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눈 내리던 날, 첫사랑

by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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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모든 걸 뭉툭하게 만든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지붕도, 딱딱하게 각진 자동차도, 교통 정리하는 경찰의 어깨도. 날을 세운 채 버텨봤자 속수무책이다. 눈은 조금씩 내려앉고, 기어이 쌓인다. 모서리도, 테두리도 모두 사라진다. 뛰어들고 싶은 두터운 이불처럼, 온 세상을 포근하게 만든다. 그렇게 눈 아래 묻힌 존재는 때로는 우스꽝스럽게도, 애틋하게도 보인다. 시선이 그 위에 오래 머문다.


삿포로의 눈은 그 역할에 더욱 충실했다. 이른 새벽이고, 한낮이고, 저녁이고, 언제든 눈이 갑자기 내리곤 했다. 눈이 수많은 발에 밟히고, 타이어에 짓이겨지기도 전에, 그럴 새도 없이 다시 눈이 씻어냈다. 모든 게 다 잊히고 하얗고 포근하게 남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삿포로에는 가장 마지막에, 가장 맨 위에 올라서는 게 눈이었다. 하양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색, 그리고 순수라 불리는 빛깔. 그러나 봄이 오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녹아내리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끝내 떠나가고 마는 인연. 돌아온다 해도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첫사랑 같은 만남.


눈은 그 자체로 낭만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삿포로는 그렇게 수많은 첫사랑 영화의 배경이 됐다. 춥고 시리고 고독한 성장통 속, 조용히 내려앉는 첫사랑. 마음껏 뒹굴고 싶지만, 오래 머물 수 없는 시절. 곧 녹아 사라져 버린다. 전체 인생에 비하면 너무도 짧게 남아있다 사라지는 시간이지만, 나의 모남과 어수룩함이 온통 덮여 새하얗게 빛나던 순간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



첫사랑 같은 눈을 품은 ‘삿포로’ 여행 노트


PLACE

삿포로 시내에서 눈이 가득 쌓인 모습을 즐길 수 있는 ‘나카지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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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러브 하츠코이에서 두 주인공이 일출을 본 ‘호로히라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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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눈 내리는 풍경 속 첫사랑을 담은 영화 3, ‘퍼스트러브하츠코이’, ‘윤희에게’, ‘러브레터’

ⓒ넷플릭스
윤희에게.jpg ⓒ윤희에게
러브레터.jpg ⓒ러브레터

MUSIC

눈 덮인 들판에서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 수지의 ‘하루’

FOOD

삿포로의 눈이 혀 위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맛, ‘라스트 민트의 삿포로 팬케이크’

·사진 솔솔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