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장래희망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에 더 가깝다. "꿈을 이루었나요?"라는 어린 나의 질문에 어른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거나, 천장을 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리곤 했다. 누군가는 아나운서가, 또 누군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물어보는 어른마다 꿈을 이룬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 다를 거라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무리 현실 같아도, 이루기 전까지는 한낱 영사(映寫)에 불과한 꿈. 잡힐 듯해도 형체가 없다. 이루지 못한 꿈이야 잊어버리는 게 낫지 않나. 모든 아픔은 형태가 없어서 누군가와 함께 어루만지며 달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나만 아는 통증이 있을 뿐.
그렇게 지우려 했던 꿈을 카파도키아에서 떠올렸다. 화성에 온 듯한 기암괴석의 풍경 위로 형형색색 열기구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현실 같지 않아서 그랬을까. 이유야 모르겠지만 밤마다 꿈속에서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있었다. 아침이 와도 어둑한 동굴 호텔에서 눈을 비비다 새벽에 밖을 나서면 열기구들이 눈앞을 가득 뒤덮었다. 카파도키아를 검색하면 나오는 그 풍경이었다. 여행 오는 사람이라 하면 열이면 아홉, 열기구를 떠올리며 이곳에 온다 하니 이쯤 되면 카파도키아는 열기구와 떼어낼 수 없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모든 게 까만 쌀쌀한 이른 새벽, 열기구들이 마치 잠든 해를 마중 나가듯 하늘로 올라간다. 해가 뜨면서 시시각각 하늘과 땅 위의 빛깔이 달라질 때, 열기구들은 알록달록한 제 빛을 뽐낸다. 붉은 해 하나 뜨는 일출도 그렇게나 아름다운데, 그 주변으로 무지갯빛 열기구가 비눗방울처럼 방울방울 떠오른다니. 이렇게 환상적인 풍경이 존재할 수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문득,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이 비현실적인 풍경이 어떻게 현실이 됐는지 궁금해진다. 카파도키아는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이곳에 살던 사람들도 이 풍경을 간절히 바랐을까?
오래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우리나라 제주에 한라산, 일본 시즈오카에 후지산이 있다면, 카파도키아에는 에르지예스(Erciyes) 화산이 있다. 오래전 화산 활동이 활발하던 때, 분출된 화산재는 두텁게 쌓여 카파도키아에 지금의 응회암 지대를 형성했다.
응회암은 사람 손으로 팔 수 있는 모래처럼 부드러운데, 공기와 닿는 표면은 단단하게 굳는 특성이 있다. 이를 알던 옛사람들은 초기 기독교 시대, 종교 박해를 피해 암벽 안을 파서 공간을 만들고 창을 내어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이를 보여주는 공간이 '괴레메 국립공원'이다. 한편 이 응회암의 특성을 이용해 살아낸 또 다른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땅 속 깊이 아래로 내려가 지하 도시에서 살았다. 그중 '카이막클르 지하도시'는 지하 8층 깊이의 도시로 좁은 통로와 굴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 한 명도 지나가기 힘든 좁은 길을 따라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때면, 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이 살았나 싶을 정도다.
인간이라면 대부분 평평한 땅에 발을 딛고 볕을 보며 사는 게 꿈인 법. 지하로 숨어들 거나 굴을 파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럴 수가 없었다. 꿈을 꾸자니 죽음이 다가와 어쩔 도리가 없던 것이었다. 다행히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땅이 그들을 깊이 숨겨주고 숨 쉬게 해 주어, 그들은 그 안에서 또 다른 꿈을 꿔나갔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종교박해가 끝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 후에도, 카파도키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순조롭게 발 딛고 살 만큼 비옥하거나 평탄하진 않았다. 포도와 같은 어떤 작물은 잘 자라났지만, 밀과 벼처럼 주식이 되는 작물이 자라기에는 척박했고 사람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에도 지형이 험했다.
