을 작은 공간.

하지만 쇠질의 본질만 남겨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거대한 헬스장의 머신들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나태하게 만든다. 화려한 머신들은 운동을 어떻게 할지 몰라도 기계가 설정해 둔 안전한 궤적 안에서 편안하게 움직이게 해 준다. 하지만 머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원초적인 쇳덩이와 나 뿐이다.


좁은 벙커에는 나약함이 숨을 공간이 없다. 이곳에서 누구를 마주칠 일도 거의 없고 오직 혼자만의 싸움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사방에 깔린 거울 앞에서 도망갈 수도 없다.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로 일상에서 곧바로 피트니스 룸으로 수직 낙하하는 압도적인 직관성. 그러나 이 수직의 동선은 역설적으로 가장 달콤한 유혹이기도 하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언제든 30초 만에 안락한 내 방으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이 늘 텅텅 비어있는 이유, 새로운 사람들이 며칠 만에 유령처럼 사라지는 이유는 헬스장이 좁아서가 아니다. 기댈 곳 없는 고립감 속에서 자신의 나약한 밑바닥을 마주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본능을 짓밟고 일어선 진짜들의 침묵만이 흐른다.


수백 가지의 머신보다, 나의 루틴을 1초의 오차나 변수 없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이 밀도 높은 접근성이 내 삶의 방식과는 훨씬 더 부합한다.


루틴을 완성하는 것은 기구가 아니라 그 기구를 박살 낼 듯이 다루는 나의 의지다. 시스템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내 육체 자체를 완벽한 시스템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맹그로브의 피트니스 룸에서 인생을 불태워 본다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겉보기에는 작고 콤팩트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 쇠질의 모든 정수가 담겨있다. 아마도 이 공간을 설계한 사람은 머리속으로 수십번 수백번 시뮬레이션을 그리며 누군가의 동선을 머리속에 그려보았을 것이다.


육각덤벨을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 유압식 로잉머신이 아니라 워터레지스턴스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 랜드마인 소켓이 장착된 파워랙.


누군지도 모르지만 이 공간을 설계한 사람이 시키는 대로 그 흐름을 따라 운동을 해왔다. 단순히 기구를 갖다 놓은 것이 아니라, 운동의 깊이를 이해하는 설계가 돋보인다. 누굴까. 운동을 아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덤벨은 그냥 다 같은 덤벨일 뿐이며, 랜드마인 소켓이 뭔지도 모를테니까.


그래서 이곳은 내게 있어, 일상의 타협을 거부하고 기어이 자신을 벼려내고자 하는 완성된 세계관을 구축한 자들을 위한, 작지만 완벽한 벙커다. 중량은 정직하다. 쇳덩이는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들거나, 들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 밀폐된 큐브 안에서 심장이 터질 듯 온몸을 불태우고 바벨을 내려놓았을 때, 좁은 방안을 가득 채우는 나의 거친 숨소리와 열기. 그것은 하이엔드 헬스장의 쾌적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지독하게 순도 높은 성취감이다.


스스로를 파괴할 용기가 있는 자들만이 이 방의 공기를 마실 자격을 얻는다.


항상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매일같이 나타나 운동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모습은 얼핏 성실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한계를 넘어서려는 절박함 대신, 그저 운동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이의 모습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기준 자체를 모른다.


그것은 틀린 방식은 아니나, 나와는 결이 다르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진실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일찌감치 철저히 거리를 둔다. 내 원칙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오직 쇠의 무게를 견디는 근육만이 진실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사는 게 고통스러울 만큼의 인풋을 육체에 때려 박아야 한다.


깊은 고독과 외로움이 밀려올 때쯤, 나는 비로소 진짜들을 만났다.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나는 무거운 덤벨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거울 너머로 인클라인 러닝머신을 최대 경사로 세팅해놓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한 서양인 투숙객과 눈이 마주쳤다. 땀에 젖어 짐승처럼 일그러진 얼굴. 신기하게도 거울너머로 그가 나에게 눈짓하며 인사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묵직한 눈빛의 교환.

그 순간 우리는 어떤 언어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짧은 찬사를 보냈고, 우리는 숨소리만 가득한 피트니스 룸에서 서로의 퍼포먼스를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인클라인을 최대로 높인 러닝머신 위에서 심장이 터질 듯 질주하다가 발을 내딛을 때, 거친 숨소리 사이로 폭발하던 강한 수컷들의 아드레날린.


한계다.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는 것 같다.


런닝머신이 아니라 발이 푹푹 빠지는 해변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느낌이다.


당장이라도 멈춤 버튼을 누르고 싶다는 원초적 본능이 전신을 덮친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추했다. 그러나 그 추함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인간의 진짜 얼굴이었다. 가식적인 미소보다 땀에 젖어 비명을 지르는 그의 근육이 내게 더 큰 위로를 주었다. 나의 얼굴도 추할 것이다. 우리는 짐승처럼 서로를 확인했고, 그 순간 그것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진 가장 원초적인 연대, 진정한 브라더후드 그 자체였다.




인간은 오직 고통을 매개로 할 때만 이토록 투명하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대상은, 오직 어제의 자신을 찢어발길 듯이 묵묵히 땀을 흘리는 진짜들뿐이다. 기구를 쥐는 손끝, 흔들림 없는 시선, 그리고 바벨의 무게를 견뎌내는 자세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졌는지 단번에 답이 나온다.


이것은 지상의 라운지에서 나누는 정교한 환대와는 격이 다른, 오직 극한의 고통을 공유한 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순도 100%의 신뢰다.


친하게 지내자는 말 한마디 없이도, 굳이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가 호의를 베풀겠다고 나서지 않아도, 심지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그런 사소한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한계치를 목격하는 것만으로 국경을 초월한 원초적 연대는 완성된다.


누구나 연결될 수 있다는 말은, 반대로 사람에 대한 기준이 한없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진실을 내포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진실.


코리빙 하우스는 겉에서 보이는 것처럼 다정한 커뮤니티가 아니다. 이곳은 맹그로브가 제공하는 수많은 라이프스타일 중 가장 가혹한 필터링이 일어나는 곳이다. 지상의 라운지에서 커피 향을 즐기며 나이브한 대화를 나누기만 해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가 이 지하 벙커 속에 머문다.


오직 고통을 지불한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이 잔인하고도 정교한 커뮤니티 안에서, 나는 비로소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법을 다시 배운다.


나는 이 작은 맹그로브 피트니스 룸에서 가장 가혹하게 나를 깎아냈고, 그 과정 속에서 나와 결이 같은 최고의 아비투스를 가진 호스트들을 알아봤다. 공간의 크기는 한계를 결정하지 않는다. 한계는 오직 그것을 대하는 자신의 나약한 마음 속에 있을 뿐이다.


내가 이곳에 남긴 지독한 땀의 궤적이, 앞으로 이 공간을 거쳐 갈 누군가에게 서늘한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변명은 끝났다. 이제 증명할 시간이다.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교양을 갖춘 전사들의 요새에 온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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