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짓다
어제는 아이들이 개학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기숙사에 들어갈 때 챙겨야 할 짐이 많기도 했고 아침 11시에 맞춰 가기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결국 제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과 학교로 출발했습니다.
보통 고속도로로 가는데 어제는 무슨 일이었는지 내비게이션이 교통정보를 반영해 국도로 안내해 준다고 했습니다. 국도로 가는 것은 아는 동네가 아니면 꺼려집니다. 그래도 다행히 예전에 남편과 함께 살았던 지역이었습니다.
떠나온 뒤로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그 동네를 지나가며 잠시 옛 생각에 잠겼습니다. 마을 주민분들은 잘 계시는지, 마트와 공원, 도서관 등도 궁금해졌습니다.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익숙한 길을 따라 목적지로 이동하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길이 그대로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을 새로 만들지언정 원래 있던 길을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길이란 특별한 재난이나 큰 공사를 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무른 길 덕분에 가족이 함께 걸었던 삶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은 그날도 그곳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누구라도 걸을 수 있고 달릴 수 있도록 밟히고 닳아도 그 자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그 길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찾은 동네 길 위에서 지나온 삶을 발견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길은 목적지로 가는 내내 나와 함께하는 삶의 동반자임을 깨닫습니다. 인생은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 이상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보다 잘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잘 되지 못했다고 속상해할 필요도 없는, 하루만큼의 길을 걷는 것. 그렇게 오늘도 하루치의 인생을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