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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서원 Mar 13. 2018

마케터는 판매원이 아니다

스스로 전략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마케터인가

대학원시절, 저는 마케팅을 정식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창업판에 뛰어들어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몸으로 배웠던 어설픈 마케팅을 뒤로하고 제대로 된 커리어와 역량을 가진 분에게 마케팅 사이언스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학적인 마케팅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바닥부터 새로 세우는 기분으로 마케팅을 공부했습니다. 학부시절에도 경영관련 서적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공허한 단어와 외침이었는데 그동안의 삽질경험으로 인해 다른세상의 외계어들이 함축된 의미를 가진 선지자의 노하우로 다가오는 신기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고 현업에서 부딛히고 깨지면서 얻어온 나름의 작은 노하우(?)라고 할만한 비밀스러운 내 깨달음은 필립 코틀러의 책에 고스란히 다 적혀있는 내용들이었다는 사실에 억울해하기도 했습니다. 


내 능력과 역량이 그것을 이해할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기에 보물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나에게 많은 깨달음과 분노를 불러일으킨 그 책
알고보니 난 보물을 눈앞에 두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이였다.
물론 그때는 그저 학부생일뿐이었지만





저는 필립코틀러 만능주의와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그저 마케팅을 아카데믹하게 풀어냈을뿐 정말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정보수집과 자신만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다만 초심자에게 마케팅전략이라고 하는 것이 이러한 것이다라는 시사점은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지요. 


문제는 이러한 관점을 갖고 마케팅에 대해 접근하면서, 공동창업자의 포지션으로 시장에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 많다보니 주류의 마케팅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사장이 해야 할 마케팅을 꾸준히 해왔다고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마케팅은 현장에서 직원 입장에서는 인정받기 쉽지 않은 것이었고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장이 해야할 마케팅, 직원이 해야할 마케팅


어쩌다보니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마케팅 관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사장이 고민해야 할 마케팅의 영역이 있는것이고 직원이 고민해야 할 마케팅의 접점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다보니 경영진의 관점에서 줄곧 마케팅을 해오게 되었고 그것을 현재에 이르러 깨닫게 된것이 아닌가. 






제가 마케팅 팀장으로 일은 진행하면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사실은 팀원들, 그러니까 전형적인 대졸자 커리어를 갖고 마케터로 입사한 이들과의 의견차이였습니다. 저와는 완벽하게 다른 인생단위를 살아가는 이들이었고 어떠한 스킬적인 능력이나 전략기획의 경험이 전무한 평범하면서 철저하게 문과베이스의 역량. 가장 큰 문제인식의 범위는 바로 이것,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었습니다. 


저는 마케터란 시장에 서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과학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스스로 전략을 수립하고 움직이는 존재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행하며 그 사이의 간극을 측정하는 생각하는 마케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저만의 생각이었을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케터를 기능적인 직업으로 바라봅니다. 그저 주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홍보를 하거나, 비용을 집행하여 결과를 내는 것,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여 SNS에 업로드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일을 함에 있어 본질적인 측면에서의 고민이나 문제의식은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대로. 단순하게. 시키는대로 홍보를 하거나 비용을 태우거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반복합니다. 비용을 태워 결과를 내는 것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집행해봤냐에 따라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도 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자극적이고 어그로를 끌어봤냐를 통해 콘텐츠마케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케터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결국 판매원이나 행정병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주변 누구를 만나봐도, 결국 직원 입장에서의 마케터는 판매원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마케터의 능력은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집행했던 거대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보았느냐가 좌우합니다. 디지털 마케터라고 한다면 얼마나 거대한 트래픽을 창출해보았는지가 중요해집니다. 트래픽이 어떻게 구성된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거대한 숫자. 오직 그것만을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디지털 마케팅을 하는 마케터는 숫자에 집착합니다. 구독자수, 좋아요수, 그리고 댓글과 공유수. 때로는 프로젝트가 창출한 계약도장이나 매출이 그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서비스의 본원적인 가치나,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관점. 이러한 의미에서 문제를 접근하려 하지 않습니다. 


