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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꾸신발 Mar 15. 2023

엉망진창 중국 생존 여행기

#1. 여행을 갔다 왔는데 남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여행을 가면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좋은 곳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숙소에서 쉬면서 피로를 푼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의 과정을 모두 기록에 남기려는 것처럼 풍경, 인물, 음식 등을 카메라에 남긴다.


스무 살 여름. 나는 열흘간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여러 번 여행을 다녀왔지만 이 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아니 남기지 못한 것이다. 사실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초창기 시절, 니콘에서 나온 자그마한 카메라를 가지고 갔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메모리에 들어 있는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려는 순간 에러가 나면서 모든 사진들이 지워져 버렸다. 사진을 복구하는 데는 실패했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열흘 간의 여정과 풍경들은 오로지 나의 머릿속에서만 남아 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기억은 많이 지워지고 왜곡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었던 다른 여행과는 달리 어떠한 장면들은 사진보다 더 또렷이 내 기억 속에 남아서 그날의 시간, 그날의 분위기, 그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떤 내용을 담을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중에서 단 한 장의 사진도 남아있지 않은, 그 여름날의 중국 여행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피쳐폰을 사용하고, 블로그나 SNS에 넘쳐나는 여행 후기도 없던 시절, 남들이 잘 가지도 않는 중국 여행을 간 이유는 단 하나 돈이 없어서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용돈 말고는 가진 돈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에도 유럽이나 미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은 백만 원 정도가 필요했고 (인터넷 항공권 예약 사이트가 있었으면 조금 더 저렴한 항공권을 구할 수 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다. 대신 학생회관에 교내 여행사라는 게 있었다) 다른 경비까지 생각한다면 꽤 많은 돈이 필요했다. 나도 대학생인데 해외여행은 가고 싶고, 돈은 없고, 그러면 가까운 데를 가야 하는데 일본은 비싸고, 그러면 중국? 어리석은 인간이여. 하지만 나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결론이었다.


당시 중국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던 것들을 나열해 본다. 수도는 북경, 공기가 안 좋다고 하더라. 그 외에 아는 도시들? 삼국지를 읽으면 여러 성들이 나오지. 그런데 거기가 아직도 있나? 낙양(뤄양), 여기는 동탁이 불태우고 도망간 곳 있데 아직도 있네. 그리고 어디로 갔더라... 아 장안(시안), 여기도 아직 남아 있구나. 그리고 소림사가 있지. 아, 자금성이랑 만리장성도 있다. 여기까지 중국에 대한 지식 끝.


서점에 가서 가이드북을 한 권 사고 지도를 펼쳐 보았다. 북경과 시안은 멀었다. 차로 12시간쯤 걸린다. 그러면 일단 시안으로 가는 직행 항공편은 없었다. 그러면 일단 북경으로 간 다음 시안으로 국내선을 타고 이동하자. 그리고 북경으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여행하는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시안(근교에 진시황릉이 있다) - 화산(중국 5대 명산 중 하나이다) - 소림사(역시 중국 5대 명산 중 하나인 쑹산에 위치하고 있다) - 뤄양(룽먼석굴이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다) - 정저우(여긴 왜 가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 베이징


음. 출발하기 전부터 엉망진창 여행이 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지 않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중국어란 단 두 마디, 인사말 안녕하세요 你好 [nǐhǎo]와 호객꾼들이 들러붙었을 때 하는 말 필요 없어요 不要 [búyào].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살아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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