그렇다고 인간이 포기할 존재가 아니다. 또 다른 꿈을 꾸는 법이다. 눈앞의 기암괴석은 어떤 쓸모는 덜할지라도 감상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경치였고, 빈 땅으로 놀리기에는 아쉬웠다. 1990년대 유럽의 열기구 조종사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지형에 반했고, 새벽에 기류가 안정적이라는 특징을 이용해 상업용 관광을 위한 열기구 회사를 세운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관광은 입소문이 났고 대성공이었다. 지하로, 바위로,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 살던 이들의 후손도 열기구를 하나둘 띄우기 시작한다. 그저 어둠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게 꿈이었던 이들의 삶이 이어져 이번에는 빛으로, 하늘로 떠오르는 삶을 꿈꿨다. 그렇게 카파도키아는 세상에서 가장 밝은 아침을 맞는 도시가 된다. 어떤 나라는 강물 위에 등불을 보내며 소원을 빈다던데, 카파도키아는 매일 하늘 위에 거대한 등불을 띄워 올린다. 어쩌면, 앞으로는 계속 밝은 곳에서 살게 해달라고 염원하는 듯한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재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띄우는 회사는 27여 개다. 오전 시간에 평균 160여 개의 열기구가 떠오르는데, 6개는 차트(Cat)에서, 154개는 괴레메(Goreme)에서 떠오른다. 조금 더 고즈넉하게 풍광을 감상하고 싶다면 차트에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열기구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싶다면 괴레메에서의 탑승을 추천한다.
참고로 열기구는 조종사가 상하로 조작만 할 수 있을 뿐, 좌우로 가는 건 바람에 맡긴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어디에 착륙할지도 그 순간이 되어야 만 알 수 있다. 조종사는 그래서 조종 내내 착륙을 도와주는 이들과 계속 소통을 하고, 착륙할 무렵에는 그들이 차를 타고 달려와 내려서는 손을 흔든다.
다시 땅에 발을 딛지 못할까 두려움에 떨던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가 탄 열기구의 조종사 엠레 잔테무르(Emre Cantemur)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씩 웃었다. 내내 과묵하고 눈썹을 찌푸리며 집중해 인상이 조금 무서웠으나 무사히 착륙하고 나서는 인자한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집중할 때는 카리스마, 임무를 마치니 온화한 모습. 그리고 멋있는 직업, 열기구 조종사. 그에게 물었다. "어릴 적 당신의 꿈이 열기구 조종사였나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니요. 다른 게 있었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되고 싶었네요."
원래 열기구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했다던 그는 매일 카파도키아 하늘 위로 떠오르는 열기구들을 봤다. 웃는 모습,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좋았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열기구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아마 짐작했겠지만, 나도 어릴 적 꿈은 이루진 못 했다. 어떤 현실에 부딪혔고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또 다른 꿈을 꿨고 어쨌든 지금의 자리는 조금이라도 내가 바랐던 자리였음을, 한 순간 분명 꿈꿨던 자리였음을 카파도키아에서 알게 됐다.
촛불처럼 작은 빛이든 열기구처럼 해처럼 큰 빛이든 모두 빛이듯 꿈도 모두 꿈이 아닐까. 당신도 어릴 적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들 분명 어떤 꿈을 이뤘고, 어떤 꿈을 이뤄 나가는 중일 것이다.
꿈을 다시 꾸게 하는 도시, 카파도키아 여행 노트
PLACE
열기구에 타지 않아도 열기구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벌룬 선라이즈
벌룬 선라이즈 Balloon Sunrise
2. Küme, MR7V+V6, 50502 Çavuşin/Avanos/Nevşehir, 튀르키예
절망 속에서도 꿈꾸던 이들을 기억하는 곳, 카이막클르 지하도시
CONTENT
카파도키아에 대해 다채롭게 다룬 기사, 국토의 97%가 황무지인 나라 튀르키예 여행
MUSIC
숨을 깊게 들이쉬고 열기구를 타는 느낌, LANY의 STUCK
FOOD
튀르키예 사람들이 물처럼 마시는, 차이(홍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