당장은 이런 마케팅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뭔가 되고 있는것 같으니까요. 경영진의 주장과 정면으로 맞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하겠다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제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관점을 달리하면 직원으로서는 이것이 본원적인 가치를 만족하는 것이고, 사장을 고객으로 생각하면 어찌되었든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니까요. 이 회사에서 잘 해서 결과를 내고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그것으로 해피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회사차원에서, 서비스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합니다. 과연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정말 고객에게 가치를 주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몇번을 반복하고 끝없이 리스키한 구조를 탐문하며 문제를 정의하고 구조화하며 각각의 해결점을 잡아 전략을 세웁니다. 마케터가 해야 할 가장 우선순위는 이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떠한 전쟁관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어차피 전쟁 한두번할거 아니고 이후의 전투를 위해서라도 전력을 온존한 상태로 이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 과학적으로 판단하고 이겨놓은 전쟁만 해야한다는 주의입니다. 당장 전력을 다해 몸을 부딛혀 한두번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한들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보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이렇게 얻어진 승리는 자만감을 불러일으키고 더 큰 멸망을 초래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마케터가 고대의 장군과 다른것은 열심히 싸워서 일단 몇번 전쟁에 이긴다음 그것을 레퍼런스로 삼아 망명하여 이웃나라로 건너가 장군을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비효율적인 전투를 수행하며 망가진 군대의 보급은? 손상된 군대의 사기와 병력단위는 왜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다음에도 돌격 앞으로하면 같은 승리가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인가요. 


제 주변사람들은 저의 마케팅 이야기를 골치아파하고 꺼려합니다. 자꾸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요. 그냥 아무생각없이 대충 좋아보이는 이야기 들으며 시간보내고 싶은데 떠먹여주지 않으니까요. 트래픽 10만 끌어봤다. 어디어디에 메인노출되고 상단에 올라봤다 이런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면서도 이것들이 실제로는 허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서는 대중적인 관심사에 기반하여 이만한 트래픽이 나오지만 해당 서비스의 타겟고객에게는 통하지 않을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냥 그 숫자가 다 내숫자인것처럼 생각하죠. 


어쩌면 현재의 마케팅이란 이런 거대한 환상속에 기반한 기초가 부실한 산업인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이 구조를 알고 있지만 다들 쉬쉬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뭐 어찌되었든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트래픽 올리고 타겟고객이든 아니든 누군가 끌어들여서 매출내고 계약서 도장 쾅쾅 찍어대면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 너무 빡빡하게 생각하지 마라. 어차피 비용은 써야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보다는 그래도 약간이라도 결과를 내고 있으니. 네가 말하는 전략도 최후에는 숫자와 비용으로 귀결된다. 다만 차이는 그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가 아닌가이고 현실적으로 직원에게 그정도 능력까지 기대할 수 없다. 저는 이 이야기에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면 그 코스트가 대폭 절감되어 경영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응하였지만 여기까지 대화가 흐르게 되면서 일반적으로 경영진들이 갖고 있는 직원으로서의 마케터에게 기대하는 바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금 트래픽 올려주면 좋고 매출조금 끌어주면 좋은. 뭐 그정도의 위치인 것이죠.





저는 생각합니다. 마케터는 판매원이나 행정병이 아니라, 스스로 전략을 수립해 가치를 제안하고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입니다. 판매를 잘하는 판매원이 되고 싶은가, 고객이 살 수밖에 없는 가치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것인가.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처음부터 이건 마케터의 고민이 아닌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쩌면 저는 마케터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케터가 아닌 사람이 마케터의 옷을 입고 있으니 직원으로서 고민해서는 안되는 문제를 고민하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릅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언제나 답은 자기 자신에게 있으며 타인의 도움은 힌트가 될뿐 나만의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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